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4 : Sudden Birth ① 넛지·눗지·엣지, 당신은 어떤 인간형?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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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혜영 | 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 amorfati77@gmail.com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뜨젠느> <인스타일> 등의 잡지를 거쳐 <마리끌레르> 피처 기자로 재직중이다. 서른이 한참 넘은 지금도 록음악과 클럽과 페스티벌을 사랑해마지 않으며, 드라마틱한 삶을 여전히 기다리는 철들지 않은 여자.
 
 


안 그래도 몇 년 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개봉되고 난 후 수많은 사람들의 질문, “패션잡지 기자는 정말로 그렇게 사니?” 에 대답하느라 진땀 깨나 빼야했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며, 그렇게 비싼 백과 구두를 공으로 얻고 쓸 기회는 거의 없다는 것, 영화처럼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잡지 바닥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나의 대답과 충고였다. 어쨌든 덕분에 밤샘을 밥 먹듯 하고 마감에 시달리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덜너덜해지기 쉬운 이 직장이 나름대로 어린 여대생들이 꿈꾸는 직업 중 하나로 격상하면서 엉뚱하게 우쭐한 직업이 되어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드라마 <스타일>이 방영되기 시작하면서는 그 파장이 더욱 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비해서는 그나마 한국의 잡지사 현실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패션잡지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는 여지도 컸다. 자신들의 직업이 툭하면 드라마의 양념으로 사용되는 변호사나 의사들의 심정도 과연 이럴까?
그리고 얼마 전부터 소위 ‘3G’, 즉 ‘넛지·눗지·엣지’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유형별로 나누는 방법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인간을 유형별로 나누는 것에 대해 크게 찬성하는 편은 아니지만, 2010년 현재, 대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dge
사전적 의미로 ‘모서리, 날카로운 부분’을 말하는 엣지(Edge)를 두고 보통 ‘강한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을 지칭하곤 한다.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일단 패션계에서 쓰이는 엣지를 보자.
옷을 잘 입는 두 명의 패셔니스타가 있다고 치자. 둘 모두 나름대로 당시의 유행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그들이 드라마 속에서 입고 나온 의상은 매진사례를 이룬다. 하지만 둘 모두에게 ‘엣지’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패션 빅팀(Fashion Victim)일 수도 있다. 유행을 따라가며 보여주느라 정신없는 A,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 위에 의상을 입을 줄 아는 B. 두 사람 가운데 과연 누구를 두고 ‘엣지 있다’고 할까. ‘고유한 개성’이란 단순히 의상 스타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나온다.
샹송 가수 겸 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는 패션업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엣지 있는 셀러브리티다. 일단 태생부터가 비범하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의 딸이니까 50%는 먹고 들어간다. 하지만 단순히 입에 은스푼 물고 태어난 정도로 엣지 있는 삶이라 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는 결코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데도, 트렌치코트 하나를 입고 나서는데도 ‘잇 레이디’로 꼽힌다. 자신의 아이가 정신없이 낙서를 해 망쳐버린 루이비통 여행가방을 가지고 다닐 줄 알고, 눈곱도 떼지 않고 잠에서 막 깬 부스스한 얼굴로 담배를 물고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보이려고 안달하는 배우들보다 더 아름답다. 이럴 때 우리는 아름답다는 표현 대신 ‘엣지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고유한 개성, 날카롭게 세상을 볼 줄 아는 시선, 그리고 우아하게 자신의 삶을 유지할 줄 아는 능력의 모든 것이 드러날 때 비로소 우리는 ‘엣지 있는’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다.
엣지는 요즘 세대의 ‘쿨(Cool)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20~30대들에게 ‘취향’은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아이덴티티 같은 것이다. 좋은 음악을 즐기고 있는지, 즐겨 찾는 동네는 어딘지, 어떤 레스토랑과 어떤 커피숍에 가는지, DSLR은 사용하는지, 아이폰은 샀는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가구에 관심이 있는지, 닉혼비나 알랭
드 보통은 읽어봤는지, 내가 런던 타입인지 파리 타입인지 혹은 뉴욕타입인지.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려고 애쓴다. 취향이 중요한 이 세대들에게 롤 모델이란, 이 취향을 어떻게 공고하게 유지할 줄 아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윗세대들에게는 피아노 좀 치면 수동 카메라 좀 만지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취향이 유행인 세대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취향이 유행’이라는 말은 ‘외모만 보고 연애한다’는 말처럼 얄팍하게 들리고,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의 세대는 ‘엣지 있는 사람’을 원한다. 얄팍할지도 모를 취향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몸으로 흡수한 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련되게 다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엣지 있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는 있어도 팔로어는 될 수 없다.

