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처럼 오디언스를 만나기 어려웠던 시기는 없었다. 어딘가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드러낸 콘텐츠가 넘치고, 알고리즘을 통해 한 번 더 전파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지금은 사람을 마주하기 가장 쉬운 시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광고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광고 회사의 미디어 전략은 애초에 ‘개인’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 즉 오디언스를 정의하고 그 집단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만드는 일이었다. 적어도 수십만, 많게는 수천만 단위의 사람들을 하나의 군집으로 묶고, 그들의 공통된 특성을 기반으로 메시지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오랫동안 광고 미디어가 작동해온 방식이다. 문제는 지금, 그 ‘군집’이 더 이상 예전처럼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특정 채널이 곧 특정한 사람들을 대표했다. TV 프로그램은 시간대별로 일정한 시청층을 형성했고, 잡지나 신문은 독자의 성향을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했다. 미디어를 선택하는 것은 곧 오디언스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전제가 무너졌다. 같은 플랫폼 안에서도 소비자는 전혀 다른 콘텐츠를 경험하고, 같은 콘텐츠조차 각자의 맥락 속에서 다르게 해석한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데이터는 넘쳐나지만 오디언스는 사라진 상태에 놓여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이로 인해 광고가 만들어내던 ‘공통의 이슈’ 자체가 약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하나의 캠페인이나 메시지가 일정 규모 이상의 사람들에게 동시에 도달하며 자연스럽게 화제가 형성됐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광고 효과가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공유되고 확산되는 것은 광고가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밈과 콘텐츠다. 광고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중심에서는 멀어지고 있다.
이제 기존과 같은 오디언스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나누고 정의하려 하지만, 그 기준 자체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필요한 것은 오디언스를 ‘집단’이 아니라 ‘상태’로 이해하는 접근이다. 사람은 하나의 고정된 특성으로 설명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반응을 보인다. 같은 사람이라도 이동 중에 소비하는 콘텐츠와 휴식 중에 소비하는 콘텐츠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오디언스는 특정한 속성의 집합이 아니라, 특정한 맥락에서 형성되는 일시적인 상태에 가깝다.
이 변화는 광고가 다루는 ‘욕망’의 형태 역시 바꾸고 있다. 사람의 욕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같은 사람 안에서도 여러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고, 그 우선순위는 순간마다 바뀐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욕망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이 언제, 어떤 맥락에서 드러나는지를 포착하는 것이다. 광고는 더 이상 욕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가 덴츠의 ‘어텐션 이코노미’다. 하루 동안 사람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만나는 광고는 대략 4,000개 이상. 우리는 광고를 집행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본다’고 가정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광고는 그저 스쳐 지나간다. 어텐션은 단순한 노출이 아니라, 사람이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특정한 콘텐츠를 멈춰서 바라보는 순간을 얘기한다. 스크롤을 멈추는 순간, 영상을 클릭하는 순간에는 항상 어떤 형태로든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어텐션은 단순한 미디어 지표가 아니라, 욕망이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노출을 확보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욕망이 작동하는 순간에 브랜드가 등장했는가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미디어의 복잡성이 아니라, 오디언스를 바라보는 방식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더 많은 채널을 확보하거나 더 정교한 타겟팅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흩어진 상태와 욕망을 다시 연결하고, 그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광고는 더 이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흐름을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광고 회사의 역할 역시 달라진다. 더 이상 매체를 집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를 해석하고 그 흐름 속에서 브랜드가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설계하는 조직으로 이동한다. 채널은 수단일 뿐이며, 핵심은 그 채널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경험을 만들어내느냐다. 동일한 미디어라도 어떤 흐름 속에서 배치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내가 속한 Audience Experience 팀의 역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오디언스를 정의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상태와 맥락을 기반으로 실제 경험을 설계하고,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타겟을 나누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같은 순간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 접근을 통해 광고는 더 이상 단편적인 노출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이야기되는 대상’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광고가 잃어버린 것은 도달이 아니라, 공유되는 경험이었고, 우리 팀의 역할은 바로 그 지점을 다시 만드는 데 있다.
복잡해진 미디어 환경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전략은 오히려 더 단순해질 수 있다. 미디어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상태와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에 맞춰 경험을 설계하는 것. 결국 미디어를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시 정의된 오디언스가 있다.
자료 출처 : 덴츠 어텐션 이코노미
https://www.dentsu.com/attention-economy?hss_channel=lcp-18706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