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8 : 2012 CANNES LIONS 참관기-JR과 케인 이야기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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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CANNES LIONS 참관기  
JR과 케인 이야기

 

프랑스의 거리 예술가, Jr. 그의 프로젝트들은 광고도, 미디어도 아니다. 그저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남들에게 전하는 일을 할 뿐이다. “내가 하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로 그가 세미나를 마치자 전 세계 광고인들은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시상식을 비롯해 세미나·워크숍·전시회·디지털 키오스크·갈라쇼 등 매일 숨 가쁘게 진행되는 그 많은 일정들을 빠짐없이 소화하던 범생이 광고장이들도, 남프랑스의 매력적인 햇살과 유럽의 정취를 한가롭게 즐기고 돌아왔던 한량 광고장이들도 가슴속에 인상적인 기억 하나쯤은 담아 오는 곳, 바로 칸이다.
‘2012년 칸라이언즈에서 눈에 띄었던 수상작들과 그곳 이모저모를 사보에 써 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했다.
‘필름 부문 수상작은 무엇이고 인쇄 부문 수상작은…’ 하는 식의 수상작 나열은 나도 쓰기도 싫고, 읽는 사람도 별로 흥미로울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수상작들은 조만간 모든 이들에게 공유도 될 것이고…. 해서 작다면 작은 소재일 수는 있으나 내 나름 그곳에서 인상 깊었던 어느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잠깐,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라는 단어를 한 번 짚고 가자. 작년 2011년부터 ‘칸라이언즈 국제 광고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은 ‘칸라이언즈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로 바뀌었다.
광고라는 개념에만 한정되지 않고 광고·PR·홍보·마케팅 등 여러 부문에서 공통적으로 창의성이 필요한 시대가 오면서 공식명칭도 변화한 것이다.
올해 시상식에서도 변화들이 좀 있었다. 사이버 부문에 속해 있던 모바일 부문이 따로 독립했고,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부문이 새롭게 생겨나 소비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로 수상을 할 수도 있게 됐다. 그렇게 크리에이티비티라는 단어가 여러 부문의 기준이 된 것처럼, 세미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여러 세미나 중에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몇몇 세미나가 있었다.
DRAFTFCB가 주최했던 ‘Sharing the Streets’라는 주제의 세미나와 JWT가 주최한 ‘Worldmarkers’가 그것이다. 그들의 세미나를 보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크리에이티비티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립박수를 받은 거리의 예술가
DRAFTFCB가 주최했던 세미나의 강연자는 광고회사의 CEO도,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아닌 ‘JR’이라는 프랑스의 거리 예술가였다. 파리 시내의 벽에 그래피티와 낙서를 일삼던 소년 JR은 18살에 샹젤리제에서 거리 전시회를 열게된다. 이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관람객이 되어 그의 작품을 보게 되면서 그는 거리 전시회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2005년, 프랑스 정부의 이민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들이 폭동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이민자들은 경찰들을 공격하고 불을 지르고 상점의 물건을 훔치게 되는데, 프랑스인들의 눈에 그러한 이민자들은 폭도 내지 짐승 같은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이어졌다.
이 때, 이민자 청소년들의 친구였던 JR은 이들의 재미있고 독특한 표정을 사진에 담아 커다란 포스터들로 만들고 시청 앞과 거리 곳곳에 이들의 사진을 전시한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저는 저 친구들을 잘 알아요. 저들은 천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물들도 아닙니다.” 이 사진들을 거리에서 본 프랑스인들은 이민자들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꿔 나갔다. TV나 신문 등 기존 미디어를 통해 굳어져 있던 짐승 같은 이민자들의 이미지와 재미있고 따뜻한 인간 본연의 이미지의 갭을 눈으로 실감한 것이다.
1년 후 JR의 눈은 분쟁으로 얼룩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향했고, 바로 중동으로 날아 간다. 그곳에서 사상초유의 ‘불법’ 거리 전시회를 모색한다. 요리사·이발사·택시기사·변호사·종교인 등 같은 직업을 가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물 사진을 커다랗게 포스터로 만들고 분리 장벽에 나란히 걸었던 것이다.
종교와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를 죽이고 적대시하던 두 나라 사람들은 놀랍게도 어떤 얼굴이 이스라엘 사람이고 어떤 얼굴이 팔레스타인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결국 두 나라 사람들은 같은 삶, 다르지 않은 희로애락이 있는 똑같은 인간임을 서로에게 보여준 것이다.
아프리카의 수단·나이베리아·케냐 등에선 빈민가의 지붕에 비가 새는 걸 막기 위해 그 동네 사람들의 얼굴을 비닐 위에 인쇄해 지붕과 벽을 덮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한 동네 전체가 주민들의 얼굴로 가득 채워지기도 했다. 자신의 얼굴로 덮인 지붕 사진을 본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제 하느님이 날 볼 수 있네~” 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제 JR은 런던·뉴욕·리우데자네이루·스위스·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를 사진에 담아 거리에, 벽에, 지붕에 붙임으로써 세상의 인식과 편견을 바꾸어 놓고 있다. 그의 프로젝트들은 광고도, 미디어도 아니다. 그저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남들에게 전하는 일을 할 뿐이다. “내가 하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로 세미나를 마치자 전 세계에서 온 광고인들은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오락실 사장이 된 9살 꼬마

