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02 : Annual Campaign - ② 마케팅 패러다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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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al Campaign - ② 마케팅 패러다임
 
  아직도 마케팅은
마케팅팀만 하는가?
 
정지혜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jyes@lgeri.com
 

I. 경영환경의 변화와 마케팅의 변화

고객이 기업 경영활동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마케팅의 기능이 중요해졌다는 사실에는 산업분야에의 구분 없이 많은 기업이 동의한다. 10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최고 마케팅 책임자를 가리키는 CMO라는 직함이 <Fortune>지 선정 500대 기업의 절반 가까운 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국내에서도 LG전자가 지난해 CMO 자리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임원급 헤드헌팅 기관인 스펜서 스튜어트(Spencer Stuart)에 따르면 미국 상위 100개 사 CMO의 평균 재임기간은 26.8개월에 불과했는데, 이는 CFO 평균 재임기간인 53.8개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스타벅스는 7년 동안 마케팅 책임자를 다섯 번이나 교체했으며, 코카콜라는 6년 동안 네 번 교체했다. 이러한 ‘CMO의 단명’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의 실패가 개인의 실패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전사적으로 마케팅의 중요성이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 또는 회의적인 시각을 고착시킬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잦은 교체는 결과적으로 애초에 의도했던 마케팅의 역할이나 조직의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브랜드 매니저의 종말:
기발한 광고에서 창의적 혁신으로

영국의 경제주간지 <The Economist>는 ‘브랜드 매니저의 종말(Death of the brand manager)’이라는 기사에서 P&G와 같은 소비재 기업의 전통적 성장 방식인 브랜드 전략만으로는 범용화가 진전되는 시장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창적인 광고나 구상하던 고고함을 잊고, 유통업체와의 제휴 등 보다 적극적인 고객 유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마케팅은 이전보다 좀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마케팅에서 ‘창의력’은 언제나 중요했지만, 오늘날 강조되는 창의력은 참신한 광고 메시지와 이벤트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효율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는 ‘혁신’을 의미한다. 이는 혁신적인 채널의 발견이 될 수도 있고, 시장 트렌드를 짚어낼 수 있는 통찰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창의적 혁신을 통해 단순히 고객 커뮤니케이션 차원뿐 아니라 제품을 개발, 생산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사업활동의 전 과정에 있어서 고객가치를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 니즈의 고도화: 마케팅 범위 확대
오늘날 고객들은 보다 다양한 목적으로 제품을 구매한다. 즉 제품 고유의 기능이나 가격뿐만이 아니라 브랜드가 주는 막연한 만족감이나 해당 제품의 구입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 등도 구매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고객의 니즈가 고도화된다는 것은 기업이 고려해야 할 마케팅 이슈도 다양해짐을 의미한다. 종전에는 별개의 활동으로 여겨져 왔던 소비자 대상의 마케팅 활동과 정부 대상의 대외 업무(Corporate Affairs), 투자자 대상의 IR 활동, 언론 대상의 PR 활동이 상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잦아졌다.
예를 들어 영향력 있는 비정부 단체가 회사의 제품 생산 안전성에 대해서 블로그에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곧이어 주요 언론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불붙게 되고,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정부 기관은 이에 우려를 표명하며 제품의 생산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는 상황이 예측 가능하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어느 개별 부서의 책임이 아니다.
다우의 줄리 홀더(Julie F. Holder) 부사장은 영업 마케팅 기능은 물론이고 인사와 공보업무(Public Affairs)까지 총괄한다.
시스코의 CMO인 수잔 보스트롬(Susan Bostrom)도 브랜드 관리 및 광고전략은 물론이고 전 세계 대관업무와 시장전략에 대한 책임까지 맡고 있다. 이는 곧 이름만 다를 뿐, 결국 모두가 기업 브랜드 관리, 고객관리라는 측면에서 마케팅의 새로운 역할이라 볼 수 있다. 이제 마케팅은 보다 넓은 이슈에 대응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그렇기에 책임의 범위도 전략적 차원으로 보다 확대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고객관리’가 아니라 ‘고객과 함께’
이제는 고객들이 기존의 마케팅이 담당했던 역할을 다양한 형태로, 또 적극적으로 대체한다. 실제로 충성도 높은 고객의 입소문은 기업의 어떠한 광고보다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이 이미 입증되었다.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다. 발 빠른 기업들은 제품 개발에서도 고객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한다. 델(Dell)은 ‘델 아이디어 스톰(http://ideastorm.com)’을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델 제품과 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수혈 받는다. 도요타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고객들에게 새로운 제품 설계에 대한 롤플레잉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자사의 신차를 세컨드 라이프에 먼저 출시해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고객이 제품생산, 테스트, 홍보활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마케팅의 역할이었던 부분을 대체해 주고 있는 셈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랩에서 일어났던 제품 상품화 테스트 작업이 고객에게 넘어간 것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65만 명의 고객들이 참여한 MS 윈도 2000의 베타 버전 테스트가 고객과의 협동 R&D로 창출한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5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는 정도에 이르고 있다.

