Graceland와 음악적 소통
최 지 선 | 대중음악평론가 | soundscape@empas.com
여러 매체에 음악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음악: 1955~1980>을 썼다.
공저로 <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 <한국 팝의 고고학 1960>과
<한국 팝의 고고학1970>, <아이돌> 등이 있다.
슈퍼볼이 미국인들에게 큰 관심거리라는 것을 증명하듯 예나 지금이나 광고전도 뜨겁다. 올해 2월 슈퍼볼에서 방영된 화제작 중 하나는 미국의 한 자동차 브랜드 광고였다. 여기에 1960년대 미국 모던 포크의 대부, 밥 딜런(Bob Dylan)이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광고에서 밥 딜런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것이 있는가?(Is there anything more American than America?)”라고 물으며, 그의 전매특허인 낮고 거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읊조린다.
“당신은 오리지널을 수입할 수 없다. 진짜 멋(Cool)을 위조 할 수도 없고, 유산을 복제할 수도 없다. 디트로이트가 창조한 것은 최초의 것이고, 다른 나라에 영감을 주었다. 디트로 이트는 차를 만들었고, 차는 미국을 만들었다”라고 호언하면서 “그 어디서도 수입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미국의 자존심이다”는 결론을 맺는다.
한때 저항의 상징이던 밥 딜런이 어쩌다 자동차 딜러(?)가 됐냐고 하거나, 노골적인 애국주의를 담은 광고에 출연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광고니까 감안해야할 것들이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의 관심은 가까운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대중음악사를 일별하며 노래, 그리고 음악인들이 어떻게 시대와 소통하며 한 시절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역사적 자산의 재창조
나라,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어떤 노래나 음악인이 오랫동안 사랑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답은 어쩌면 너무 간단하고, 그래서 다소 진부하다. 그것은 바로 그 노래가 어떤 감동을 주고, 오랫동안 기억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은 노래 속에 담긴 감정과 정서, 또는 어떤 생각이 공유되고 이해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를 통해 한 노래(또는 음악인)와 이를 듣는 청자 사이에 훌륭한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불후의 명작으로 기록되거나 오랜 스테디셀러의 지위를 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소통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개 인종·세대·성별·나이·계층 등의 범주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 특히 미국의 팝 음악사를 대표하는 뮤지션을 보자. 많은 뮤지션들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던 밥 딜런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1970~80년대를 통해 미국 록의 ‘보스(Boss)’로 불린 브루스 스프링스틴, 1990년대 그런지/얼터너티브 록의 대표주자로서 너바나를 이끌었던 커트 코베인 등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셋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가치들을 전유한다. 가령 밥딜런은 1960년대 평화와 자유를 표방했던 히피 세대를,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1980년대 화려하게 만개하던 소비자본주의 아래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블루 컬러를, 커트 코베인은 1990년대 부모의 이혼, 청년실업 문제 등을 비롯한 기성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가운데 탄생한, 소위 X세대의 사상과 정서를 대변했다. 이들은 모두 좁게 보면 미국적 범주에서 소생했으며, 거칠게 단언하면 당대 백인 청년층의 정서와 특별히 더 소통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전 시기의 음악적 자산을 소환해 그것을 당대의 현실과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는 데 있다. 1960~70년대를 통해 밥 딜런은 이전 시대까지 소통되던 전통 민요로서의 포크를 현대화(또는 전기화; Electrified)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미국의 기본 양식들인 포크 록·서던 록·컨트리 록 등의 영향이 진하게 녹아든, 이른바 ‘하트랜드 록(Heartland Rock)’으로 미국적 음악이 무엇인지를 재정의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너바나의 경우 펑크와 메탈에 대한 절연 및 계승을 통해 사운드와 태도를 정립해 ‘대안적인’ 록을 만들어내면서 당시 좌절과 혼돈으로 가득한 청년 세대의 아이콘이 됐다. 이들의 거칠고 투박한 목소리,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차림새도 친근하면서도 진솔하게 느껴지는 요소로 작동했을 것이다.
근원적 자산의 발견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블루스·컨트리·포크 같은) 루츠 음악을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대중음악 역사 속에 존재해왔다. 1970년대 사이먼 앤 가펑클이라는 포크 듀오로 잘 알려진 싱어 송라이터 폴 사이먼은 1986년 남아프리카의 아카펠라 그룹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Ladysmith Black Mambazo)와 함께 <그레이스랜드(Graceland)>라는 음반을 내놓았다. 그레이스랜드는 팝 음악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음악을 도입한 명반이며, 아프리카 음악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앨범이 출시된 1986년은 UN이 남아공에 문화·경제 보이콧을 선언한 때였다. 남아공의 전통적인 흑인 차별정책 때문이었다. 하지만 폴 사이먼은 UN의 정책을 어기고 그곳 의 음악인들과 함께 음반을 취입하고자 남아공에 입국했고, 결국 이 음반은 리듬 앤 블루스나 로큰롤 등이 모두 아프리카 리듬에 근거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는 이후 전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며 남아공의 음악을 알리며, 음악을 통해 화합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남아공의 음악과 문화를 위한 맘바조 재단을 설립해 남아공 문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폴 사이먼의 <그레이스랜드> 발표를 전후해 백인이 흑인의 음악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몇몇 논란거리들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비서구권 음악을 세계에 내어놓은 결과로 이루어진,다양한 음악적 소통을 통한 성취는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음악의 향유는 보편적이면서도 제한된 영역에서 일어난다. 앞서 예를 든 음악인들의 경우 음악의 역사적 자산을 일신하고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호흡하며 당시의 젊은 세대와 특정 계층의 지지를 얻었다. 한정된 범주를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음악적 길을 걸으면서도, 사람들이 노래를 통해 듣고 싶은 것, 바라는 것들을 담아냈다. 음악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음악을 통해 받는 감동은 이렇게 빚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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