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발전소
'대중성'도 삶의 성찰에서 나온다
<휴머니스트> <공동경비구역 JSA>
그렇다면 창작의 밑거름이 되는 올바른 관찰이란 무엇인가? 그냥 거리를 지나치며 무심코 바라보는 가로수와 자동차는 구경에 그칠 뿐, 올바른 관찰이라 할 수 없다. 올바른 관찰이 되기 위해선 보고 듣고 느끼는 대상에 관한 사려 깊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구걸하는 걸인을 보았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우선, 그나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동전 몇 닢이라도 건네며 측은지심이라도 표현할 것이다. 둘째의 경우는 일단 매몰차게 거절하며, 심지어 얼마나 게으르게 살았으면 그런 처량한 꼴이 됐겠느냐며 도덕적 정죄까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사물을 액면 그대로만 보고 판단하려는 태도는 올바른 창작자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다. 창작을 위한 올바른 관찰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일단 상대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이는 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 걸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쩌다가 거리에서 구걸까지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는지, 그의 마음속에 혹시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은 없는지 등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떠올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창작의 영감은 이처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세상의 하찮은 모습들로부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 무엇 하나도 소홀히 여기며 흘려보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의 감독 데뷔작인 <휴머니스트>는 90년대 중반 부모를 살해하고 집을 불태웠던 박한상이란 패륜아의 얘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박찬욱 감독과 공동집필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 내에서 일어난 어느 권총자살 사건에 상상력을 덧붙임으로 탄생됐다. 현재 집필을 마친 <겨울 방랑자>와 <각하와 영부인>은 술자리 안주처럼 흘러나온 얘기를 놓치지 않고 기록한 것들이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면서 남들이 무심코 흘려 넘길 것들에도 관심을 갖고 관찰하려는 태도를 갖추려 노력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는 머리 복잡한 영화는 딱 질색”, 혹은“ 나는 마치 안 듣는 것처럼 편안한 음악이 좋더라”라고 말하는 경우들이 있다. 머리가 복잡한 게 싫고, 단지 편안하고 싶기만 하다면 아무것도 듣지 않고 보지 않는 게 옳다. 만약 다른 이의 창작물이 내 마음을 움직일만한 그 어떤 충격도 주지 못한 채 단지 편안함만 제공한다면 그 행위는 분명 시간낭비일 뿐이다.
로버트 앨터먼 저 <MASH>
전복하기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없는 작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작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말처럼, 비록 창작자로서 내 행위의 가장 큰 미덕이 대중친화적 결과물을 낳는 데 있다 하더라도 항상 마음속으로 인생에 관한 깊은 성찰의 시선을 가지려 하며,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또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올바른 창작의 자세는 기존의 틀을 허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한자로‘ 창(創’)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념이다. 전복적인 태도가 필요하단 얘기다. 작가 찰스 부코우스키(Charles Bukowski)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나는 체제를 붕괴키 위해 노력했던 모든 자들을 존경한다. 반대로 체제의 완성이나 유지를 위해 노력했던 자들 모두를 경멸한다”고 외쳤다.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난‘ 할리우드의 반골감독’ 로버트 앨트먼(Robert Altman)은 영화 만드는 일을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쌓았던 모래성에 비유한 바 있다. “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성을 쌓는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면 다들 엄마 아버지를 찾아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 아침 바닷가에 돌아오면 모래성은 오간 데 없다. 밤새 파도가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실망하지 않고 다시 그날의 모래성을 쌓곤 했다.”
창작은 결국 매번 새로운 모래성을 쌓는 갓과 같은 작업이다. 누군가에게 모래성 쌓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내손으로, 내 방식으로 지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외롭고 두렵고 또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아름다운 창작물들이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무한한 환희와 감동을 전할 것이다
'대중성'도 삶의 성찰에서 나온다
창작자로서 내 행위의 가장 큰 미덕이 대중친화적 결과물을 낳는 데 있다 하더라도 항상 마음속으로 인생에 관한 깊은 성찰의 시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무리 테크놀로지가 발전한다 해도 여전히 대중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인간의 상상력이다. 테크놀로지는 어차피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조역일 뿐이다.