II. 고객중심 시대의 마케팅의 새로운 기능

그렇다면 고객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고, 고객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동시에 기존 기업의 마케팅 기능 부분에까지 관여하는 고객중심 시대를 맞아 마케팅은 과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전략으로서의 마케팅
오늘날에는 ‘만들어져 있는 것을 파는’ 한계에서 벗어나 전략적 마케팅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한 소비재 기업의 CMO는 스스로를 ‘최고 수요 창출 책임자(Chief Demand Creating Officer)’라고 칭하면서 성장의 드라이버로서 마케팅의 역할을 강조했다. 10여 년 전 <Economist>에 발표된 기사처럼 단순히 ‘전술을 잘 수립하는 마케팅 책임자의 역할’은 끝나고,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수익관리 관점에서의 책임과 역량을 강조하고 있다.
전략적 차원의 마케팅에서는 제품 및 브랜드의 포트폴리오 관리, 4P(Product·Price·Place·Promotion) 효율화 및 파트너십 관리를 비롯해 종종 마케팅 예산에 대한 통제권까지 마케팅 담당자에게 귀속된다. 디즈니가 음악·영화·테마파크·비디오·소프트웨어 등의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도 전략적 마케팅의 기능이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략적 마케팅의 기능이 중요해짐에 따라 마케팅의 최고 책임자인 CMO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는데, CEO 스스로가 CMO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UPS의 부사장인 커트 쿠엔(Kurt Kuehn)은 글로벌 영업 마케팅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역할은 영업, 브랜드 관리, 커뮤니케이션, 고객관계 경영, 제품 개발 등 기능 분야 모두를 아우른다. 또한 전 세계 80~90명에 이르는 운영 책임자들을 관장하기도 한다.
일부 기업들은 전략적 마케팅 기능이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략적 차원의 업스트림 마케팅 기능과 전술적 차원의 다운스트림 마케팅 기능을 분리시키기도 한다. IBM이 전략적 차원의 마케팅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Big M’ 마케팅 임원이라 하여 주로 특화된 부분에서 전문적 역할만을 수행하는 ‘Small m’ 직원들과 구분하는 것이 그 한 예라 하겠다.

통합자(Integrator)로서의 마케팅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진만큼 다양한 시장 및 사업부에 축적된 고객 지식이 전사적으로 공유되도록 하는 기능도 한층 중요해졌다. 이에 통합자로서의 마케팅은 고객에 대한 지식과 마케팅 마인드를 조직 내부에 다양한 형태로 전파하는 기능을 맡아야 한다. 그 출발점으로는 전사 차원에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개발해 타 지역 시장이나 타 기능 부문에 전파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통합자로서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각 기능 부문의 중심에 마케팅을 위치시켜 어떤 활동에서든 고객가치가 최우선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 예를 보자. 시스코(CISCO)의 마케팅은 조직 내에 분산되어 있는 기술을 모아 테스트하고 새로운 고객 솔루션의 청사진을 만드는 ‘크로스 사일로 엔지니어링(Cross-silo Engineering)’팀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사무용품 판매업체인 스테이플스(Staples)의 경우 고객의 구매행동을 분석해 매장 내 제품 배열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잉크나 종이와 같이 구매빈도가 높은 소모품을 매장의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고객의 동선을 단축시키는 한편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스테이플스는 이처럼 고객분석 결과를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선두업체 오피스디포(Office Depot)을 따라잡으며 연 10%의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외부 마케팅의 관리자로서의 마케팅
지식경제시대에는 ‘많이 아는 것’ 못지않게 ‘타인의 정보와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마케팅 활동에 의해 고객에 대한 지식이나 가치 증진의 방법이 모든 기능 부문에 전파되고, 심지어는 고객조차도 마케팅의 역할에 일부 관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마케팅의 역할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CMO 회의에 참가한 최고 마케팅 책임자들의 75%는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과거에 비해 훨씬 전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강조되어 온 ‘전문성의 축적’ 못지않게 외부의 전문그룹과 고객으로부터의 개입을 관리, 통제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입소문과 같은 고객의 개입에 대해 PWC(PricewaterhouseCoopers)의 마케팅 이사는 “통제 불가능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을 감안할 때 부정적 기능을 최소화하고 전략적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통제력이 진정한 마케터의 역할로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III. 마케팅의 새로운 위상

