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기업PR은 기존의 캠페인 ‘명화’편을 애니메이션으로 발전시켜 생명을 불어 넣었다. 노래하고 사진 찍고 휴식하며 빨래하는 명화의 주인공들을 통해 낯익은 것의 ‘낯설게 하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홍보용으로 만든 메이킹 필름은 재미를 밑천삼아 말을 걸어온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은 쏟아지네 / 행복 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 999~’
MBC 전파를 타고 전국에 가수 김국환의 노래가 힘차게 울려 퍼질 즈음엔 동네 꼬마들도 하나둘 안방극장 앞으로 도열해 앉았다.
바로 메텔과 철이, 그리고 투명인간 차장이 등장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보기 위해서. 그 꼬마들이 지금쯤 사십 고개를 넘어 어린 시절 TV 앞을 떠나지 못하게 했던 12살 철이의 엄마 찾아 떠나는 우주여행 이야기를 추억할 것이다. 최근에 EBS에서 다시 상영되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즐기게 된 일본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을 TV와 극장판으로 다시 만든 애니메이션의 수작(秀作)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태권 V’나 ‘마루치 아라치’, ‘둘리’와 ‘머털도사’에 이르는 만화 주인공 계보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케이블TV에는 ‘도라에몽’과 ‘짱구’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만화가 갖는 위력을 생각할 때 어린 시절 노출된 일본 애니메이션이 적지 않은 영향이 ‘전쟁·호환·마마’보다 더 무섭지 않을까 우려되는 건 문화적인 속성 때문이다.
올해의 연재 글 ‘광고나라 산책’ 마지막 편에서는 광고 속에 나타난 문화, ‘만화’를 찾아 떠나본다.
광고와 애니메이션의 만남
우리나라 영상문화, 적어도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만큼은 광고가 시초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디즈니와 함께하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강국 대한민국도 40여 년 전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럭키치약과 진로소주 같은 애니메이션 광고를 만날 수 있다. 럭키치약은 HLKZ-TV에서 처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광고였는데, 문달부를 비롯한 신동헌·엄도식·김용환 등의 만화가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아나운서나 출연자가 광고 카피를 읽는 식의 라이브(Live)로 슬라이드 영상과 함께 전파를 탔다.
부산 MBC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처음 소개된 손권식 작사, 허영천 작곡의 진로광고는 ‘야야야 차차차 진로 진로’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CM송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만화가 신동헌이 그린 선원들이 춤추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영화관과 TV에서 방영되었다. 이 광고는 CM송과 애니메이션이 만나 TV광고로서 새로운 장을 연 것이었다. 이후에 ‘닭이 운다 꼬끼오, 꼭 낀다고 꼬끼오, 맛을 낼 땐 닭표 간장~’이라는 광고도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한국광고 100년, www.adic.co.kr).
만화, 광고에 色을 입히다
1980년대, TV 흑백화면이 컬러시대를 맞으면서 온 국민은 ‘색맹’을 벗어나게 되었다. TV광고, 특히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광고도 새로운 컬러시대를 맞게 되었다. 컴퓨터 그래픽의 도입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상을 소개하기에 이른다. 뮤직비디오와 같은 첨단 기법의 애니메이션이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는데, 일화 맥콜의 경우는 노르웨이 그룹 아하의 <테이크 온 미(Take on Me)> 뮤직비디오와 같은 기법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을 시도했다. 지금의 비(정지훈)에 버금가는 원조 오빠부대, 조용필이 등장한 광고는 애니메이션 기법과 함께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밖에도 하이틴을 타깃으로 파스텔톤이 강조된 롯데 아카시아 껌, 호랑이 캐릭터를 활용한 현대백화점, 또는 감성이 강조된 다양한 패션광고까지, 실제 촬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상의 영상을 구현하는 데도 애니메이션 광고는 폭넓게 사랑받았다.
만화 주인공이 광고 속으로?