JWT가 주최한 Worldmarkers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는 3명의 아이들이 나와 그들의 크리에이티비티에 관한 인터뷰를 했다. 12살짜리 세계 최연소 APP 개발자인 조던 케이시, 이미 3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TED 강연자이며 파워블로거인 천재소녀 아도라 스비탁, 그리고 평범한 동네 꼬마 같은 케인 몬로이였다. 앞의 두 녀석은 정말 대단한 아이들처럼 보였고, 그 아이들의 업적 또한 어렸을 때부터 천재소리를 들을 만한게 분명했지만, 오히려 난 평범하기 그지없는 케인이란 꼬마에게 관심이 더 갔다.
오락실 사장이 꿈인 미국의 9살 케인은 동네의 빈 박스를 주워 아버지의 가게 한 구석에서 아케이드 오락기를 하나둘씩 만들어 간다. 참으로 조악하기 짝이 없는 빈 박스로 허술하게 만든 게임기들이다. 농구·인형 뽑기·탁구공으로 인형 맞추기 등 종류는 꽤 다양하다. 나름 경품도 내걸고 자유이용권도 만드는 등 철저한(?)준비 후에 진짜 개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형편없는 게임을 어느 누가 하러 오겠는가? 케인은 가게 앞에서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녀석에게 첫 손님이 찾아왔다. 케인이 만든 오락기들에 관심을 가진 그 손님은 그날 여러 가지 아케이드 게임을 직접 돈을 지불하면서 모두 해봤다고 한다. 우연히도 그 손님의 직업은 감독이었다. 그는 케인의 게임장을 페이스북에 올릴 것을 제안했고, 케인을 위해 동영상을 만들고 플래시몹을 구상하게 된다. 플래시몹은 성공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케인의 페이스북은 8만 명 가까운 팬들이 생겨났으며, 그 팬들이 케인처럼 박스게임을 만들고 페이스북에 다시 올리는 재미있는 현상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엄청난 행운의 주인공인 이 꼬마녀석은 지금까지도 쏠쏠하게 용돈도 벌고 있다는 후문이다.
 

 

잃어버린 크리에이티비티를 찾아서
올해 칸의 인쇄 부문 그랑프리는 베네통의 ‘미워하지 않기(Unhate)’ 캠페인이 수상했다.

십 수 년 전 베네통 캠페인이 오버랩되면서, 다소 옛날 방식의 정통적 크리에이티브가 아직도 칸에서 통한다는 사실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정통적이든 정통적이지 않든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남달리 따뜻하다면 우리에게도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크리에이티비티가 조금씩 길러지지는 않을까?
거리의 예술가 JR, 9살 꼬마 케인. 이 두 사람을 보면서 우리가 간절히 찾아 헤매는 그 크리에이티브는 거창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거리의 예술가처럼 혹은 9살 아이 같은 눈으로 내 주변을 본다면 매일 보는 사물이었지만 빅아이디어로 승화되어 다시 발견될 수도 있겠다.
필요에 의해 만들었지만,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전기 철탑을 사람이나 로봇 모양으로 만들어 예술작품으로 바꿔놓은 미국의 한 건축회사도 바로 이런 눈으로 주변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무심하기만 했던 우리의 일상들을 좀 더 따뜻하고 관심어린 눈으로 볼 일이다.

 

 

 

박경준 

CD | qkr9@hsad.co.kr
큰 일을 해결해라 작은 일은 알아서 해결된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