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짓하다 딱 걸렸어!
‘딴 짓’. 착하게 풀어 쓰면‘다른 행동’쯤 되겠다.
분명 ‘바른 행동’ 이나 ‘원래의 행동’ 과는 길이 다른 행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느새 ‘필요한 행동’이 되었다.
얼마 전 신년회 겸 조촐하게 식사를 하게 된 우리 팀은 “다 같이 영화나 한 편 볼까”라는 팀장님의 한마디에 우르르 시네큐브로 향했다. 우리가 이렇게 즉흥적으로 보게 된 작품은 아르헨티나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The secret in their eyes)>. 이미 암암리에 페이스북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던 이 영화는 알고 보니 2010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꽤나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였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꽤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처럼 사람의 눈동자가, 즉 사람의 시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는지 전해주고 있었고, 난 내 눈동자로 열심히 그 시선을 따라갔다.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 글자까지.
영화 <비밀의 눈동자> 포스터와 장면들
딴 짓의 즐거움
아주 기분 좋은 딴 짓이었다. ‘딴 짓.’ 착하게 풀어 쓰면 ‘다른 행동’쯤 되겠다. 분명 ‘바른 행동’이나 ‘원래의 행동’과는 길이 다른 행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느새 ‘필요한 행동’이 되었다. 어디서나 강조하고 있는 다른 생각, 다른 세상, 다른 사람 등과 맥을 같이 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이 시대가 참 좋아하는 ‘다른’이라는 단어의 다른 표현이 ‘딴’이다. 덜 정중하고 덜 엄격해서 난 ‘딴’이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든다.
고등학생 때는 딴 짓하면 분필가루 잔뜩 묻은 칠판지우개가 날아 오고, 대학생 때는 딴 짓하면 학고가 날아오고, 연애할 때는 딴 짓하면 싸대기가 날아왔는데…. 요새는 딴 짓하면 아이디어가 날아온다(하하`~갑자기 너무 모범생 같은가?)
딴 짓 = 나쁜 짓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던 시대는 아무래도 가지 않았나 싶다. 글쎄, 내가 부모의 입장이고 선생님의 입장이면 딴 짓하는 학생이나 자식이 그렇게 곱게 보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딴 짓 = 생산적인 짓’이 지금 이 시대의 담론인 것은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교보문고에 갔다가(이것도 광고주 갔다가 잠깐, 아주 잠깐 서점으로 새서 한 딴 짓) 집어든 <트렌드 코리아 2011>에서도 ‘딴 짓의 즐거움’이 2010년의 트렌드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책들에서 예상한 키워드들이 1년 쯤 후에 유행하는 지금까지의 역사적 태세를 볼 때 딴 짓은 분명 올해의 트렌드가 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까다로워지다 못해 모순덩어리들이 되어가고 있다. 너무 많이 아는 그 나르시스트들은 언제나 바람피울 준비도,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준비도 되어있다. 나 또한 그런 소비자이다. 그런 그들을 광고 하나로, 캠페인 하나로 뻑 가게 하려면 우리도 바람을 펴야 한다. 우리도 때로는 모순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에 딴 짓만큼 좋은 것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딴 짓에서 건져 올린 ‘시선’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 보자. 영화감상이라는 딴 짓을 하다 나에게 딱 걸린 소재는 ‘시선“이다. 그 시선은 곧 욕망과도 연결이 된다. 욕망을 표출하는 그 질기고도 질긴 시선. 사실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이 솔직히 그렇게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선‘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사물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었다. 하지만 내가 영화에서 건진 시선은 오히려 더 단순하고 1차적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시선. 절대 숨길 수 없는 시선. 당사자는 모르지만 제 3자는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비밀이지만 결코 비밀이 될 수 없는 그 시선이다. 과연 그 시선, 즉 그 눈동자가 사람의 욕망을 어디까지 말해줄 수 있을까?
이쯤이면 어떤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하든 하나의 스토리는 나오겠다 싶었다.
사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딴 짓은 사진이다. “취미가 사진이에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어서, 사진은 나에게 딴 짓이 되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필름 SLR이 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만날 때 느끼는 이상야릇한 쾌감도 있지만, 뷰파인더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이상하게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초점이 아주 또렷한 나만의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내가 딴 짓을 하다 나에게 딱 걸린 ‘순간’이다.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감독이었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리고 최고의 모델. 하나의 작품을 위해 모여 있지만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세 사람. 사진찍기라는 딴 짓을 하다가 나에게 딱 걸린 것은 저 사진 한 장 자체다. 우리나라 CF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 사람이 내 뷰파인더 안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걸려버렸다. 사실 촬영장은 딴 짓을 하기에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다. 그래도 쉬는 시간 틈틈이 투명인간처럼 살금살금 셔터를 눌러댔더니 저렇게 좋은 사진 한 장이 내 품으로 왔다.
딴 짓을 하다보면 ‘사람’을 발견한다. 고로 인사이트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받은 우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브레인스토밍이 또 있을까? “Different한 딴사람 되고 싶다면, Different한 딴 광고하고 싶다면 2011년엔 열심히 딴 짓해 보자. 혹시 알아? 시크릿가든의 김주원과 길라임처럼 운명을 바꾸게 될 어마어마하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인생이라는 그물망에 딱 걸려들지!”
조성은
채은석GCD팀 ACD | chocopy@hsad.co.kr
매력적인 오답에서 예기치 못한 정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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