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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 혁 I 영산대 매스컴학부 교수
kie0716@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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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d in Upper 4’ 란 군용열차에서 윗줄의 4번 침대에 자리한 젊은이를 의미한다. 본 내용은 일개 철도회사의 광고이지만 지극히 호소력 있는 내용으로 인하여 2차 세계대전중 미국의 전 국민에게 인내와 전쟁 지원을 호소하는 광고로 널리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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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광고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주장하는 것으로 지면이나 시간을 채우고 있다. 판매하려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눈길을 끌어들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광고는 그런 것이 아닌 다른 것에 눈길을 끌어들이고자 할 때도 있다.
그것이 기업 이미지 광고일 경우, 특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의 경우 제품이나 서비스는 간 데 없고 자신들의 사회에 대한 봉사나 국가 발전을 위한 노력, 더 나은 미래생활을 위한 연구 등을 알리는 것으로 가득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런 광고들은 과연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시작되었을까?
오늘날의 이런 광고들은 그 조상을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의 한 철도회사의 광고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광고의 사례를 연구한다는 것은 연구의 대상이 되는 광고가 나오게 된 사회, 문화적 배경과 그 광고로 인하여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사회 제도 속에서 하나의 현상으로서의 광고의 역할을 이해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그 사례를 통하여 광고의 발전 과정을 조명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중에 미국의 국가적인 인내와 단결을 이끌어내어 전쟁 승리의 일익을 담당했던 New Haven Railroad사의 광고는 ‘advocacy advertising’이란 광고 단어를 탄생하게 만든 광고로서 사례 연구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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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하는 고객을 부끄럽게 만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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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New Haven Railroad의 광고는 어떠한 상업적인 메시지나 제품에 관한 얘기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광고는 광고에 있어 advocacy advertising이라는, 전혀 새로운 장르를 열게 된 것이다.
New Haven Railroad의 광고는 사실 뭔가가 달라 보인다. 일단 감상적이고 순수하게 보이는 아트워크가 다르게 보이며, 적당하게 기울어진 카피 블록이 달라 보인다. 유명한 일러스트 작가 Ed Georgi에 의해 준비된 이 광고는 아래쪽 침대에는 서로 등을 돌리고 두 젊은이가 잠들어 있고, 위에는 비록 전등이 뒤에 있지만 빛에 의한 그림자는 없이 주인공 애송이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 있는 모습인데, 이러한 부분이 바로 이 광고의 카피를 한껏 살려준 것으로 보인다.
이 광고의 카피를 작성했던 Nelson Metcalf Jr.에 따르면 당초 이 광고의 카피 블록은 똑바로 세워 놓여지도록 개발되었으며, 그리하여 그 상태대로 광고주에게 화판을(우리나라도 불과 10여년 전까지 흑백으로 제작된 광고 화판을 들고 광고주를 방문했다) 제시했더니 광고주 측에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다고 한다.
이에 Metcalf의 상사는 그 문제점을 금방 알아차렸고, 결과적으로 카피를 침대칸에 누워 있는 젊은이들과 수직이 되도록 놓음으로써 일반 독자들은 비스듬한 경사로 놓여진 카피를 보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즉, 젊은이들은 카피 블록으로 인해 한편으로 몰아버린 모습이 되었는데, 그 결과 독자의 시각을 달리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지면상에 공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결국 광고는 그렇게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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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광고가 왜 태어나게 되었는가를 잠시 살펴보자.
New Haven Railroad는 항상 서비스가 좋지 않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두 가지 다른 일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데 있었다. 하나는 전쟁을 위해 병력을 나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시민들을 직장까지 태워다 주는 것이었다.
이 광고의 아래 부분을 보면 조그만 글씨로 이 회사는 스스로를 “매사추세츠, 로드 아일랜드, 코네티컷 등 3개의 산업중심 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 회사의 주된 일은 뉴욕의 맨해튼에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 회사의 열차를 출퇴근 전용으로 사용하는 인근 시민들 사이에는 그 회사의 충실하지 못한 서비스로 인해 악명이 높았으며, 특히 전쟁이 벌어지자 악명은 더욱 높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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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Metcalf에게 주어진 일은 광고를 통하여 그러한 불평을 잠재우는 것이었다. 승객들이 식당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불평하는 것을 막고,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좀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게 만들며, 부당한 서비스로 인해 회사의 경영진에 항의하는 것을 잠재우는 것 등이 바로 그가 광고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오늘날처럼 매스 미디어의 홍수로 인한 정보 과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이 광고에 주어진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매체의 숫자가 많지 않고, 더구나 소비자들이 오늘날과 같이 약삭빠르지 않았던 시대라는 점에서 광고는 오늘날에 비해 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야말로 물 좋은 시대였기에 그런 시도가 가능했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점은 오늘날에도 반드시 불가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Metcalf가 일했던 보스턴에 있는 Colton 대행사는 신속한 운송을 요구하며 불만으로 가득찬 승객들에게 ‘전선을 향해 떠나는 병사들에게 우선권을(Right of Way for Fighting Might)’이란 말을 힘주어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또한 ‘철도 위의 천둥소리(Thunder Along the Line)’라는 광고로 철도 노동자들의 길고도 고된 일을 내세워 불만을 잠재우려 시도해 봤지만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이에 Metcalf는 승객들이 철도 서비스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뭔가 좀 독특한 광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Metcalf 1991, 24; emphasis in original). 그리고 그런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이 광고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광고 카피를 읽는 순간 왜 그런지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나쁜 서비스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용하여, 어쩌면 교활하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Metcalf는 자신 있게 “인내하라”고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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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ocacy advertising의 핵-감상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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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에서는 kid(아이)라고 했던 표현이 첫 문장으로 옮겨가면서 man(성인)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몇 줄 더 내려가서 어떻게 ‘위 칸 4번 침대의 아이’가 인류의 평화를 지켜낼 영웅적인 존재로 변해 가는 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 이 아이가 남겨두고 떠나온 것들의 목록을 보면 햄버거, 자동차, 소다팝, 강아지, 여자친구, 아버지, 어머니... 등 점차 중요한 순서로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부분에 이르면 이 아이는 목이 메는 것을 느끼게 된다.
