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0 : 문화적 영감 - 창조적 사유를 위한 아이디어, 개념미술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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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적 영감 
창조적 사유를 위한 아이디어, 개념미술

개념미술의 아이디어를 단지 미술사적인 개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미학적, 철학적, 예술적 창조력의 원천으로 보아야 한다.


작품의 의도와 개념을 중시
1965년, 스무 살의 젊은 청년인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는 전시장에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았다. 그는 작품 <하나이자 셋인 의자들(One and Three Chairs)>을 위해 실제 의자를 놓고, 실물크기로 찍은 의자 사진과 의자를 설명하는 텍스트를 벽에 붙였다.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한 지점,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개념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용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개념미술(Concepture Art)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미술사조라기보다는 1960년대 생성된 현대미술의 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초 키앤 홀츠(Edward Kienholz, 1927`~`1994)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조각가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에 의해 정의되었다. 솔 르윗은 1967년 <아트포럼>에 “개념예술에서 이념이나 개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양상이고, 이념은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라고 서술했다. 개념미술은 또한 플럭서스(Fluxus) 그룹이나 다다의 아방가르드 활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시각적인 대상보다는 그 대상을 바라보는 관념, 즉 작품의 의도나 개념,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술이다.


조셉 코수스 作<하나이자 셋인 의자들(One and Three Chairs)>                          솔 르윗 作<Serial Project No 1 (ABCD)>



예술의 권위를 일상성으로 되돌려
전통의 틀을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개념미술의 정의는 20세기 초 왕성하게 활동했던 뒤샹과 다다이스트들의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 산업사회가 도래하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산업적 오브제의 끊임없는 생산과 파괴적 전쟁의 영향으로 ‘창조성’에 대한 생각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잘 알려진 마르셀 뒤샹은 1917년 작품 <샘(Fountain)>을 통해 레디메이드의 개념을 미술계 안으로 끌어들였다.
일체의 변형도 없는 제품 소변기에 서명만 남긴 이 작품은 감상자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면서 ‘도대체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을 던졌다.
산업화에 인본주의가 매몰되고 전쟁을 통해 모든 것들이 잿더미로 변하는 세계의 현실에 뒤샹의 작품은 창조와 존재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며 아방가르드의 정신이 되었다. ‘무엇을 재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가?’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것, 그 자체가 다다이즘의 핵심 사상이었고, 예술의 권위를 일상성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물론 다다의 아방가르드 정신이 기존 미술계에서 작품으로 인정됨으로써 자가당착에 빠졌지만, 개념을 중요시하는 이 운동은 20세기 현대미술 전체의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방가르드는 미술은 물론 문화·사회·정치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바로 ‘개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마르셀 뒤샹 作<샘(Fountain)>



혁신적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
다시 코수스의 작품으로 돌아가보자. 코수스의 의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의자’와 ‘의자사진’, 그리고 ‘의자라는 개념어’ 중 어느 것을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는 하나의 사물과 그것을 완벽히 재현한 그림(사진), 그리고 개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선 실제 의자는, 의자라는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기호로 사용됐다. 작품의 맥락 속으로 들어오면서 더 이상 앉을 수 없는 의자가 된 것이다. 또한 사진은 실제 의자의 모상으로 실체를 가지지 못하고 사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만 증명해준다. 마지막으로 텍스트는, 의자라는 형상과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연결하는 하나의 관념어일 뿐이다. 이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와 허상의 관계를 드러낸다. 천상에 있는 의자의 형상을 모방하는 현실적 의자는 허상일 뿐이라는 플라톤의 철학대로라면 실제 의자와 의자의 이미지는 허상과 허상의 허상이 되는 것이다. 즉 둘 다 허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것은 관념 밖에 없다. 현실에 존재하진 않지만 존재하는 관념, 그것이 바로 개념인 것이다.
이처럼 코수스의 작품은 사물과 의미 사이의 개념화 과정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는 기표와 기의를 동시에 발가벗겨버림으로써 해석의 문제를 표면 위로 급부상 시켰다. 도대체 개념이란 무엇인가? 그는 ‘예술은 종래의 철학을 논리적으로 초월할 수 있는 논리적 주장을 갖는 새로운 예술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개념미술이다’라고 설파했다. 이와 같이 개념미술은 형상의 틀을 벗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것이다.


