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자연스럽게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생활 자체로 같이 어우러져 있는 스트리트 아트 때문에 뉴욕은 예술의 메카이자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도시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뉴욕의 교통체증은 서울과 다를 바 없고, 지하철 풍경은 더욱 낙후된 듯하다. 하지만 걷는 것을 즐겁게 해주는 마력적인 무엇인가가 있는 곳이 뉴욕이다. 그 '무엇'의 핵심은 거리 곳곳에 보물찾기처럼 숨겨져 있는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가 아닐까 싶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생활 자체로 같이 어우러져 있는 그 스트리트 아트 때문에 뉴욕은 예술의 메카이자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도시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백화점 쇼윈도의 ‘설치미술’
먼저 뉴욕의 유명한 5th Ave를 걸어보자. 명품 숍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이 거리는 햇빛이 따사로운 봄날 오후 여자 친구들끼리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곳이다. 창문 하나 없는 백화점 안에서의 구경보다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여유 있게 걸으면서 보는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는 단순히 예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열심히 감상해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설치작품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뉴욕의 메이시 백화점에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wey)가 1919년 마네킹과 조명을 이용해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쇼윈도를 만든 이래 아르 데코를 거치면서 디스플레이 디자인은 상업적이면서도 장식적인 예술로 성장해 왔다. 현재 뉴욕 5th Ave의 유명 백화점 쇼윈도의 상품은 설치미술을 위한 하나의 오브제로 사용되기도 하며, 그래픽적 요소인 타이포그래피가 유리를 장식하기도 한다. 상품으로서보다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로 승화시켜 각 시즌마다 컨셉트가 있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치미술의 하나로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중적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삭스 핍스 애브뉴(Saks Fifth Ave)백화점의 쇼윈도 컨셉트는 ‘팝아트’다. 검정과 빨강의 패션, 레코드판과 타이포그래피가 팝아트의 컨셉트 아래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어떤 쇼윈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로, 마네킹이 입은 옷의 느낌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 전혀 다른 존재를 마주보게 디스플레이 해놓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연두색 드레스를 걸친 채 핸드백을 들고 있는 초록색 공룡,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과 갑옷을 입은 사람 등 엉뚱한 것 같지만 기발하고 재미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5th Ave에서는 이런 쇼윈도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쇼핑하는 것만큼 쏠쏠하다.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만을 그대로 디스플레이하는 백화점의 쇼윈도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우리나라의 거리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의 시그니처를 남길 만큼 예술로서의 가치로 승화시키는 뉴욕의 쇼윈도 풍경은 쇼핑 이외의 또 다른 상상력과 영감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낯선 나를 만나다
뉴욕에서의 첫 지하철 시승은 누구에게나 유쾌하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쾌적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에게 뉴욕 지하철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100년의 지하철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하고 물이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고 조명은 생명을 다해가는지 깜박거리기 일쑤고, 심지어 선로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생쥐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지하철 역 곳곳에 예술작품이 버젓이 있다. 아티스트가 역의 지역적 특색을 상징하는 컨셉트로 타일 모자이크 작품으로 벽을 장식하고 있다. 모자이크뿐만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조각·설치미술까지 140여 종의 공공작품이, 그것도 영구적으로 1,16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철 시스템을 장식하고 있다. 뉴욕의 지하철은 24시간 운행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365일 24시간 오픈하는 갤러리인 셈이다.
28th St 지하철역에는 마크 하지파트라스(Mark Hadjipateras)의 <City Dwellers>, 즉 ‘도시인’이라는 제목을 가진 재미있는 모자이크 작품이 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사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외계인이나 로봇·기계처럼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밝고 재미있어 보이긴 하지만 기계 혹은 장난감 같은 사람들의 모습은 그 의미가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살면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장난감 인형이나 외계에서 온 생명체로 보이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지하철은 안전을 위한 이중문을 만들면서 그 공간은 광고의 화려함으로 뒤덮여버렸다. 밝다 못해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화려한 광고들 앞에 서서 멍하니 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마치 <City Dwellers>에 나오는 그런 장난감이 된 듯한 착각도 하게 된다. 역사 내에 갤러리가 있거나 이벤트성 전시가 있기도 하지만 출퇴근길 틈틈이 여유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생활 속 예술작품이 부럽기도 하다.
도시의 벽을 아름답게 물들인 그라피티
5층 건물이 몽땅 그라피티(Graffiti)로 뒤덮인 세상인 Five Pointz. 그라피티는 이미지나 글자들을 벽 위에 스프레이를 뿌려 표현한 것으로, 종종 반항적이거나 어두운 세상의 예술로 인식되기도 한다. 주로 공공장소에 그려지며, 사회적 또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사회적 이미지가 강하다. 오늘날의 그라피티는 힙합문화와 결부되어 다소 반항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떠나서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해부학적 그림과 서툰 듯 그려진 형태, 대담한 색채를 사용해 뉴욕의 환경, 상징적 이미지를 연출한 흑인 화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역시 그라피티 아티스트 출신이다. 그는 그라피티를 예술로 격상시킨 인물로, 자신이 태어난 뉴욕의 어두운 일면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업들을 통해 198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천재적 화가로 떠올랐다. 유명한 화가가 되기 전의 그에게 있어서 이 담벼락은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캔버스이고, 뉴욕의 거리는 작업할 수 있는 스튜디오였을 것이다. 지금 그의 작품은 단순한 반항의 외침을 끄적인 낙서가 아니라 시대가 원하는 내용과 형식, 그리고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멋진 예술이 되었다.
지금도 뉴욕의 곳곳에는, 특히 브루클린의 윌리암스 버그나 퀸즈의 5포인츠에 가면 비뚤게 쓴 야구 모자에 두건을 두르고 박시한 티셔츠에 허리선이 엉덩이 밑으로 내려오는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스프레이를 손에 들고 벽에 그라피티를 작업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똑 같은 장소라도 갈 때마다 그라피티 또한 조금씩 달라진다. 강렬한 색에 자유분방한 형태, 두꺼운 글자체…. 그 목소리들에선 어떻게 하면 더 강력하고 인상 깊게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그저 얘기하고 싶은 걸 벽에 그림으로써 세상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서울의 홍대 앞 골목길 역시 활기찬 그림들이 벽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다. 젊음이 느껴지는 그림들, 카페 분위기를 살려주는 벽화들, 아티스트들의 자유로운 컨셉트를 표현하고 있는 멋진 장면들. 꼭 뉴욕이 아니라 서울 시내에서도 차디찬 시멘트벽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 넣어준 그림들이 눈을 즐겁게 해줌을 느낄 수 있다. 회색빛의 도시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그라피티와 벽화는 서울 시내의 분위기 또한 업시키고 있는 게 분명하다.
뉴욕의 거리는 수준이 높거나 어려운 문화가 아닌, 생활 속 자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살아있는 예술이다.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그리고 그보다는 걷는 것이 일상인 뉴요커들에게 거리는 생활 터전인 동시에 살아 있음을,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그리고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