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활동영역이 너무 큰 장진 감독을 뮤지컬 <디셈버> 공연장,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작년 인천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와 올해 9월 열리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폐회식 총연출 및 대행사 연출 담당자로 1년 넘게 만나왔던지라 커피 한잔 속에 편한 분위기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평소에는 나누기 힘들었던 이야기들과 그동안 궁금했었던 질문들을 쏟아내었고,언제나 그렇듯 열정적으로 대답해주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바쁘신 일정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 다소 쑥스러운데요, 첫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가끔씩 광고모델로도 직접 광고에 등장하시는데, 광고모델로서 감독님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재능이 많거나 선구자적인 기질이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십 몇 년, 이십 몇 년 가까이 이쪽 일을 해오면서 내 사고나 내 영역에 자유로움이 있어서인것 같아요. 한마디로 짧게 이야기하면, 쉰이 넘어도 뭔가 새로운 일, 자유로운 일을 할 것 같아서이지 않을까. 흥해도 부자가 된 것 같지 않고 망해도 거덜난 것 같지 않은 그런 것, 이런 자유로움이 구매대상에게 어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장진 식 코미디다 장진 식 스타일이다’ 하는 것들이 과연 뭘까 나도 생각해보니까 그건 구체화된 형식미 없이
관습적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광고모델로 어떤 제품과 궁합이 맞는다면 그런 자유로움을 동경하거나 자유로운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맞아서이지 않을까 하는 거죠. 분명한 전문성을 지니고 독보적인 것을 원하는 거라면 나랑은 어울리지 않지.
그렇다면 광고모델이 아니라 광고 제작, 연출을 하신다면 어떤 컨셉트의 광고를 연출해보고 싶으세요.
상반된 것 두 가지를 해보고 싶어요. 내가 하는 작품들 대부분은 드라마이고, 드라마를 운용하는 가장 큰 재료는 다이얼로그잖아요.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다이얼로그를 활용해서 누구보다 번뜩이고 재미난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봐요. 15초짜리 광고 하나를 보면서 다이얼로그 한 마디에 뒤집어지고, 그 다이얼로그가 계속 생각나게 하고 싶기도 하고.
또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활용해보지 않은 것인데, 빛과 광선, 형체가 주는 아우라를 가지고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산 하나를 진득하게 담아내면서 산에서 변화하는 빛 하나가 떨어지면서 광고가 되는 그런 정물적인 광고…. 이런 것을 동경은 해봤어도 비주얼리스트도 아니고 해본 적도 없지만, 광고라는 매체라면 제대로 해보고 싶기도 하죠~후훗.
그럼 그런 컨셉트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어떤 브랜드나 어떤 제품의 광고를 찍어보고 싶으세요.
이야기한 것처럼 상반된 것을 해보고 싶은데, 예를 들면 가장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휴대폰이나 전자 쪽, 아니면 자동차 같은 것들이랄까, 광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을 현란한 광고기법이 아니라 사진작가의 사진 한 장처럼 찍어보고 싶어요. 아, 공익광고나 계몽광고, 정부부처 광고에서 마음껏 코미디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네!
예전에 광고도 몇 편 찍으셨잖아요. 어떤 광고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광고 연출하실 때 에피소드가 있었다면요.
글쎄, 나는 단순 광고가 아니라 단편영화를 찍은 거라서…. 단편영화를 만들면 그걸 광고로 다시 편집해서 쓴 거라 실제 광고 제작과는 다르게 진행했어요. 그렇게 찍은 광고가 서너 편 되는 거 같은데 LG 옵티머스 3D랑 소지섭·이연희 나왔던 액티온 광고도 있었고.
광고 말고 다른 이야기들도 해볼까요.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이 <디셈버> 공연장이기도 하고, 이제 내일이면 서울에서의 디셈버 막공이기도 한데요. 계속 해오셨던
연극 하고 이번에 처음 도전하신 뮤지컬이라는 장르 하고는 연출하시는 데 뭐가 가장 달랐나요.
일단 내 경험상에서만 비춰보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할 수 있어요. 내가 다 책임질 수도 있고, 무대·조명, 그리고 다른 디자인도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거. 그런데 이 뮤지컬은 내 욕심만큼 못 간다는 거죠. 음악이나 안무·장치가 너무 절대적인 요소라 내가 원하는 그 어디까지가 돼야 하고, 그게 되지 않았으면 공연에 들어가면 안 되었는데도 공연 날짜가 잡혀있으니까 관객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죠.
이번 뮤지컬 <디셈버>를 연출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셨던 것은 뭐였어요.
‘막을 올리자,’ 였지 뭐~.
제가 질문하기 참 민망한 건데,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테니….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관련한 질문인데요, 다른 스포츠 이벤트 개폐회식과는 달리 인천아시아
경기대회 개폐회식만의 특별함이나 다르게 준비하고 있으신 것이 있다면요.
우린 다른 대회 개폐회식에 비해 예산이 적으니까 또 다른 승부수를 띄워야겠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볼거리는 피해야 하니까, 기술이나 화려함, 사이즈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가 믿는 휴머니즘이나 아이디어, 드라마적인 감흥이나 분명한 의도가 제대로 보여야겠죠. 예를 들어 런던올림픽의 의도가 과잉이었잖아요, 자국 우월주의를 교육받는 느낌이었고, 좀 거부감이 들었고. 베이징올림픽 같은 경우는 훌륭하게 수많은 볼거리가 펼쳐져 있었지만 목적이 기억이 안 나잖아요. 화려한 볼거리가 의미를 해산시켜버린 거지.
