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 많은 것을 확인한다.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검색하고, 후기를 읽고, 유튜브를 찾아본다. 주변 사람에게 묻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확인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AI에게 무엇이 좋은지,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 심지어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까지 묻는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혼자서 판단하는 일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2025년 마이크로소프트와 카네기멜런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는 이런 변화를 가늠하게 한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지식노동자 319명을 조사한 결과,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에 들이는 노력이 줄어드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물론 AI가 사람의 사고능력을 떨어뜨렸다는 뻔한 답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고의 일부를 AI에 맡기면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 결과를 검토하고 판단하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쪽이 더 개운한 해석이다. 판단은 여전히 개인의 몫이지만, 그 근거는 점점 더 개인의 바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외부의 판단을 무조건 신뢰하는 것도 아니다. 2026년 가트너의 미국 소비자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3%가 AI 생성 콘텐츠의 확산 이후 쇼핑 정보와 추천을 얻기 위해 실제 사람들에게 더 의존하게 됐다고 답했다. 반면 35%는 인플루언서에 대한 의존을 줄였다고 한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무엇을 아느냐 못지않게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가 중요해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광고는 이 시대에도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하는 걸까?
광고는 오랫동안 사람을 설득하는 일과 사회적으로 브랜드를 유명하게 만드는 일을 함께 해왔다. 제품을 선택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한편, 또 많은 사람에게 브랜드를 알리고 친숙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디지털 광고가 발전하면서 전자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커졌다. 누구를 설득할 것인지 세분화하고, 적합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측정한다. 어느 순간 개인의 반응을 확인하는 일이 광고 효과를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클릭했다고 설득된 것도, 구매했다고 반드시 광고 때문에 마음이 바뀐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개인의 마음을 바꿨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만, 정작 확인하는 것은 몇 가지 행동의 결과일 뿐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선택하는 과정은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제품의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망설인다. 반대로 제품에 대해 잘 몰라도 주변에서 자주 사용하고 이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 관심을 갖는다. 어떤 브랜드는 좋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워도 왠지 믿음이 가고, 많은 사람이 선택한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한다. 사람은 혼자서 판단하는 것 같지만, 그 판단의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행동과학자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는 이를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 확신하기 어려울 때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본다. 마케팅 전략가 마크 얼스(Mark Earls) 역시 저서 ‘HERD’를 통해 인간이 생각보다 훨씬 사회적인 존재이며,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과정이 브랜드와 문화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내가 어떤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도 그 브랜드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혼자 광고를 보고 알게 된 브랜드와 TV에서 보고 거리에서도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들은 브랜드는 다르게 느껴진다. 후자는 나만 아는 브랜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재하는 브랜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친숙함을 만들고, 때로는 선택의 신뢰와 정당성이 된다. 브랜드는 개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미디어 전략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디어는 타깃을 더 잘게 나누고 개인에게 적합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앞장서 왔다. 하지만 정교하게 전달된 광고가 반드시 사회적인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광고를 보고 각자의 반응으로 끝난다면, 수많은 개인에게 도달하고도 하나의 사회적 존재감을 갖기는 어렵다. 반면 누구나 아는 광고의 장면이나 음악, 거리에서 반복해서 발견되는 브랜드의 모습은 그 브랜드가 사람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반드시 화제가 되거나 대화의 중심에 오르지 않아도 영향력은 작동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던 공통의 기호나 흩어진 미디어의 연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서로 다른 미디어에서 만난 경험이 하나의 의미로 연결될 때 브랜드는 개인의 기억을 넘어 사회적인 존재감을 갖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디어 효과도 개인의 반응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브랜드의 인지도와 친숙함, 연상 이미지, 검색과 대화의 변화처럼 사람들의 기억과 사회적 인식에 남긴 흔적을 살피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돈이 좀 든다는 게 문제일 뿐) 당장 새로운 지표를 만드는 것보다 무엇을 광고 효과라고 부를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에 대한 설득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제품의 기능과 가격을 비교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이유를 찾는다. 다만 모든 광고를 개인의 선택을 바꾸기 위한 메시지로만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인 본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다.
설득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하는 말에서 시작된다. 영향력은 브랜드가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으면서 생긴다. 우리는 언제부터 전자를 증명하는 데만 이토록 많은 노력을 쏟게 됐을까? 잃어버린 균형감이 아쉽다.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 - 마크얼스 (쌤앤파커스, 2009)
사회심리학 - 로버트 치알디니 (웅진지식하우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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