Nudge
‘넛지(Nudge)’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다.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 한마디로 옆구리 쿡쿡 찌른다는 의미일 텐데, 행동과학 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와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이 공저한 <넛지>라는 책을 통해 여기에 새로운 종류의 의미가 하나 더 추가됐다.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버락 오바마가 넛지 정책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이 책은 ‘선택 설계학’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알게 모르게 그 정황을 미리 만들어 둔 ‘선택 설계자’의 유도에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탈러와 선스타인이 예로 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키폴공항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에는 중앙에 파리가 그려져 있다. 남자들이 볼일을 볼 때는(난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조준 방향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변기 주변이 자주 더러워진다(고 한다). 따라서 중앙에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가운데로 집중시키고, 그 결과 쾌적한 화장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볼일을 볼 때 주변에 흘리지 좀 마시오’라는 표어를 붙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이 방법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한다. 뭐, 쉽게 생각하자. 남자친구의 어떤 행동을 바랄 때 잔소리를 하는 대신 애교를 부리면 님도 좋고 나도 좋고 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경제학에서는 이 ‘넛지’ 정책이(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현실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모양이다. 새마을운동이 먹힐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가난에 허덕이며 경제발전을 요했던 시대에는 어떤 강한 표어나 강제적인 방법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지만, 풍요를 누리고 있는 21세기에는 절대적인 목표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고압적인 자세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여러분, 우리에게 아이들은 미래의 자산입니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많은 집에 세금을 감면해주고, 대기업에서 탁아소를 만들며, 제대로 된 출산휴가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 대의명분에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려는 세대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넛지적 인간’, 즉 ‘선택 설계자’란 결국 현재와 미래의 리더형 인간이다. 강렬한 카리스마(라고 착각해서), 혹은 마초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고집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인물은 담보되지 않은 ‘리스펙트’ 속에서 팀을 와해시키거나 수많은 적을 만들어 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고 무작정 덤비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 설계자란 결국 현실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판단을 기반으로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통해 상황을 이끌어 나가는 지능형 인간이다. 명령을 내리는 독재자가 아니라, 상대방을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정도 없고 자기 자신만 아는 세대’라는 선배들의 씁쓸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세대일지언정,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정 때문에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는 세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논리적이고 경제적인 결단을 내리려는 합리적인 세대에게 필요한 리더는 ‘님도 보고 뽕도 딸’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설득력 있는 사람인 것이다.

Noodge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에서 “넛지와 눗지(Noodge)를 결코 혼동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눗지는 ‘성가신 사람, 골칫거리, 끊임없이 불평하는 사람’을 뜻하는 명사다(실제로 사전에 넛지와 눗지는 유의어로 등록되어 있다). 넛지는 주의를 환기하거나 부드럽게 경고하는 것이지만, 눗지는 불평만을 늘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어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행동하기보다 현실이나 현재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눗지형 인간은 넛지형 인간과 대비되는 사람으로, 오늘 내내 짜증만 내던(그래서 결코 쉽게 승진할 수는 없을 것 같은) 당신의 옆자리 동료를 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엣지·넛지·눗지형 인간들은 모두 ‘개인주의 세대’의 삶의 방식에 상당히 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쉽게 자신의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 세대다. 누가 누구의 위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은, 좋게 말하면 민주주의를 몸에 체득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우리들의 리더가 되려면 보다 강한 의견을 세련된 방식으로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표현 양식 자체가 하나의 아이콘처럼 느껴지는 엣지이건, 보다 부드러운 방법으로 설득할 수 있는 넛지이건 말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