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12 : Special edition -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공사 - 한여름 태양보다 뜨거웠던 1개월의 '감동'일지
2010. 8. 4.긴장 속에 시작된 ‘겨레의 염원 잇기'
8월 10일, 계속된 행사와 P/T후 겨우 한숨을 돌리고, 밀리고 밀렸던 여름 휴가를 눈앞에 두고 업무를 정리하던 퇴근 무렵, 선임 본부장님의 호출. 매스컴에서만 존재하던 ‘경의선’이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8월 11일, 건설교통부 관계자들의 방문, 그리고 첫 회의. 장소 미정, 일정 미정, 행사 내용 미정, 정해진 것은 단지 경의선 복원 기공 이벤트를 약 1개월 이후에 해야 한다는 것 하나뿐. 이틀 이내에 행사 계획을 제안해달라는 요청, 그리고 보안 유지는
필수 사항.
남북 분단 이후 민족 최대의 이벤트는 그렇듯 우습게도(?) 짧은 준비 시간, 그리고 불확실성과의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출발! 전날 밤 스크랩했던 자료를 차 안에서 다시 읽으며 경의선 복원구간 답사에 바로 나섰다.
8월 12일 토요일 밤, 자료 검토와 고민, 격론 끝에 기본 골격이 나왔다. 건교부 실무진에게 일단 전화 통보, 바로 세부사항 보완에 들어갔다. 8월 14일 건교부와 실무안 협의. 그런데 갑자기 “장관께 보고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8월 15일 장관께 프리젠테이션, 그것으로 기본안은 일단 확정되었다.
그로부터 1개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이벤트의 실체- 행사장 위치, 일정과 내용 등-가 꿈틀거리며 변하는 과정 속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00년 9월 18일 저녁 9시 30분, post event의 폭죽을 마지막으로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기공 이벤트는 일단 막을 내렸다. 보람과 긍지, 한편으로는 회한과 아쉬움을 남긴 채.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사업 개요
●추진 경과: 6.15 남북 정상회담시 원칙 합의. 이후 수차의 실무급 접촉에서 남북 동시 기공 및 구체 시행 방안 합의
●공사 개요: 문산-개성간 철도 총 24Km 복원(남측 12Km). 철도와 병행 도로 4차선 신설(남측 6Km).
●의의: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상징, 긴장 완화. 남북간 인적, 물적 교류 활성화, 물류비 절감. 아시아와 중국, 유럽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의 시발점, 대륙간 물류 수입 기대. 통일의 교두보,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전기.
●사업 기간: 2000년 9월 기공, 사업 기간 약 1년.
몇 가지 문제와 해결 과정
●일시와 장소: 흔히 ‘때’와 ‘장소‘가 이벤트의 50%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벤트는 남북 공조 사항이라는 특수성으로 행사일 10일 전까지 행사일을 확정짓지 못한 채 행사를 준비함으로써 여러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고, 특히 최초 예정일로부터 2차례가 연기되는 와중에 출연진 및 시스템 섭외에 난항을 겪었다. 장소의 측면에서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의 상징성을 고려, 임진각을 본 행사 장소로 선정하였으나 장소의 협소성과 시계의 한계로 인해 집객(集客)과 연출 측면에서 기본 제약이 뒤따랐다
●준비 기간: 준비 기간과 행사의 질은 정비례하는 반면 리스크는 반비례한다. 일정에 쫓겨 검증될 수 없는 아이디어는 포기하거나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이벤트의 기회였으나 일정상 불가능한 S/W나 H/W는 포기해야만 했고, 결국은 메시지 중심의 이벤트가 차선책으로 선택되었다. 또한 국가적인 관심사로서 필수적인 다단계의 의견 수렴 과정은 진행을 더디게 만들었고, 각종 제작 작업과 실행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행사 일주일 전부터 추석 연휴라는 변수가 더더욱 시간을 부족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는 또한 비용 통제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남북관계의 함수: 남과 북의 동시 진행, 또는 참석자 및 출연자 교환 등의 가능성은 진행팀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 수많은 경우의 수를 전부 연출안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서 결국 D-Day가 임박해 오고서야 최종안이 결정되었다. 또한 대북협상 과정동안 철저히 보안에 부쳐야 했던 관계로 극소수의 준비팀 외에는 거의 모든 스태프들이 정확한 일정과 참석자 범위, 연출의 최종 내용을 모르는 채 준비와 섭외를 진행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결국 행사의 출연자 섭외에 특히 부정적인 영향을 감수해야 했다.
