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12 : 크리에이터@클리핑 - 사물에서 생각하고, 사람으로부터 끄집어낸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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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원 CD I 이현종 CD


지금 거신 사랑은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지금 다른 추억과 통화중이오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추억이 끝나는 대로 곧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이복희의 ‘통화’ 중에서-

그가 당신의 사랑을 모르고 있나요? 매일, 매일...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마음이 왔다갔다... 애처로운 당신. 짝사랑은 크리에이터의 또 다른 이름인가? 소비자의 가슴속으로 공명(共鳴)의 코드를 찾아서 오늘도 우린 러브레터를 띄운다.

2000년 10월 어느 날 날아온 낭보 하나.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 연일 각 신문매체를 뒤덮은 축하, 또 축하의 러브 콜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K기업-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한민족 모두와 함께 축하드립니다 -H기업-
노벨 평화상 수상을 온 민족 한마음으로 축하합니다 -H기업-
평화인, 7천만 겨레와 함께 나누는 기쁨 -H자동차, K자동차-
김대중 대통령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 당신은 자랑스런 한국인입니다 -S기업-
아름다운 우리나라, 평화의 나라 -H기업-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겨레 가슴에 평화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협회-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민족의 자랑입니다 -△△협회- 김대중 대통령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 정말 아름다운 당신! -T기업-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축하의 메시지가 신기하리만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축하하는 데 무슨 딴소리가 필요하냐구요?
그러나 또 다른 기업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할 말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고. 슈바이처처럼, 만델라처럼, 테레사 수녀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우리 곁에 있다고(이하 생략).

크리에이터, 그 job의 본질은 교감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나는 던진다, 너는 받아라 식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이젠 더 이상 설 땅이 없음을 실감한다. 나와 너와의 관계를 의미 있게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는 일, 그것은 크리에이터에게 주어진 천형(天刑)의 사랑이다.
광고에 무덤덤한 소비자의 가슴에 와 박히는 따뜻한 화살을 준비하는 사람, 오카 야스미치(岡 康道) CD<사진 1>. 그에게서 풍기는 진한 사람 냄새를 느껴보자. ‘사물에서 생각하고, 사람으로부터 끄집어낸다’. 이것이 바로 그의 크리에이티브 화두이다


감정의 발견, 절제된 묘사

“광고를 하는 상품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한 아무런 감정 없이 그것을 사용할 리 없습니다. 따라서 기획을 입안할 때는 그 상품의 주위에 맴도는 감정 - 그것은 자신의 감정일 수도 있으며, 자신이 상상하는 타깃의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 어느 경우든 그 주위에 있는 감정을 끄집어내면 되는 것입니다. 내 경우는 그것이 기획입니다. 그래서 상품이 주어지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상정하고, 그 사람은 그 상품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느낌을 가지고 있을거야, 라고 생각을 진행시켜 나갑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표면적으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감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감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CM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말 한 번 잘했다’라는 반응이 옵니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발견한 사람만이 전달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발견이라는 것은 음지에 숨겨져 있거나, 지금까지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조금 특수한 형태를 취하고 있거나, 이상한 향기가 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상 CM은 몇억엔이라는 돈이 지불됩니다. 광고주에게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하게 하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광고를 내보내는 것은 제작자로서 불성실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광고를 만드느니 조금 이상하더라도 튀는 것, 존재감 있는 것을 만드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나의 광고 아이디어 발상 방법이 좋은 것은 ‘준비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상품만 주어진다면 기획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이미 있는 것으로,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득하기 편하다는 것입니다. 광고주는 사람들이 상품을 사용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용하고 느낀 감정을 말하기 때문에 ‘역시, 과연’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상당히 편리한 방법입니다. 이것을 방법론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유아적일지 모르지만 이 이상 구체적으로 잘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여러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끝까지 이러한 방법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감정의 발견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나와 비슷할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관점으로 감정을 그려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만들기 시작하면 당연히 언어가 중요해집니다. 감정은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편하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대사나 모놀로그가 무기이며그밖에 음(音)에 관해서도 리얼리티를 내기 위해 생활환경의 음이 확실히 들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도 결국 음이기 때문입니다.”


‘보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돼주었으면 좋겠다...’
항상 보는 사람의 반응을 먼저 생각하고 자극을 고안하는 사람, 이제 그의 광고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 편의 일본으로’라는 JR히가시니혼(東日本) 여객철도 광고이다. 마치 추억의 앨범을 보는 듯한 스틸 화면 구성, 전편에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 내레이션없이 서정적인 신이 이어지고... 이윽고, 야마가타(山形)역장(驛長)의 진솔한 멘트가 가슴에 스며든다.

야마가타는 산이 아름답습니다.
야마가타는 강이 아름답습니다.
야마가타는 별도 아름답습니다.
저 편의 일본으로 JR히가시니혼(東日本)
<광고 1> 야마가타 역장편.

