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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K기획에 입사하기 위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2차 면접을 봤을 때가 생각난다. 2차 면접의 과제는 조별 토론이었고, 그 토론의 주제는 ‘인터넷이 사회에 미칠 영향’이었다. 그 때만 해도 인터넷이 이제 막 시작단계라 언론이나 경제계에서도 온통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면접자들 모두 ‘인터넷이 보편화되면 사회와의 단절현상이 일어나 개인은 점점 더 고립될 것이고, 개인들 간의 커뮤니케니션이나 만남도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냈던 기억이 난다(그때 내가 ‘인터넷은 소통의 중심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을 개진했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현재, 인터넷은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에 대한 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개진의 장이 되었고, 싸이월드나 아이러브스쿨 같은 사이트들은 오히려 그동안 소원했었던 개인들의 친목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때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인터넷을 인터폴과 혼동했다’는 유머는 이제 정말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싶다. 인터넷의 역사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는 공기와도 같이 익숙해진 인터넷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부터였을까? 인터넷이란, ‘세계 각국의 통신망이나 컴퓨터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각각의 컴퓨터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통신규약을 이용해 통신할 수 있도록 만든 망’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의 용어는 미 국방성의 네트워크 시스템인 ‘아르파넷(ARPANet)’이라는 용어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1969년 미 국방성은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수행에 중요한 컴퓨터와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자원을 분산시킴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아르파넷’이라는 네트워크를 개발했고, 이것이 현재의 인터넷의 시초가 되었다. 1986년에는 미국과학재단이 ‘아르파넷’을 흡수해 미국의 전체 통신망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후 여섯 곳의 슈퍼컴퓨터를 연결하는 NSFNet을 개발해 인터넷 기간망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NSFNet은 모든 대학교 연구소와 학술단체, 일반 영리법인이 접속되어 미국의 국가 연구망으로 발전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터넷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91년에는 상용 인터넷협회가 설립되어 기업과 개인이 비즈니스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후 점차적으로 상용 네트워크가 생겨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사용자가 증가했으며, 현재의 인터넷은 모든 네트워크가 결합된 집합체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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