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진 세계는 점점 동질화된 문화(적어도 소비문화)를 가지게 되고, 따라서 국가 간 문화권적 차이를 강조하는 전략보다는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론에서 제시한 인간의 본연적 욕구에 대해서 글로벌한 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광고는 하나의 제품이 10개 이상의 나라에서 중앙 통제와 지역 분권 사이의 어떤 한 특성을 지닌 다국적 광고주에 의해서 광고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어느 정도의 중앙 통제에 의해서 핵심 메시지 전략, 마케팅 전략, 광고제작 가이드라인이 각국의 광고에 적용되는 광고를 말한다.
크게 볼 때 글로벌 광고는 엄격하게 표준화되어 있는 경우, 즉 글로벌 광고회사가 제작한 광고가 모든 나라에 동시에 같은 내용으로 전달되는 광고와, 현지화되어 있는 경우, 즉 브랜드의 핵심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본사의 광고회사에서 제시하되 이를 각 나라별로 지역 광고회사가 제작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글로벌 광고, 표준화 대 현지화
표준화된 글로벌 광고에서 연상되는 첫 번째 생각은 ‘어색함’이다. 이러한 광고는 이질감 또는 타 문화에 대한 배려의 부족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알쏭달쏭한 메시지로 인해 한참 생각해봐야 광고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표준화된 글로벌 광고를 보고는 불쾌감마저 들기도 한다.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 방송되고 있는 DHL 광고에서는 지역(Local)에 있는 우편물 배송업체를 사용할 경우 배달물이 훼손되기 쉽거나 지역업체는 수화물 처리가 미숙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면서 DHL은 전 세계 어디서나 안전하고 신속한 배송물 처리가 이뤄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광고에서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이 서투르게 일처리를 하고 있으며, 무능하고 무신경한 것으로 묘사된다. 피부색 때문이지 아니면 환경적 유사성인지 몰라도 DHL 광고 속의 무능한 동양인과 내가 동일시하게 되며, 나의 서툰 일처리를 비난받는 느낌이 든다. 이는 절대로 DHL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 광고는 서구 사회에서는 잘 받아들여지는 내용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시아계의 브랜드가 밀물처럼 들어오지만 서비스는 아직까지 자국보다는 미흡하다는 이야기를 잘 풀어낸 유머광고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광고가 아시아에서도 똑같이 집행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모든 글로벌 브랜드가 표준화된 광고를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성공적인 브랜드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현지화해서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소구방식은 글로벌 브랜드의 본사와 본사 광고 에이전시가 결정하고, 구체적인 표현은 각 나라의 문화와 시장에 맞게 결정하는 경우 가장 성공적인 글로벌 광고가 탄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신(辛)라면의 중국시장에서의 광고전략은 우리나라에서처럼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 아니었다. 신라면의 본질인 매운맛을 커뮤니케이션하되, 매운 맛으로 유명한 쓰촨성 출신 덩샤오핑의 발언인 ‘매운 것을 먹지 못하면 사나이 대장부가 아니다’로 소구해 성공을 거두었다. 초기에 중국에 진출했을 때 중국 소비자들이 매운 맛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제품의 핵심 컨셉트를 바꾸는 것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을 현지화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 사례라 하겠다.
성공사례, 실패사례가 전하는 메시지
글로벌 광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경구는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자(Think Global, Act Local)’이다. 필자는 이 경구의 의미를 ‘브랜드의 핵심 컨셉트와 마케팅 전략은 표준화하고 광고는 현지화하자(Market Global, Advertise Local)’, 또는 ‘세계를 상대로 물건을 만들고 지역에 맞춰서 브랜드를 커뮤니케이션하자(Produce Global, Communicate Local)’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글로벌 브랜드에 대한 개념의 정의이다. 과연 글로벌 시장에 통하는 글로벌 상품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서로 다른 문화와 시장상황에 따라서 각 나라별로 개별적인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가? 아마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한 글로벌 브랜드는 시대의 흐름이며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각 나라별로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동일화되고 있는 것과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세계적 경쟁이 점차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브랜드와 글로벌 광고의 출현을 막는 요소는 언어, 문화적 가치, 관습, 경제수준의 차이에 기인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파란 색을 좋아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붉은 색을 좋아한다든지, 남미계 사람들은 색조화장을 하는데 일본인은 자연스러운 화장을, 프랑스 사람들은 창백할 만큼 하얀 화장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있다고 하자. 이럴 경우 하나의 브랜드가 세계인들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는 식이다. 이러한 예는 끝없이 제시할 수 있다. 드비어스(DE Beers)는 표범의 목에 다이아몬드를 착용한 형태의 이미지를 광고하는데 몇몇 문화권에서 표범은 죽음의 상징이기 때문에 판매가 저조했다. 거버(Gerber)는 아프리카에서 유아용 이유식을 판매하면서 자사의 로고인 귀여운 아기얼굴을 용기에 라벨로 부착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라벨에 용기의 내용물 사진을 싣는 관습이 있었기에 큰 실패를 경험했다.