감미로운 음악속에 차창밖에 펼쳐지는 일본해가 어우러지고 마음을 탁트이게 만드는 정경이 가슴 가득 밀려든다.
카나지와에 가는 것은 2년만이다. 신칸센이 가지않아 도중에 특급으로 갈아탔다.
바다가 눈높이와 같아진다. 아름다운 여자가 책을 읽고 있다.
저 편의 일본으로, JR히가시니혼
<광고2>카나지와

몇십 초의 짧은 순간에 사람의 분망함을 무장해제시킬 수도 있는 것일까? ... 오카 CD,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상품을 광고하든간에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은 그 상품을 접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일주일간 일본 도후쿠(東北) 지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그 기분을 한마디로 말하면 ‘떳떳하지 못한 기분(뒤가 켕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기분을 분석해본 결과 어머니에 대해 떳떳하지 못한 기분과 비슷했습니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식은 늘 자식입니다. 만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귀찮아서, 바빠서라는 이유로 만나지 못합니다. 보통 때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어머니에 대한 이러한 감정을 도후쿠 지방에 갔을 때 느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자기가 버린 고향 ... 좀더 프리젠테이션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매일 도쿄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본 문화를 조금씩 배신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껄끄러움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즉, 일본인이면서 미국사람과 같은 모양을 하는 것이죠,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래도 일본 문화에 대해서 실례를 범하는 것이죠. 이러한 일본에 대한 떳떳하지 못한 기분은 일본인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 겁니다."



‘사람’을 잊지 않고 ‘사람냄새’를 담아

또 다른 광고를 살펴보자. 도후쿠 지방을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를 잔잔하지만 긴 여운으로 묘사하고 있다.

카메라를 구입하고 나서 알 수 없는 어딘가로 가고 싶어졌다. 겨울의 아이츠(會津) ‘찰칵’ ‘찰칵’ ‘찰칵’,
이곳의 눈은 도쿄의 눈보다 따뜻한 느낌이다.
<광고 3> 아이츠편.

봄의 여행을 소재로 한 두편의 CM에서도 인간심성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오카 CD의 솜씨가 어김없이 녹아 있다.

<광고4>에서는 단짝친구 세명의 아쉬운 이별여행을 그려내고 있다. 헤어짐의 아픔을 속으로 삼키며 겉으론 더 수다스러운 단짝 친구들의 가슴앓이... 여행은 인생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일까?

<광고4>봄, 졸업여행편.
18세의 졸업여행, 세 사람 모두 신경이 날카롭다... 모두 각각 흩어지겠지?
봄방학이 끝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간만의 부부여행으로 들떠 있는 아내, 시큰둥하고 짜증스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독백.

<광고 5> 봄, 부부여행편.

31세, 4년만의 부부여행,
여행 오지 말 걸 그랬나?
...

이이 웃는 얼굴 본 지 한참된 것 같아
...

저어, 손 좀 잡아주지 않을래요?
봄방학이 끝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카나자와 지역의 여행상품 광고입니다. 이것은 ‘졸업여행이나 부부동반여행을 가지 않으시렵니까?’하고 권유하는 것입니다. 봄은 출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출발하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곳에서 작별을 해야 합니다. 즉, 헤어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졸업은 사람을 센티멘털하게 합니다. 졸업여행은 이별의 의식일지도 모릅니다. 센티멘털한 기분은 여자가 맛보기 쉬우며, 영상도 여자가 예쁘게 나오기 때문에 여자 모델을 기용했습니다.”

부자간의 정’을 테마로 한 ‘아들의 겨울’편을 보자.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미명으로 엄마의 치맛바람이 극성을 부리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10살짜리 꼬마아이를 두고 진로 상담을 하는 학교선생님, 그리고 이대로 가다간 큰일이 난다는 사설학원의 엄포성 진학상담... 10살짜리 아이의 어깨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게를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부자가 함께 떠난 겨울여행에서 아이는 아빠에게 묻는다.


<광고 6> 아들의 겨울편. ‘아빠, 거짓말 해본 적 있어?...’ ‘응...’
겨울이라서 얘기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JR히가시니혼(東日本)
설명하려 들지 말고 묘사하는 게 감정이입이 빠르다고 했던가? 말을 아끼면서 교감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지고지순의 경지인가. 그러고보니 요즘 세상은 너무 말이 많은 것 같다.




광고를 만들면서 ‘사람’을 잊지 않고 ‘사람냄새’를 담아내는 사람, 오카 야스미치. 그는 1956년생으로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졸업한 후 광고회사 덴츠(電通)에 입사, 5년간 영업 부서에 근무한 전력이 있다. 그의 인간 심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 풍부한 감수성은 자연스레 그를 creative people로 인도한다.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종횡무진 인간과 상품과의 드라마를 발굴해내는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성공 캠페인으로 이어진다.
‘비즈니스맨은 표류하고 있다’는 테마의 산토리 BOSS 캔 커피 캠페인, ‘인간의 고독’을 섬세하게 그려낸 후지TV 캠페인, 휴대전화 캠페인이라고는 믿기 어렵게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게 마음, J-PHONE만으로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역설적 어프로치의 동경 디지털홀 J-PHONE 캠페인 등등... 사람의 기분을 배제한 광고는 그의 작품에서 찾기 어렵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