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06 : 밀레니엄 인터뷰 - "실제로는 안될 거라고요? 그걸 실제로 해요!"

"실제로는 안될 거라고요? 그걸 실제로 해요!" - 현대무용가 안 은 미 - 나이트나 락카페에서 맘대로 흔드는 것 외에는 무용에 대해 무지한 나로서는 ‘무용가와의 인터뷰’가 적지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현대무용이라니. 그래도 <백조의 호수> 정도는 상식적으로나마 알고 있는데… 뉴욕의 무용계에서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받았고, 국내 공연 때마다 파란과 혁신을 불러 일으켰으며, 대구시립현대무용단의 단장까지 맡고 있는 거침없는 행보. 그 놀라운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낯설지만 뭔가 강렬한 느낌을 안고… 그녀를 만났다.   강동균 : 안은미 단장님 하면 사람들이 먼저 생각하는 게요... 안은미 : 알아요. 빡빡 머리, 파격, 누드공연...그런 거죠?   네, 맞습니다(웃음). 머리를 삭발하신 이유는요? 71년에 처음 머리를 밀었어요. 당시 <도둑비행>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 내용이 ‘자유’에 대한 거였어요. 자유를 실천하는 용기, 그런 걸 표현하기 위해 삭발을 했던 건데, 내 개인적으로도 바랐던 것이기도 했죠. 평소부터 무의식중에 머리를 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머리를 깎을 때도 너무 기뻐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하고 나니까 ‘이게 정말 해보고 싶었던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또 남들이 다 예쁘다고 해주니까(웃음) 계속 이런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죠. 가끔 가발로 다른 헤어스타일을 연출하는데… 정말 쉽고 자유로워요. 이를테면 디지털 시대의 헤어 연출이랄까요?(웃음)   뉴욕에서 오래 배우고 활동하면서 얻으신 것 중 가장 큰 건 뭔가요? 상상력이죠. 우리 같은 사람은 상상력, 창의력으로 먹고 사는데... 문제는 상상력을 얼마나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죠. 처음엔, 우리가 왜 외국에게 밀리냐 싶구, 그 사람들은 얼마나 잘 하나, 보러 갔어요. 한편으론 거기선 눈치 볼 게 없으니까 내 마음대로 활동했구요. 말하자면 예전에는 생각만 하고 표현 못했던 눌려 있던 상상력이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분출될 수 있었던 거죠, 그랬더니… 그 쪽 사람들도 잘 한다고 칭찬해주더라구요… 그러니까 더 신나서 더 많은 상상력이 떠오르고. 그래서 지금은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로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대구시립무용단을 맡게 되신 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였고, 그 쪽에서도 날 불렀을 때는 이미 각오했다고 봅니다. 뭐, 내가 최고라는 게 아니라 내 작업방식을 의미 있다고 생각했을 거라는 얘기죠. 변화와 혁신을 원했다고 할까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반응이 좋습니다. 제가 비교적 젊은 편이고 주위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서… 그 쪽 분위기를 젊고 명랑하게 만들었다는 말을 들어요. 또, 나로 인해서 대구시민의 관심과 흥미를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구요. 길을 가는데 “어, 대머리 저 사람 TV에 나온 무용가잖아”라는 반응에서 출발하는 거죠. 사실 사람들은 평소엔 무용을 접해볼 일이 없고, 특히 현대무용은 어렵다고 생각하잖아요. 제가 처음 무용활동을 할 때에도 고민이 우리 무용은 너무 어렵다… 좀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 그런 거였거든요. 전 사람들을 웃기고 싶고 그게 좋거든요. 하지만 웃기는 건 참 어려워요. 그런데 뉴욕에서도 사람들을 웃길 수 있었고 반응도 좋았어요. 전 무용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는 생각 안해요. 단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는데, 예술도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공연을 위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으세요? 나름대로의 아이디어 창출 방법이 있다면? 평소에 늘 아이디어를 생각해요.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는 거죠.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방법은… 말을 많이 해요. 마구 수다를 떨다가 ‘이거 너무 재미있겠다’ 싶을 때 그냥 그걸 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그냥 말로 툭 튀어나온 재미있는 생각을 이건 실제로는 안될 거라고 포기해 버리는 것 말이죠. 그런 걸 저는 실제로 하는 거죠.   공연활동 외에도 영화 <헤어드레서> <인터뷰> <미인> 등에서 안무를 맡기도 하셨는데, 영상예술에도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혹시, 소위 말하는 크로스오버 작품도 생각하시는지? 영화쪽 일도 참 재미있어요. 그런 일 있으면 계속 하고 싶고. 앞으로 언젠가는 영화감독이나 크로스오버를 할 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무용을 제대로 하고 싶어요. 근데 지금도 제 공연을 보고 나서 사람들이 영화나 뮤지컬을 본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해요.   최근 공연 <은하철도 000>가 재미만 노렸다는 비판이 있던데.. 신경 안 씁니다. 저는 ‘보는’ 사람들을 위해 작품을 만드니까요. 동시대의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작품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즐거워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거든요. 또한 그냥 웃고 즐기는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진한 감동도 담겨 있어요. 관객은 바보가 아닙니다. 관객들이 많이 찾고 좋아했다는 건 의미가 크죠. 특히 이번 공연에는 무용계와는 무관한 일반관객이 많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관객의 폭이 넓어지고 관객과 친해지면서 무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더 깊어지고 무용도 발전하는 것이죠.   선생님께서 작품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입니까? 인간이죠. 그리고 몸, 에너지… 춤은 ‘움직이는 것’ 입니다. 어렵게 예술로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움직이는 모든 게 무용이랄 수 있어요. 움직임은 살아있음을 말해주며,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수단이거든요. 무용이란 몸의 움직임에서 오는 에너지, 바로 삶의 에너지라 할 수 있는 겁니다. 한 번의 포옹이 열 마디의 말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를 갖고 마음을 전달하는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춤인 거죠.   구속감과 무력감은 전염된다. 하지만… 자유로움과 에너지도 전염된다! 후자가 더 많아진다면 이 세상은 멋진 춤꾼들로 가득찰 텐데.   인터뷰 : 강동균 대리 / CW | 김원규 CD   dkkang@lgad.lg.co.kr 사 진 : 박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