결국 달라지는 경영환경에서는 마케팅의 주된 역할이 전략적 관점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향후 모든 기업에서 마케팅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기능’이 아닌 ‘프로세스’로 체화된 마케팅
강력한 마케팅 그룹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우수하고 고객중심적인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CMO나 마케팅팀을 신설했다고 고객중심적인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마케팅은 ‘기능’이 아닌 ‘마인드’로 전환되고, 마케팅팀은 ‘조직’이 아닌 ‘프로세스’로 체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고객을 잘 이해하는 한 사람의 뛰어난 마케터가 아니라, 조직에 고객가치를 전파할 수 있는 마케터가 필요하다.
‘마케팅 사관학교’로 알려져 있는 P&G는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허물기 위해 ‘혁신 체육관(Innovation Gym)’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즉 여러 부서 사람들이 부서의 벽을 허물고 고객가치가 무엇인지 토론함으로써 전부서가 ‘고객가치’라는 동일한 목표로 운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는 곧 이제 마케팅은 마케팅팀만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사업의 특성에 맞는 마케팅 조직 구성
기능 부분으로서가 아닌 전략적 차원으로서의 마케팅에서는 글로벌화, 표준화 정도, 타깃 고객과 같은 사업의 특성에 따라 가장 효율적일 수 있는 마케팅 조직의 모습도 달라진다. 따라서 기업들은 고유의 산업 특성과 고객, 전략 등에 가장 잘 부합하는 마케팅의 모습과 역할을 정의해야 한다.
그 동안 제품과 기술 중심의 사업을 해왔던 많은 산업재 기업들은 내부에서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하고 종종 소비재 기업의 마케터들을 스카우트해 고객중심으로의 변화를 기대해 왔지만 쉽게 성공하기 어려웠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업에서는 CMO의 기능이 마케팅 기능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마케팅이 우리 기업에서 어떠한 전략적 역할을 해야 하는지 먼저 고민해 봐야 한다.

준비된 마케터의 육성
마케팅의 어깨가 무거워진 만큼이나 마케팅 조직을 이끌 CMO 또한 많은 능력을 요구 받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전략적 고민이 가능하며, 브랜드 관리와 같은 마케팅 고유의 기능에 대한 능력까지 뛰어난 슈퍼맨은 그리 많지 않다. 마케팅 기능만을 경험한 사람은 전략적 통찰이 부족하기 쉽고, 외부에서 수혈한 인재는 새로운 조직에서 해당 산업 고유의 프로세스와 특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기업 스스로 마케팅 조직이든 산업 전문가든 상관없이 전략적 마케팅의 역할을 발휘할만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GE의 CLP(Commercial Leader-ship Program)는 내부의 마케팅 지도자 후보들을 조직의 다양한 부문에 2년간 파견시켜 마케팅의 중요성과 전문지식을 현장에 전파하는 한편, 마케터들에게는 현장 이해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또한 우주항공·산업재 등 각각의 사업 분야에서 산업을 이해하는 마케터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보듯이 이제 전사적 혁신의 주체로서 마케터들은 ‘무엇을 개선할 것인가에 앞서 스스로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