말씀하신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개폐회식 연출 의도는 뭘까요.
솔직히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16일 동안 경쟁하고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예요.
그 16일 동안 어떤 정치적, 분쟁적, 상업적 득실을 떠나 스포츠로만 만난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고. 그 시작을 여는 것이 개회식인 만큼 ‘이제 드디어 축제의 시작이다’ 라는 신나는 기분이 들어야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인천이라는 도시가 절대 긴장과 대립의 도시가 아니라 아시아의 교착지로서의 도시라는, 우리의 주제의식이나 메시지도 잘 담겨야 하는 거고.
영화·연극·뮤지컬·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SNL>과 <코리아 갓 탤런트> 같은 예능프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신데, 성공적으로 많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유? 이유는 없어요. 단지 ‘하고 싶으면 한다’는 거지. 대신 거기에 전제조건은 있어요. 노력한다는 거. 사내니까 노력한다는 게 들키면 안 되지만~~. 그 노력은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건데, 내가 뭘 준비하면서 수면 위에 올라오기 전에는 인고의 시간, 뽐내지 않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해요.
나는 아직도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거기서 많이 배우고 있고, 어디 가서 으스댈 수없는 창작자라고 생각해요. 아직 갈 길도 너무 멀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그걸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난 성공 사례는 없어요.
제가 보기엔 그렇다고 실패사례도 없는 것 같네요.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 거창하게 질문하면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근시간적으로는 좋은 영화, 좋은 연극, 좋은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거고. 그것들을 계속 잘 해내면, 가까운 시기는 아니겠지만 내가 원하는 어느 시기에 아무 것도 안하는 거!! 꿈이 있다면 회사는 그만하고 개인 창작자로 돌아가는 거예요, 작가로 말예요. 작가는 내가 마지막 순간에 머물러야 되는 일 같으니까.
저희 회사 비전이 The Difference거든요. The Difference는 남과 다름을 통해 경쟁력을 갖는다는 의미에요. 감독님이 많은 일들을 하실 때 남들과 다르
게 생각하는 중점적인 것이 있을까요.
두 가지 정도인거 같은데… 한 가지는 끊임없이 인본주의적이라는 것. 사람 자체에서 평등한 미학을 가져야죠. 예를 들어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치죠. 아님 어떤일이 발생했어. 그때 대단히 평등한 인본주의 시선에서는 ‘어, 저 사람 재미있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흔히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보편적인 기준과 다르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잖아요. 마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만 정상인양, 그렇지 않은 건 비정상인 것 양 말하잖아요. 재미없게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평등한 인본주의적 미학은 이상한 사람이라도 그를 특별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아까 이야기했던 ‘노력’이예요. 너무 평범해서 빛을 쏴주지 않는 것들이 많은데, 그 평범함 안에는 가장 큰 특별함이 있을 수도 있어요. 사람들 눈에는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더라도, 그 평범한 사람이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으스대지 않는 노력에 의해서.
감독님이 연출이나 쓰셨던 작품 중에서도 지금 말씀하신 것들이 캐릭터로 반영돼 있는 것 같아요.
수많죠. 아주 평범한 인간들의 아주 특별한 순간들이 대부분이니까.
그 수많은 작품들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뭐가 있으세요. 시나리오든 영화든 연극이든 관계없이요. 저는 <허탕>이 가장 좋았어요. 연극을 다 보고나서 오는 감정과 제목과의 어우러짐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허탕>은 내가 쓴 희곡 중에 제일 오래 걸린 희곡이죠. 그런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나는 없어요. 나는 다음 것만 생각하니까,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었
다는 건 아무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 무엇을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니까.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감독님은 평소에 영화나 공연물을 많이 보지 않는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면 아이디어를 얻을 때 어떤 일을 한다거나 무얼 본다
거나 하면서 힌트를 얻는 것들이 있으신지요.
난 영화나 공연물을 많이 안 보니까 대부분 책이나 사람에서 얻어요. 나는 사실 메모를 싫어해요. 습작은 하지만 나중에 써먹기 위해 하는 메모는 싫어. 어느 순
간엔가 ‘아, 이거 재미있겠다’ 생각을 해도 삼일 후에 잊어버려요. 그럼 그 아이디어는 삼일짜리밖에 안 되는 거죠. 하지만 이십년이 지나도 생각나는 캐릭터나 아
이디어가 있는데, 그건 어느 순간에 내 작품에 나오게 되어 있고.
오늘 감사합니다. 앞으로 준비하시는 모든 것들이 성공사례로 남길 바라고요. 감독님의 꿈에 즐겁고 재미있게 계속 다가서시길 빕니다.
사람들은 장진 감독을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라 일컫는다. 그 이유가 수많은 희곡과 시나리오 작가로서는 물론, 스토리 위주의 연극과 영화 연출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부한 수식어라고도 생각했었는데, 인터뷰를 하고 보니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수식어도 없겠다 싶었다. 그의 희곡집 서문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숨죽인 객석, 저 어디쯤에 내 상상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자, 보세요.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고마워요. 당신들의 삶을 흉내 낼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이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담아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 장진 감독에게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최고의 수식어이지 않을까
Interviewer: 구 선 아 | BTL 프로모션팀 대리 | koosuna@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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