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12 : 광고에 말걸기 - 공익광고 유감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김영하 I소설가

나는 공익광고가 정말 싫다. ^^ 밝은 웃음, 환한 조명을 들이대며 우리에게 물 아껴 쓰라, 에너지 절약하라, 질서를 지키라, 속살거린다. ^ 아니 속살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악을 쓴다. ^ 그러나 그다지도 근엄한 그들이 기대고 있는 이데올로기란 얼마나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가. ^그들은 금욕주의의 우산 아래 터를 잡고 앉아 질서만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

사기꾼들! 공익광고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꿔온 것은 질서가 아니라 혼란이었다.^^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은 상습적 무단횡단이지 저 아래 육교를 이용하는 착한 시민들이 아니다. ^교통질서를 잘 지킨다고 정말로 좋은 세상이 올까? 글쎄올시다. ^인구밀도 세계 2위의 국가에서 이 정도라도 질서를 지켜주면 정부가 나서서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 질서란 편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거라고 눙치지만, 거짓말이다. ^ 질서는 귀찮고 부자유스러우며 짜증스러운 것이다. ^ 거라도 없으면 서로가 서로를 죽여버릴 테니까, 어쩔 수 없이 만들어놓은 룰일 뿐이다. ^ 그러니 가증스런 거짓말을 집어치우고 솔직히 말해주기나 했으면 좋겠다. ^ “어이, 좀 드럽고 치사하더라도 지켜. 안 그러면 다쳐!” ^^

온 국민이 질서를 잘 지켰다면 4.19도 6.10도 없었을 것 아닌가. ^ 그러니 질서가 모든 생활의 근본이라는 식의 메시지는, 전쟁발발시 공익근무요원의 임무가 버스 전용차선에 진입하는 적 전차에 벌점을 부과하는 거라는 유머만큼이나 썰렁하게 들린다.^^.

공익광고가 주창하는 금욕주의는 더 짜증스럽다. ^ 공익광고는 항상 경제가 어렵다고 말한다. ^ 공익광고가 무슨 남대문시장 상인인가? ^늘 죽는소리다. ^ 그놈의 경제는 항상 최악이고 따라서 온 국민은 경제 살리기에 동참해야 한단다. ^ 누구, 평소에 경제 죽이고 있던 사람 있나? ^ 다 나름대로는 경제 살리려고 동분서주중이다. ^
호황일 때는 과소비하지 말라고 하고 불황일 때는 그나마 하는 소비마저 줄이고 조용히 집에서 TV나 보란다. ^ 도대체 이건 어느 시대의 경제학인가.^^


또한 공익광고에서 나는 매우 세련되게 살아 남은 학생주임, 훈련소장의 그림자를 본다. ^ 공익광고는 ‘우리(그들은 ‘우리’를 좋아한다)’들이 별 수 없이 ‘우리’임을, ‘하나’임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 “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별 수 없어. 개인적 취향? 웃기지 마라. 네가 이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한, 지킬 건 지켜야 한다. 네가 잘못하면, ‘우리’ 모두가 욕을 먹는다. 그러니까 잘해!”

2002 월드컵에 반대하는 시민, 무단횡단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리는 것이 고용창출에 기여한다고 믿는 사람, 지하철 내 선교자들, 소비중독자, 폭주족, 신용불량자 등등.^ 공익광고는 이와 같은 소수자들을 배제하면서 '공익 우선'의 파시즘적 이데올로기를 완성한다. 나는 그런 공익광고가 정말 싫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