그렇다면 상상력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한단 말인가? 첫째는 관찰이고, 둘째는 관찰한 내용들은 어떻게 분석하며 창작에 적용하는가 하는 창작자의 자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상만사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올바른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올바른 세계관이란 각각의 시각에 따라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다.
<휴머니스트> <공동경비구역 JSA>
그렇다면 창작의 밑거름이 되는 올바른 관찰이란 무엇인가? 그냥 거리를 지나치며 무심코 바라보는 가로수와 자동차는 구경에 그칠 뿐, 올바른 관찰이라 할 수 없다. 올바른 관찰이 되기 위해선 보고 듣고 느끼는 대상에 관한 사려 깊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구걸하는 걸인을 보았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우선, 그나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동전 몇 닢이라도 건네며 측은지심이라도 표현할 것이다. 둘째의 경우는 일단 매몰차게 거절하며, 심지어 얼마나 게으르게 살았으면 그런 처량한 꼴이 됐겠느냐며 도덕적 정죄까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사물을 액면 그대로만 보고 판단하려는 태도는 올바른 창작자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다. 창작을 위한 올바른 관찰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일단 상대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이는 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 걸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쩌다가 거리에서 구걸까지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는지, 그의 마음속에 혹시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은 없는지 등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떠올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창작의 영감은 이처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세상의 하찮은 모습들로부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 무엇 하나도 소홀히 여기며 흘려보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의 감독 데뷔작인 <휴머니스트>는 90년대 중반 부모를 살해하고 집을 불태웠던 박한상이란 패륜아의 얘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박찬욱 감독과 공동집필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 내에서 일어난 어느 권총자살 사건에 상상력을 덧붙임으로 탄생됐다. 현재 집필을 마친 <겨울 방랑자>와 <각하와 영부인>은 술자리 안주처럼 흘러나온 얘기를 놓치지 않고 기록한 것들이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면서 남들이 무심코 흘려 넘길 것들에도 관심을 갖고 관찰하려는 태도를 갖추려 노력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는 머리 복잡한 영화는 딱 질색”, 혹은“ 나는 마치 안 듣는 것처럼 편안한 음악이 좋더라”라고 말하는 경우들이 있다. 머리가 복잡한 게 싫고, 단지 편안하고 싶기만 하다면 아무것도 듣지 않고 보지 않는 게 옳다. 만약 다른 이의 창작물이 내 마음을 움직일만한 그 어떤 충격도 주지 못한 채 단지 편안함만 제공한다면 그 행위는 분명 시간낭비일 뿐이다.
로버트 앨터먼 저 <MASH>
전복하기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없는 작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작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말처럼, 비록 창작자로서 내 행위의 가장 큰 미덕이 대중친화적 결과물을 낳는 데 있다 하더라도 항상 마음속으로 인생에 관한 깊은 성찰의 시선을 가지려 하며,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또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올바른 창작의 자세는 기존의 틀을 허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한자로‘ 창(創’)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념이다. 전복적인 태도가 필요하단 얘기다. 작가 찰스 부코우스키(Charles Bukowski)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나는 체제를 붕괴키 위해 노력했던 모든 자들을 존경한다. 반대로 체제의 완성이나 유지를 위해 노력했던 자들 모두를 경멸한다”고 외쳤다.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난‘ 할리우드의 반골감독’ 로버트 앨트먼(Robert Altman)은 영화 만드는 일을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쌓았던 모래성에 비유한 바 있다. “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성을 쌓는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면 다들 엄마 아버지를 찾아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 아침 바닷가에 돌아오면 모래성은 오간 데 없다. 밤새 파도가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실망하지 않고 다시 그날의 모래성을 쌓곤 했다.”
창작은 결국 매번 새로운 모래성을 쌓는 갓과 같은 작업이다. 누군가에게 모래성 쌓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내손으로, 내 방식으로 지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외롭고 두렵고 또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아름다운 창작물들이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무한한 환희와 감동을 전할 것이다
이무영
팝 칼럼니스트·영화감독 | antonsong@naver.com
팝 칼럼니스트·영화감독·시나리오 작가. 영화 <휴머니스트>로 감독 데뷔, <간첩 리철진> <아나키스트> <공동경비구역 JSA>의 각본을 맡아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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