한스 하케 作<모마투표(MOMA Poll)>

행위와 공허의 아이디어
개념미술의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1970년 한스 하케(Hans Haacke, 1936`~`)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여론조사, <모마투표(MOMA Poll)>를 했다. ‘록펠러 주지사가 닉슨 대통령의 인도차이나 정책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당신이 11월 선거에서 그에게 투표하지 않는 이유가 됩니까?’라는 질문을 벽에 붙이고, 또 ‘만약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왼쪽 투표함에 투표해 주시고,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오른쪽 투표함에 투표하세요’라는 지시문을 부착했다. 그 앞에는 자동집계기가 부착된 투명 아크릴 투표함 두 개를 설치하고, 여섯 가지 색상으로 분류된 투표용지를 관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관객들이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투표함에 갖가지 색상으로 채워지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미술이라고 할 것인가? 정치적 개입과 퍼포먼스의 과정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예술이라고 규정하는 선입견의 범위를 쉽게 떨쳐버린다면 하케의 <모마투표>는 훌륭한개념미술이라 할 수 있다. 형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은 바로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는 가장 좋은 길인 것이다.
미국의 개념미술에서 살짝 벗어나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개념미술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기 바로 전 이브 클렝(Yevs Klein, 1928`~`1962)은 1958년 이리스 클레르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많은 관객들이 모였고, 푸른색 천 휘장이 설치된 건물입구의 복도를 지나 전시장으로 입장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단지 비어있는 하얀 전시장만 바라볼 수 있었다. 바로, 작품 <공허(Le vide)>를 감상한 것이다.
클렝은 마법사와 같은 예복을 입고 관람객을 몇 명씩 제한해서 오직 하얀색 벽만 있는 전시장을 직접 안내하며 다녔다. 소설가 알베르 까뮈는 ‘공허와 함께 충만한 힘’이라고 방명록에 쓰며 클렝의 감수성을 치하했다. 클렝은 바로 대기에 확산되어 있는 회화적 감수성,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허를 전시한 것이다.


이브 클렝 作<공허(Le vide)>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사유
개념미술은 이처럼 전위적인 정신, 즉 아이디어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개념미술에서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틀을 전환시키려는 혁신적 의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탈물질화된다고 해서 무조건 의미가 잇는 것은 아니다. 솔 르윗이 기고문에서 밝혔듯이 ‘개념미술은 개념이 훌륭할 때에만 훌륭하다.’ 즉 우리가 어떠한 개념을 접할 때 그 개념이 창조적이고 수용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전달해 줄 때에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미술의 비물질화는 예술에 있어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며 예술화의 과정 전체를 바라보게 한다. 전통예술이 하나의 형상에 자신의 아이디어와 철학을 모두 투영했다면, 개념미술은 예술이라는 개념에 투영하려고 하는 인간의 사유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개념미술의 철학은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미지 범람의 디지털 사회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의 실천장이자 크리에이터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되었다. 미술을 과학과 철학, 경제와 산업 등 수많은 분야와 융합시키고 경계를 확장시키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실체를 가지면서 동시에 실체가 없는 개념의 축적물이라 할 수 있다. 개념미술의 아이디어를 단지 미술사적인 개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미학적, 철학적, 예술적 창조력의 원천으로 보아야 한다.
이 시대의 예술적인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끊임없이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 바로 개념미술이다.
바로 훌륭하고 창조적인 개념을 위해서 말이다.


백곤

모란미술관 학예사 | paikgon@naver.com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사. 대안공간 루프, 대안공간네트워 크, 토탈미술관, 스페이스 캔 등에서 활동‘. 선무_세상에 부럼 없어라’(2008‘), Lack of Electricity 미디어아트, 전기 나갔을 때 대처방안’(2009)전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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