또한 디즈니의 테마파크인 유로디즈니는 미국이 주도하는 물질적인 세계화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프랑스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촌스런 색으로 이루어진 끔찍한 곳으로 여겨지면서 큰 실패를 맞이했다. 쿠어스(Coors) 사의 맥주 광고는 ‘긴장풀고 편해지자(Turn it loose)’인데, 스페인어 권에서는 이 말이 ‘설사를 하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어 실패를 맛보았다.
위에서 본 실패사례는 글로벌 브랜드 자체에 문제라기보다는 지엽적인 소구방식의 실수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브랜드의 핵심가치를 현지화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통해서 충분히 전달할 수 있고, 이는 비교적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글로벌 광고 에이전시의 역할은 글로벌 기업의 제품에 대한 핵심속성이나 핵심제안을 각 시장별로 맞춰서 변형시키기보다는 각 나라에 실정에 맞춰 현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자문의 역할이어야 할 것이다.
질레트의 경우를 보면 좀 더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질레트가 인도네시아에서 면도기 광고를 집행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인도네시아 남성들이 수염을 기른다는 문화적 관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면도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더 큰 해결과제였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교육받고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젊은 남성들은 자신의 수염을 잘 다듬고 싶어 하며, 이는 글로벌한 문화가 각국에 퍼져 나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질레트의 인도네시아 광고는 미국에서와 같이 면도 후의 쾌감이나 다른 사람들의 호의적 평가를 소구하지 않고, 우선 면도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알렸다. 즉 문화적 차이보다는 제품의 핵심가치에 대한 현지화된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한 것이다.
인간 본연의 욕구에 대한 소구 필요
글로벌한 제품과 동질화되고 있는 소비자가 지구촌에 살고 있다. 각국마다 문화의 차이보다는 경제수준의 차이가 소비자의 동질화를 막는 요소이지만, 각국의 경제 발전 또는 적어도 부유한 소비자 계층의 증가가 글로벌 브랜드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홉스테드(Hofstede)는 문화권간의 차이를 연구해 각 나라를 유형화하는 의미 있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는 문화권을 나누는 요인으로 남성주의/여성주의, 불확실성 회피성향, 권력에 대한 거리(태도), 개인주의/집단주의를 제시했다. 이러한 분석은 각 문화권 간의 차이를 연구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각 나라별로 공통적인 성향을 발견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으므로 글로벌 광고의 현지화에 있어서 어떠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홉스테드의 문화권 분석은 글로벌 광고집행에 있어서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가령 우리나라는 개인적인 성취와 목표에 대한 투쟁심이 비교적 낮고 화합과 배려가 중요하며,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성향이 높다는 결과를 접했을 때, 모든 광고가 ‘소비자는 가족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화적 성향과는 별개로 소비자들은 개인의 성취, 자존감, 경쟁에서 이긴 자의 여유 등을 표현한 광고와 브랜드에 대해서 충분히 호의적이다. 실제로 각 문화권별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점차 개인의 욕구와 필요가 중요시되고 이러한 욕구와 필요는 전 세계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좁아진 세계는 점점 동질화된 문화(적어도 소비문화)를 가지게 되고, 따라서 홉스테드의 문화권적 차이를 강조하는 전략보다는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론에서 제시한 인간의 본연적 욕구에 대해서 글로벌한 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광고회사는 글로벌 광고집행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수행해야 할 운명이다. 글로벌 브랜드라는 것이 소비자의 수요 중심이라기보다는 제품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전 세계적인 소비문화의 동질화 경향과 브랜드의 글로벌한 품질, 그리고 광고회사의 글로벌 광고집행 능력에 힘입어 글로벌 브랜드의 약진은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