Metcalf에 따르면 목이 메는 것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의 비서가 넣자고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광고 속의 아이만 목이 메는 것이 아니라 읽고 있는 우리의 목에도 뭔가가 걸리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 광고는 영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시적인 표현으로 카피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러한 시적인 표현은 그 아이가 나라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전쟁터로 떠난다는 숭고함은 잃지 않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감시키고 있다. 그리고는 “괜찮아...”라는 말을 넣으면서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읽는 이들도 동시에 감상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일 수도, 나의 아일 수도 있는 이 아이는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사랑하는 외아들에게 하듯이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를 살펴보자.
먼저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는 그 뿌리를 기독교 문화에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광고 속의 아이는 지치고 피 흘리는 세상을 위해 ‘새로운 희망과 평화, 그리고 자유’를 회복시키는 구원자로서 출연하고 있다. 마치 2000년 전에 예수가 그러했듯 그는 피 흘릴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왜 그 아이가, 비록 얼굴 뒤에 조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기독교 가정이나 교회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예수의 초상화와 비슷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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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종교적 자유의 공평성을 위해 예수의 초상화를 학교에서 떼어내라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이 초상화는 미국 어느 학교에나 붙어 있었다. Sallman의 작품 ‘예수의 초상화’는 대부분의 교회와 성경책, 게시판, 달력 등에 널려 있으며, 무수히 많은 지갑 사이즈의 예수의 초상화가 군인들에게 배포되었다.
군인들은 이 초상화를 지니고 다녔고, 이 광고를 보는 사람들은 광고 속의 아이 모습과 초상화 속의 예수의 모습을 비록 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느낌을 지닐 것이다.
특히 광고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교회의 목사와 신자들간에 교독되거나 암송되는 문장과 아주 흡사하다. 또 이 광고를 보는 사람과 철도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같은 리듬으로 구성된 기도문을 외우는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점으로서, 이제 왜 그런 비주얼이 나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좀더 쉬울 듯하다.
Metcalf는 하버드에 진학하기 전에 St. Paul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그는 거기서 “만일 당신이 통로에 서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앉을 자리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만일 당신을 위한 잠자리가 없다면 누군가 편히 잠자고 있다는 것입니다”와 같은 종교적 차원의 인내와 희생에 대한 교육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문장, 시민들의 인내를 요구하는 대목을 종교와 연결지어 생각한다면 이해는 더욱 쉽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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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광고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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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를 접한 사람들은 자신이 과연 전쟁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나의 아들을, 이웃의 아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제 단순한 아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의 희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귀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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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는 그렇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물론 New Haven Railroad에 빗발치던 항의를 일거에 잠재웠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New York Herald Tribune지에 1942년 11월에 1회용으로 게재되었다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 역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Office of War Information의 책임자 Elmer Davis는 그 광고를 미국 전역의 신문에 싣도록 명령했으며, 철도회사와 공공 기업체들이 이 광고를 후원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에 종이는 전쟁 물자로 여겨져서 인쇄광고는 되도록 줄이고 라디오에 의한 전파 광고가 주종을 이루었던 시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파격적인 조처라 아니할 수 없다.
그 광고의 카피는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고, 셀 수 없이 많은 게시판에 부착되었으며, 편지에 동봉되는가 하면 8,000통이 넘는 편지가 New Haven Railroad 사무실에 답지하기도 했다. 그 편지들은 물론 전쟁을 위해 계속 노력해 달라는 격려의 내용이 담긴 것임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아이’는 Life, Newsweek, Time지 등에도 등장했으며, MGM의 단편영화에도 나타났고 노래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이 광고가 적십자 기금조성, 전쟁 채권 판매, 국민의 헌혈 호소, 군인들의 사기 고취 등 국익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 광고는 ‘희생’을 ‘종교적 헌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광고가 이윤에 눈먼 기업들에게는 무엇을 가져왔을까? 또한 광고 분야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이 광고는 광고주들에게 ‘좋은 광고는 제품이나 서비스 판매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기업의 이미지 변화에 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광고는 이후 사회에 별로 기여한 바가 없거나 때로 악영향을 미친 기업주(술, 담배, 무기 생산업자 등)들에 의해서도 기업 이미지 제고나 개선을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 광고들은 대개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데, 기업체들은 그런 광고를 ‘issue advertising’이라 부르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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