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2 : 공간의 시학 - 詩가 공간이 된,윤동주문학관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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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청운동, 믿기 힘든 건축물이 들어섰다. 문을 닫은 수도가압장의 기계실과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지고 사용됐을 거라 추정되는 물탱크를 ‘리모델링’해 공공건축물이 들어선 것이다. 공공발주 건축물이 세월의 흔적을 살리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리모델링을 택하다니, 이제 우리의 공공건축물에도 발상의 전환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인가.
이 건축물은 바로 2012년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관한 ‘윤동주문학관’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대학 시절 인왕산 아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하며 새벽이슬을 벗 삼아 인왕산 언덕길을 자주 올랐다. 이 시기에 윤동주의 많은 작품들이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2009년 ‘시인의 언덕’이 조성됐고 2012년 시인의 언덕 옆 수도가압장을 리모델링해 윤동주문학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건축물은 2013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윤동주문학관은 그의 시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외관부터 공간 구성까지 말쑥하다. 문학관을 리모델링한 건축가 이소진도 그의 깨끗하고 순수한 시를 잊지 않은 모양이다. 문학관은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첫 번째 공간은 펌프실이었던 곳을 전시실로 꾸몄다. 윤동주의 친필 원고와 사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과 출간된 시집들이 전시돼 있다. 두 번째 공간은 물탱크의 지붕 슬래브를 뚫어 하늘을 연 브릿지 공간이다. 땅의 중정이자 하늘의 중정이 되어 전시실과 영상실을 잇는다. 이 공간은 윤동주의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하늘을 열고 ‘열린 우물’이라 부른다.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던 윤동주, 열린 우물 속에는 <자화상> 속 우물처럼 달이 밝고 구름이 흐리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분다. 여기에 들어서면 <자화상> 외에도 유난히 하늘과 별을 노래했던 윤동주의 시들이 절로 생각난다. <서시>가 그렇고 <별 헤는 밤>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그렇다. 낮에는 시간을 멈춘 듯 푸른하늘을 보여주고 있는데 밤에는 별도 가득 보여주려나….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그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이 공간은 더 큰 공간의 힘을 느끼게 하기 위해 물탱크 벽면의 물때 흔적은 두고 그 위로 시간을 하얗게 덧쌓았다. 시간의 켜가 쌓인 것이다. 브릿지 공간을 지나 ‘닫힌 우물’이라 명명돼 있는 영상실에 들어서
면 새카만 어둠만이 가득하다. 그 시대의 어둠을 전해주는 것일까. 시인 윤동주가 죽음을 맞이한 타국 땅의 형무소 감옥 같기도 한 영상실에서는 12분 정도의 영상이 새카만 벽면에 상영된다. 몇 십 년 동안 방치돼 있던 물탱크일 뿐인데 숙연해진다. 점검 사다리가 있는 천정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빛은 목가적이기까지 하다.
이렇듯 ‘윤동주문학관’은 건축물 자체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의 시는 어떻고 그의 작품세계는 어떻고 그의 일생은 어떠했는지 그 무엇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시가 공간이 되어 말을 걸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간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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