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2 : 문화가 산책 : '겁'나는 인연을 찾아서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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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는 인연을 찾아서

 

정 현 진 | 브랜드액티베이션2팀 대리 | cristalzzang@hsad.co.kr

 

 

 

5, 4, 3, 2, 1 댕~
보신각 종소리가 주변의 환호성과 함께 TV 전파에 실려 나의 달팽이관을 자극할 때쯤,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양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두 눈은 지그시 감고, 경건한 마음으로 한 순간 분절된 시간의 묘미를 만끽한다. 그러다 문득,나와 같은 포즈를 취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온다. 과연 당신은 종소리와 함께 1월 1일이 되면 무슨 소원을 가슴 속에 새겨두는 것인가?

서른이 훌쩍 넘어가고, 어느새 나이의 무거움이 정녕 내 청춘의 가벼움을 제압하려 하지만, 애써 모른 척 올해도 작년처럼 천진난만하게 살아보고자 다짐한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터져버린 소녀시대의 열애설은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나의 소녀들이 어느새 숙녀가 되어 연애를 한다. 아니, 연애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진정한 숙녀가 된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다른 생각이 튀어 나와 나를 괴롭힌다. 소녀시대도 키스를 한다. 불행하게도 나도 이제 시간을 먹고, 살이 찌기 시작한다. 나와 함께 포즈를 취하며 새해를 축하하던 친구들은 올해는 기필코 외로움이라는 덫에서 벗어나겠노라 중얼거린다. 소녀시대가 키스하는 세상인데, 여전히 혼자 교촌치킨을 뜯으며, 500cc 맥주에 소주를 얹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외로움 앞에 고개 숙이는 그들을 볼 때면 괜히 한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조금 더 예쁜, 조금 더 착한, 조금 더 돈 많은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전에 외로움에 겁먹어 버린 인연을 거스르는 친구들이 가끔은 너무 안타까워지기 때문이랄까.
‘겁’이라는 시간 단위가 있다. 일 겁은 천 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집채만한 바위를 닳아 없애는 시간이라고 한다. 옷깃 하나 스칠 인연은 500겁의 시간이 필요하고, 내가 그대를 만나기까지 1천 겁, 그대를 만나 사랑하기까지 2천 겁, 사랑의 기운이 쇠하고 서로 헤어지기까지는 3천 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이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뚫고 결혼을 하고 심지어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얼마나 멋진 확률을 뚫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인가. 이렇게 뼈에 사무치는 인고의 시간을 겪고 만나게 되는 인연의 소중함을 우리 선조들은 ‘겁’이라는 시간의 단위를 통해 반추하는 것일진대, 소녀시대가 키스하는 시대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겁의 단위는 점점 무의미해져 버린다.‘ 빠름 빠름~’이라는 CF송이 입에 착착 감기는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속도경쟁에 매몰된지 오래다. 인터넷이야 빠를수록 좋다지만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할까?중얼거리는 내 친구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연애의 묘미는 단연 기다림이요 그리움이다. 하지만 요즘 청춘들에게는 기다림이며 그리움이 쌓일 겨를이 없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 부안 기생 매창((梅窓, 1573〜1610)의 이런 절창은 유행을 갈구하는 우리 청춘들에게 공감 받지 못한 낡아빠진 추억일 테다. 임에게 전화 한 통 하면 그만인 것을. 추풍낙엽에 누구를 생각하는지는 날아오는 카톡으로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터. 1분에 10통씩 날아오는 ‘카톡 카톡’ 소리는 일 겁의 장대한 시간을 일분일초라도 앞당기려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조급함은 아닐까? 연애를 하고 싶은 우리들은 재빠르게 들려오는 카톡 소리에 중독돼 마치 중세시대 마녀들의 주문처럼, 여전히 밀당의 그 긴박한 순간에도 참지 못하고 마음의 문을 서로 따내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또 아닐까? 조선시대를 차치하고서라도 불과 15년 전, 이제는 응답해야만 하는 추억의 삐삐시절,‘ 8282(빨리빨리)’를 남기고 상대방의 전화를 간절히 기다리던 애틋함조차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음에 연애 자체에 대한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애타는 소원이 여전히 LTE급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왠지 모르게 파블로프의 개처럼 참지 못하고 서로의 문을 따기 위해 생채기 내는 것은 아닌지, 살며시 나를 놓고 생각해본다. 이 와중에 울리는 카톡의 소리는 왜 집에 들어오지 않느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유일한 보챔이겠지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