세계 최초의 만화영화는 1928년 월트 디즈니가 만든 흑백 단편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였다. 쥐를 만화로 표현한 미키마우스는 사람처럼 말하고 살아서 움직인다는 의미의 ‘애니메이션(Animation)’으로 부르게 되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인기는 상업화를 가속하게 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광고에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만화 주인공의 경우 ‘캐릭터(Character)’라고도 하는데, 캐릭터는 만화와 영화·연극·소설 등의 등장인물의 특성과 개성을 말한다. 이런 기존의 캐릭터를 활용한 광고의 경우 몇 가지 장점을 갖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으며, 기존의 선호도가 광고, 또는 브랜드 선호도로 연결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고모델이 NG를 내거나 스캔들에 휘말릴 우려가 없어서 광고 담당자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 중에서 광고에 대표적인 광고 캐릭터로는 ‘둘리’와 ‘고인돌’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오달자의 봄’으로 인기를 얻은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는 녹색의 공룡, 아기 케라토사우루스로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실험대상이 된 대가로 초능력을 얻는데, 이후 1억여 년간 빙하에 갇혀 있다가 서울의 하천으로 떠 내려와 서울 쌍문동 고길동의 집에 머물며 많은 사건을 일으킨다. 둘리는 금성 미라클 TV와 기아 카니발2, 몬테소리, 포스트 오곡코코볼, 그리고 최근 동아제약 박카스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현역 광고모델로 사랑받고 있다.
박수동 작 <고인돌>의 경우 롯데삼강 빠삐코 ‘빠삐놈’편으로 다시 인기를 끌었다. 지난 여름 화제가 되었던 롯데삼강 ‘빠삐코’의 경우 귓가를 떠나지 않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 ‘빠빠라빠빠라빠 삐삐리빠삐코’는 1988년 애니메이션 CF 최초로 캐릭터와 배경을 따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 <놈놈놈>의 패러디 UCC ‘빠삐놈’은 계속 업그레이드되어 사진·포스터·벨소리· 동영상 등 많은 UCC를 쏟아냈었다. 요즘 청소년들이야 광고에 등장한 고인들만 기억하겠지만 만화가게를 들락거렸던 당시의 7080들에게는 인터넷 시대의 야동 수준에 버금가는 아슬아슬한 성교육 교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수동 화백은 태운 성냥개비 선으로 그런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렇듯 원시적인(?) 선 역시 에로티시즘을 잘 전해주고 있다. 고인돌은 빠삐코 광고는 물론 패키지에도 등장, 20년째 메인타이틀 역할을 하고 있다.
소비자와 소통하는 만화
만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광고가 제공하는 꿈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광고는 잠시지만 소비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얻게 해준다.
기아자동차의 ‘뉴스포티지’ 광고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 꿈에 성큼 다가서게 해준다. 무협지 꽤나 읽은 AE, 또는 카피라이터의 발상이 아닐까 싶은 ‘주행신공(走行神功)’편은 무협만화의 캐릭터가 등장, ‘축지주행신공’, ‘여심흡수신공’, ‘만차주차신공’ 등 다양한 내공을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타깃 오디언스인 젊은 남성에게 ‘뉴스포티지’를 소통하는 포인트다. ‘천하유일애차(天下唯一愛車)’로 다 줘도 안 바꿀 만한 가치를 제공한 것이다.
반면 여성의 심리를 파고든 CJ홈쇼핑 광고에서도 애니메이션은 위력을 발휘했다. 여자를 그리는 화가 육심원의 작품 속 여자들이 광고로 외출했다. 시청자와 직접 이야기하듯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는데, 그림 속 주인공의 감정을 최대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단면적 여성의 표정을 더 극대화했다.
섬세한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하면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강조하고 각각의 포즈에 맞는 일러스트를 별도로 그려 다양한 각도의 표정을 만들어 2D와 3D 기법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마치 그림 속 주인공들이 여성 타깃에게 말을 걸어오듯 소통하는 광고를 만들어냈다.
소비자들은 이제 문화를 산책하고 숨 쉬며 소비하려한다. 이런 욕구가 반영된 광고라야 사랑받고 살아남는다. 광고나라에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지고 자라나고 소비된다. 광고와 문화의 본격적인 사귐이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