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레퍼런스에게
김 진 원 | ACD | jwkim@hsad.co.kr
광고인에게 이 분처럼 고마운 분이 또 있을까? 안개처럼 꽉 막힌, 한 치 앞도 안보이는 아이디어의 실마리를 이 분은 가볍게 풀어주신다. 인사이트를 원하는가, 클릭하라. 새로운 화법을 원하는가, 클릭하라. 새로운 비주얼을 원하는가, 클릭하라. 줄 것이니! 세계 최고의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은 축복이니, 여러 개의 창을 띄워도 버벅거리지 않을 든든한 램을 갖추고 1TB쯤 되는 외장하드를 갖추면 준비는 끝난 것이다. 광고주께서 애니메틱으로 한 번에 이해할 시안을 원하시는가. 그렇다면, 클릭하라! 나올 때까지. 그렇게 우린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를 팔기 위해 세상에 분명 있을 레퍼런스를 찾아내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이 레퍼런스와 인연을 맺은 건 꽤 오래 전부터다. 부모님이 세트로 구입해 우리의 책장에 꽂아주시던 위인전을 기억하는가? 과학자를 꿈꾸는가? 퀴리부인·에디슨·노벨·아인슈타인이라는 레퍼런스가 있다. 정치가를 꿈꾸는가? 처칠·케네디가 있다. 그토록 멀고 거창한 레퍼런스가 부담스러울까봐 부모님은 우리 이웃의, 우리가 옆에서 늘 볼 수 있는 ‘엄친아’라는 레퍼런스를 들어 우리를 가르쳐온 것이다. 이렇게 자라온 우리가 어떻게 레퍼런스를 훼손하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레퍼런스를 고이 모셔다가 우리 광고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비단 광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은 널리 퍼지게 마련이니.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경쟁력은 ‘케이스 스터디’라는 교육방법이니, 레퍼런스의 다른 이름이 되시겠다. 그뿐인가. 경영위기에 처한 제록스라는 회사는 위기상황에서 일본의 기업들을 레퍼런스 삼아 재도약했다. 최고의 복사기 회사답지 않은가. 아, 레퍼런스라고 얘기하지는 않고 ‘벤치마킹’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레퍼런스와 아이디어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차이는 시작될까? 사실 우리 모두는 그 차이를 안다. 일본만화 <바람의 빛>(정식 출판 제목은 <바람의 마운드>이지만, 난 이 해적판 시절 이름이 더 좋다)에는 흉내 내기를 좋아하는 꼬맹이 야구선수가 나온다. 그는 노모·마쓰자카 등 최고 선수들의 폼을 흉내 낸다. 폼뿐만 아닌, 버릇까지 완벽하게 모방하는 만년후보인 그에게 새로 온 감독은 주전투수와 4번 타자를 맡긴다. 고작해야 회식 때 장기자랑으로 쓰이던 그의 흉내 내기가 실전에 쓰이게 된 것이다. 폼은 똑같지만, 공의 속도가 노모처럼 나올 수는 없는법. 연신 얻어맞는 그를 불러내 감독이 말한다. 아니, 손짓한다.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흉내 내야 할 건 여기야.” 왜 노모는 그런 폼으로 던졌을까? 상대방의 타이밍을 뺏고, 공의 회전력을 높이고 싶은 간절함이 찾아낸 방법. 토네이도투구. 그런 노모의 뜨거운 마음을 흉내 내라는 말. 이후 그는 폼만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상대를 꺾을 고민을 담은 공을 던진다.
레퍼런스 뒤의 마음이 보이는가. 뇌를 간지럽게 하는 인사이트와 비주얼과 화법 뒤에 숨겨진, 문제해결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 자, 오늘도 광클릭하며 밤을 지새우는 동료들이여, 좋은 레퍼런스를 찾자. 그리고 그 해법을 만들어낸 마음을, 고민을 레퍼런스하자. 레퍼런스는 참으로 고마운 분이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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