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2 : 문화적 영감 - 창조적 소수자와 잡스와 인문학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문화적 영감 
창조적 소수자와 잡스와 인문학

“소크라테스와 한나절 보낼 수 있다면 난 애플의 모든 기술을 내놓을 것이다.” 얼마 전 귀천(歸天)한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IT의 제왕'에 오를 수 있었던 상상력의 원천은 인문학에 있었다. 그에게 인문학은 기술에 영혼을 불어넣게 해준 문화적 영감을 준 원천이자 지혜의 보물창고였다. 그는 인문학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황금알을 낳는 어미 닭임을 증명해 보였다. 아이팟(2001)·아이폰(2007)·아이패드(2010). 우리는 통념에 매몰되지 않았던 그가 건넨 선물을 징검다리 삼아 아날로그의 강물을 넘어 디지털의 신 세상으로 건너갔다.


<더 록>                                         <공동경비구역 JSA>                           <주만지>


"네 운명은 너의 손에 달렸으니 맞서 싸우라"
영화는 우리 삶의 현재를 반영한다. 관객이 많이 든 영화는 시대정신을 잘 반영할 개연성이 크다. 냉전시대의 흥행작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적과 동지로 선명히 나뉜다. 그러나 냉전이 무너지자 세상을 선과 악으로 가르는 이분법은 설자리를 잃었다. <더 록>(1996년)이 이를 증언한다. 냉전시대 적을 겨누었던 특수부대원들의 총부리는 그들을 도구로 쓰다 버린 국가를 정조준한다. 심지어 그들은 수백만 생명을 일순간에 앗아갈 화학가스를 가득 채운 미사일을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던 조국의 대도시를 향해 발사한다.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묘사한 <공동경비구역JSA>(2000년)는 우리가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준별할 수 없는 복합성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신이 지배하던 시절 개개의 인간은 무력한 존재였다. 차라투스트라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후 사람들은 백년 후에 일어날 일식과 월식도 알 수 있다고 자만했다. 허나 우리 이성의 금자탑 슈퍼컴도 바람에 흩날리는 물방울 포말이 어디로 날아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인간은 공포에 전율한다. <주만지>(1995년)라는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려보라. 게임판에 새겨진 지시에 따라 던진 주사위의 숫자에 따라 듣도 보도 못한 괴수들이 튀어나오지만, 영화 속 아이들은 주사위에 운명을 걸길 두려워하지 않고 정글의 법칙에 맞서 싸우지 않던가.
우리 시대 영화들은 말한다. "네 운명은 너의 손에 달렸으니 맞서 싸우라"고. 세기말을 앞두고 종말론이 우리를 겁먹게 하던 1998년 소행성과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위기상황을 가상한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에서 신은 더 이상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다. <아마겟돈>에서 인류의 운명을 판돈으로 건 신의 주사위 장난에 맞서 지구를 구하는 이는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이다. <딥 임팩트>는 한 술 더 뜬다. 더 이상 영웅은 지구를 구하지 못한다. 두 조각난 혜성은 그대로 지구로 돌진해 엄청난 해일을 일으킨다. 여자친구를 오토바이 꽁무니에 태우고 어마어마한 높이로 엄습하는 물기둥에 정면으로 맞선 소년의 응전을 보여주며영화는 속삭인다. '살고 싶다면 너도 네 눈앞의 해일에 맞서 싸우는 영웅이 되라'고.



