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Bell
죽은 참새를, 고양이를, 할머니를, 왕비를 위한 파반느.
1975년 여름… 참새 한 마리, 울타리 위를 작두 타듯, 불안 불안하더니만 급기야는 뜰 아래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알 깨고 나온 지 몇 날이나 됐을까. 날개 짓도 버거워 새순 같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치더니만 아뿔사, 소년의 손아귀에 낚아 채이고 말았다. 어린 포획자의 입가엔 득의양양 미소가 흘렀다. 그 때 나비였는지 야옹이였는지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꽃그늘 사이를 어슬렁대던 고양이 녀석이 툇마루 위로 폴짝 뛰어올랐고, 그야말로 순식간에 소년의 포획물이 고양이 입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 이후로 가끔, 아니 지금까지도 난 그날 왜 내가 고양이에게 참새를 던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난이라고 하기엔 결과가 썩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동안 내가 만일 지옥에 가게 된다면 그 일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날지도 못하는 어린 것을 움켜쥔 고양이 녀석은 1분도 채 안 돼 처형을 끝냈고, 그것도 모자라 마룻바닥까지 싹싹 핥아 먹었다. 어미 참새의 곡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 날 밤 할머니는 숨을 거뒀다. 할머니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저녁상까지 차려 놓고 가재 잡기에 지친 우리들을 불러들였고, 간만에 고깃국까지 올려진 밥상에 허겁지겁 탐욕스런 만찬을 마친 후였다.
할머니는 사실 친구 녀석의 친할머니였는데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여름방학이면 늘 강화도에 내려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사는 그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곤 했다. 그런데 참 모를 일은 방금전까지만 해도 마당을 왔다갔다 하던 할머니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저녁 후에 그냥 방으로 들어가 눕더니 잠자듯 눈을 감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몇 분 어른들이 머리맡에 앉아있었고, 어정쩡하게 지켜보던 우리들은 울어야할지 말아야할지조차 몰랐다. 다만 눈감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평화로워 보였다. 다음 날 난 알지 않아도 될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그 날 저녁 우리가 먹은 고깃국이 고양이 국이었다는 사실이었다.
2012년 여름… 우루무치에서 서남쪽으로 시간 반을 달리자, 비포장도로와 함께 서울에서 사진으로 봤던 촬영 로케이션이 나타났다. 건조지대형 둔덕들이 줄지어 융기를 거듭하더니 버섯을 닮은 듯한 기괴한 산들이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오묘한 빛을 토해내며 마치 외계의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지구의 내장이 꿈틀대는 것 같다며 탄성을
자아낼 즈음 멀리서 낙타들의 괴괴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삶과 죽음이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 도대체 난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촬영을 마치고 떠나는 날 우루무치 박물관을 둘러보던 내 발길은 이번에는 고대(古代)의 죽음 앞에 얼어붙었다. 누란 왕국의 왕비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속칭 ‘누란미녀’라는 이름의 미라였다. 4천년 동안 모래사막에 파묻혀 있던 시신의 얼굴엔 엷은 미소마저 보였는데, 갑자기 난 그 얼굴을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그때 이상하게도 누란미녀의 얼굴 위로 강화도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보다 더 평화로운 얼굴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 현 종
CCO(Chief Creative Officer) | jjongcd@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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