겨레가 함께하는 이벤트로
급진전하는 남북관계는 일반 국민에게 진정 크나큰 기쁨과 기대를 주지만 한편으론 그 빠른 속도는 현실이 아닌 꿈처럼, 혹은 TV 속의 일처럼 지나가게 만들기도 한다. 남북 분단이래 최대의 사건 중의 하나라는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공사! 그 시작을 대개의 행사처럼 현장의 참석자 기천명 앞에서 하는 의전 행사로 다뤄, 그저 TV 뉴스로만 잠깐 보는 이벤트가 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이 일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핵심 개념이었다.
일반 국민이 직접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게 하자, 그 의미와 기쁨을 함께 현실에서 느끼게 하자! 하지만 장소와 기술적인 제약으로 기공식 본 행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검토 끝에 단계별로 이벤트의 여러 tool을 조합, 일반 국민까지 직접 참여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종합 캠페인을 구성하게 되었다<표>.
Pre Event : 범국민 염원의 ‘침목 메시지’ 남기기
독일이 통일되던 날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TV로 전해지던 분단의 벽을 허무는 모습. 그 흥분과 부러움의 기억이 일반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기념이 될 만한 이벤트를 찾는 하나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름 없는 민초들이 경의선 연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방안을 찾던 중 철도의 연결에 필수적인 ‘침목’이 회의중에 튀어 나왔다. 도로의 가드레일도 함께. 그러면 방법은? 정부 주도의 행사에 기부나 성금을 통한 수집 행사는 구태의연. 실제 연결 구간에 놓일 침목과 가드레일에 통일의 염원이 담긴 메시지를 국민이 직접 쓰게 하자.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보존성이 있도록 몇 가지 방법론만 보완하면 O.K.
Main Event :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기공식
본 행사 전날 오후에야 사납던 비바람이 잔잔해졌다. 밀린 리허설과 시스템 상태 점검이 스태프들의 피를 말렸는데...
드디어 9월 18일, 리틀엔젤스와 디딤무용단의 기원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임진각을 뒤로한 대형 무대는 대통령 내외분 및 전직 대통령, 3부 요인 등으로 만석. 단하에 국회의원과 기관장, 외교사절, 민간단체 대표 및 실향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기공식이 시작되었다. 기공식 연출의 최대 화두는 ‘감동’의 표현과 보도를 위한 ‘그림’이었다. 여느 기공식과 다르게 발파식 이후에 특수효과팀이 제작한 ‘염원의 열차’ 출발식이 열렸다. 경의선 최후의 기관사가 대통령 내외분에게 출발 신고 후, 실향민과 어린이가 “철마야 달려라, 겨레의 염원을 싣고”라는 현수막을 펼치자 ‘염원의 열차’는 분단의 벽을 넘어 임진강 철교를 향해 출발. 대형 애드벌룬의 비상과 함께 한 달 남짓 불면의 밤을 보내게 한 기공식이 끝났다.
국내 생방송을 비롯하여 CNN, NHK 등 세계의 언론이 특집보도를 했고 국내외 각 언론사에서 자료 요청이 쇄도했다. 우리나라 전국민은 물론 세계가 함께 한 초유의 이벤트였다.
Post Event :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기공 기념 국민 대축제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기공은 비단 실향민 뿐만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질곡을 안고 살아야 하는 신세대에게도 커다란 의미가 있는 이벤트였다. 따라서 그 의의를 살리고자 이들이 한자리에 어울어지는 축하 마당으로서, 60대 연예인부터 아이돌 스타가 같이 하는 퓨젼 컨서트를 기공식 밤, 서울의 심장부인 여의도에서 개최했다.
약 6,000여 명의 각각 다른 계층의 관객 앞에서 트로트에서 랩까지 이어지는 공연은 진풍경이었다. 아주머니와 여중생이 함께 의자 위에 올라가 뛰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았으며, 경의선 기차가 지구본 위로 올라타는 ABR 연출에 탄성을 지르는 어린 꼬마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불꽃놀이를 뒤로 하고 역사적인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이는 기획상으로 가장 멋진 공연 중의 하나였으나 올림픽 특집 편성 등의 관계로 그 순간이 전국으로 중계되지 못한 것이 한가지 아쉬운 점.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벤트
우리가 맡았던 이벤트는 끝났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이벤트는 끝나지 않았다.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기공 이벤트는 남북의 철도와 도로가 완전히 개통되고, 더 나아가 민족이 통일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미완의 이벤트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겨레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실향민의 후세로서, 이 역사적인 이벤트가 하루 빨리 완성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끝으로, 이번 이벤트를 통해서 건설교통부, 철도청, 그리고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밤을 낮 삼아 일하는 관계자의 모습을 접하면서 공무원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음을 덧붙이고 싶다. 한 팀이 되어 같이 힘써 주신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바쁜 와중에 인력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프로모션 본부의 타 팀과 임원께는 물론, 한 달여 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애쓴 우리 팀과 스태프 모두에게 다시 한번 사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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