1996년 애플에 다시 복귀한 그는 기술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를 추동한 힘은 인문학적 소양이었다. 그가 일군 성공의 신화는 우리가 왜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스티브 잡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토인비가 말했듯이, 도전의 거센 물살에 당당히 맞서 싸워 살아남는 자는 분명 소수다. 허나 이들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에 의해 인류역사는 새롭게 쓰였다. 물결에 쓸려갈 것인가, 타고 넘을 것인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그것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준 이가 바로 잡스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시리아인 유학생의 핏줄을 받은 그는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다. 그를 걷어 길러준 양부는 노동자였다. 등록금이 없어 리드대 철학과를 한학기만에 그만둔 그는 주류사회 진입이 어려운 주변인이자 약자였다. 1976년 21살 새파란 청춘에 애플을 공동창업한 그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개인용 PC시대를 여는 쾌거를 일구어 냈지만, 30살 되던 1985년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퇴출됐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그날의 좌절을 회상하며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그가 한 말은 심금을 울린다. 아마도 사람들이 잡스의 삶을 기리는 이유는 정상에서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좌절을 모르고 불굴의 응전 의지를 불태워 인류역사의 진보를 이끈 창조적 소수자로 우뚝 섰기 때문일 것이다.
1996년 애플에 다시 복귀한 그는 기술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를 추동한 힘은 인문학적 소양이었다. 그가 일군 성공의 신화는 우리가 왜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인문학은 사회적 약자들이 꿈을 잃지 않고 신자유주의 거센 파고를 뚫고 나갈 힘을 주는 희망의 오아시스로 다가선다.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강자가 되려 한다. 자본의 정글 먹이사슬 가장 위에 위치한 이들은 미국 월가의 인재들일 것이다. 몇 해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부른 이들의 탐욕은 그칠 줄 몰랐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이제 빈부격차 해소와 일자리를 요구하는 도심시위대의 구호는 뉴욕을 넘어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상의 승자들은 몇 해 전 월가가 촉발한 세계적 금융위기를 맞아 그 주역들을 배출한 하버드대학 전 총장 루이스(Harry R. Lewis)가 발한 자성의 목소리를 기억해야만 한다.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영혼 없는 수월성(Excellence Without a Soul)'의 추구가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으며, 그 결과 공동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재앙을 초래했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인문학적 소양은 승자들이 물신(物神)의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고 깨어있게 해주는 성찰의 지혜를 주는 힘이자 영혼의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이기도 하다.


<딥 임팩트>                                       뉴욕 월가 행진                                  해리 루이스

"늦게 핀(Late Blooming) 꽃 한송이"
미국의 위기는 남의 집에 난 불이 아니다. 우리 미래를 짊어진 청년들이 '88만원 세대'로 자신을 낮추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날로 심해지는 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나아가 인종과 문화가 뒤섞일 수밖에 없는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접어들고 있는 오늘, 세대와 계층, 인종과 성차(젠더) 등 모든 사회·문화적 울타리를 넘어 지향과 이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인문학적 소양일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영감과 지혜를 주는 보물창고이자, 약자에게 힘을 주는 희망의 오아시스이기도 하며, 영혼이 썩지 않게 지켜주는 소금으로도 다가선다. 거센 물살에 쓸려 내려간다고 느낄 때 야구선수 이대호와 가수 송대관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홈런타자 이승엽도 3할 타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범인(凡人)들은 열 번 중 두 번, 아니 한 번만 안타를 쳐도 된다는 이야기다. 자, 투수의 손을 떠난 볼을 매섭게 노려보며 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러보자. 기회는 삼세번이라지 않는가? 기회가 1회에 올지 9회말에 올지 연장 12회말에 올지 누가 알겠는가? 20대에 활짝 핀 나훈아보다 한 살 많은 송대관은 오십줄에 접어들어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지 않나. 바람과 서리를 견디며 늦게 핀(Late Blooming) 꽃이 더 오래도록 아름답게 피어 있기에, 도전과 응전의 세상에서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문학은 위기일까? 잡스의 삶이 명증(明證)하듯, 인문학자의 위기일 뿐이다. 종교가 하늘에서 내려주는 동아줄이라면 인문학은 깨어있는 주체로서 우리 스스로가 꼬아 올리는 구원의 동아줄이라 할 수 있다. 시민을 위한 인문학,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은 물론, 경영자를 위한 인문학과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까지...
우리 시민사회는 니체가 말한 "삶에 봉사하는 인문학"에 목마르다. 이제 인문학자들이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답할 때다. 그리고 인문학은 기술의 편리성을 훌쩍 넘어선 문화의 꽃을 피우는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허동현 huhdh@khu.ac.kr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동 대학교 교양학부장·학부 대학 학장 역임. 주요저서로 <건국·외교·민주의 선구자 장면>`(1999), <근대한일관계사연구>(2000)가 있으며, 공저로는 <우리역사 최전선>(2003),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2009), <인문학 콘서트>(2011) 등이 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