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러 가지 엔터테인먼트적인 기능을 완비한 도요타의 ‘bB’는 새로운 판매 타깃인 젊은 여성들에게 bB와 함께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자 두 미디어의 이색적인 연계를 시도했다. |
2011년 일본 광고계의 가장 큰 이슈는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의 완전 디지털화(이하 지상파 디지털화)라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약해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의 힘이 비교적 건재한 일본에서도 이번 지상파 디지털화로 인해 미디어간의 융화가 더욱더 용이하게 이루어지고, 미디어간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광고 캠페인이 전개된다면 기존 미디어의 위상은 지금까지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TV, 지상파 디지털화로 새로운 역할론 대두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TV수상기 보급이 ‘에코 포인트’ 등 정부 주도의 보급률 향상정책에 힘입어 1억 대를 돌파하고 디지털화 준비율이 90%를 넘었다고는 하지만, 오는 7월의 실시 이후 혼자 사는 젊은층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TV 비시청 인구의 급속한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정보의 생산자·소비자·보급자로서의 역할이 중시되는 젊은 계층의 ‘TV가 없는 라이프스타일’의 완성은 TV업계 관련자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미래인 것이다(일본이 과거 광통신 유선 인터넷 보급이 우리나라보다 늦었던 것도 초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젊은 계층이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이유의 하나로 거론되었고, 반대로 그들이 손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휴대폰(모바일)과 관련 컨텐츠는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이 되었었다).
미디어 간의 주도권 다툼이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 분명한 시점에서 이 패권다툼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계층의 유동적인 자세는 TV의 불안요소임과 동시에 분발을 유도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시사점을 얼마 전에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인 오자와(小澤) 전 민주당 대표가 한 동영상 사이트에 출연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자금 스캔들과 관련한 입장 표명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을 때 기존 미디어와 일체의 접촉을 거부해 왔던 그가 니코니코 동영상 사이트(http://live. nicovideo.jp/,‘니코니코’는 웃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이어서 바둑대담에 야당의 대표와 출연한 것이다.
그는 출연 이유를 “특정 다수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이트를 통해 간단하게 다수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의견(반론)을 하나하나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이에 평소 정치에 무관심이었던 젊은 계층이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기존의 미디어는 이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TV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화제가 되면서 여러 계층으로 더욱더 확대되었고, 이는 다시 사이트 방문자 수의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의도하지 않았던 미디어 간의 멋진 연계’라는 평가보다는 ‘인터넷이 TV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이긴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인터넷 업계 종사자들은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젯거리나 볼거리의 제공은 항상 TV의 몫이었고, 이를 인터넷이 다양한 방법으로 재생산해내고 면밀히 확대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화젯거리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받았으니 그러한 흥분도 이해할만 하다.
이번 니코니코 동영상 사이트의 사례처럼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에 대한 고집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생산자 측면의 논리일 뿐 소비자와는 무관계의 논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서 흥미를 유발하고 즐기게(참여하게) 했으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누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앞으로 미디어 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림 1> 니코니코 동영상 사이트에 등장한 오자와(小澤) 전 민주당 대표(자료: 니코니코 동영상)
도요타 bB, 인터넷과 잡지의 연계로 화제
한편 의도된 ‘적과의 동침’, 미디어 간의 연계가 돋보인 사례도 있다. 일본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전문지식 이용을 두고 인터넷과 잡지는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그동안 잡지사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광고주와의 연계로 인한 잡지와 인터넷의 만남은 있었지만 포털 사이트와의 본격적인 연계는 최근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도요타 자동차의 소형차 ‘bB’를 광고주로 하여, 야후재팬의 동영상 사이트인 GyaO와 젊은 여성들에게 여러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해 왔던 유명잡지 <하나코(Hanako)>와의 연계가 그것이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여 여러 가지 엔터테인먼트적인 기능을 완비한 도요타의 ‘bB’는 새로운 판매 타깃인 젊은 여성들에게 bB와 함께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자 두 미디어의 이색적인 연계를 시도했다. 주말 드라이브 코스 정보 제공은 물론, 드라이브 나갈 때의 패션에서 코스 예정지들의 관광정보(특산품·음식 등)까지 제공하고, 유명 여배우를 등장시킨 동영상을 통해 ‘리얼한 대리 체험’이라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한 것이다. NHK 대하 드라마의 주연배우로 지금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여배우의 등장은 개인 미디어나 쇼셜 미디어를 통해 같은 또래의 여성들에게 큰 화제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인터넷 사이트도 잡지도 수익성을 보장받는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그림 2> 야후재팬!의 동영상 사이트 GyaO!와 여성잡지 <Hanako>를 연계한 도요타 자동차의 캠페인(자료: 야후재팬!)
‘흥미 있는 틀’ 제공 후 ‘완성’은 소비자에 맡겨
일본에서는 올해 7월 이후 미디어 간의 본격적인 주도권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에 소비자들이 어떤 미디어를 그들의 생활공간에서 더 자주 사용하고 접촉할 것인가, 즉 그들의 흥미를 끌만한 콘텐츠를 어떤 미디어가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승자가 정해질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동안 콘텐츠의 제공(생산)은 매체사·광고주·광고회사의 역할일 뿐 소비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그리 많이 않아 완성된 뒤에 그것을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소비자들이 콘텐츠의 제공자(생산자)도 되고 소비자도 됨으로써 기존의 콘텐츠 제공자들의 관여 없이도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이 완성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결국 이제 광고주와 광고회사는 완성품으로서의 콘텐츠 제공이 아니라 ‘흥미 있는 틀’을 만들고 그 나머지는 소비자들이 완성시키게 하여 개개인에게 서로 다른 추억거리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 노골적이고 일방적인 제품구매로의 유도보다도 이러한 미디어의 접촉경험이 구매행동에 더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박형렬
마케팅 컨설턴트 | catfish61@hanmail.net
부산외대 일본어과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마케팅 이론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광고학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