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월드컵에서 두 브랜드의 움직임이 유독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먼저 리바이스다. 보통 브랜드는 자신의 이름과 로고를 더 크게 보여주기 위해 경쟁한다. 그걸 아는 FIFA에서도 리바이스의 로고가 불필요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월드컵 경기장 중 하나인 산타클라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 설치된 대형 로고를 대회 기간 동안 가리도록 했다. 흰색 천으로 가려진 로고. 아마 이 정도면 월드컵 스폰서들이 만족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흰색 천으로 덮혀진 로고를 어렵지 않게 읽었다. 이게 하나의 밈으로 떠올랐고, 감다살이라는 요즘 유행어가 어울릴 만큼 리바이스는 SNS계정을 비롯, 매장까지 흰색 천의 리바이스 로고를 하나의 상징처럼 활용했다. 굳이 메시지를 보여주지 않아도 그 모양은 리바이스다.



하인즈의 사례도 좋다. 월드컵 기간에도 케첩은 먹어야 하기에 케첩의 대표 상품인 하인즈가 월드컵 미디어룸에 비치되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리바이스처럼 스폰서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어설픈 전기 절연 테이프로 로고 부분을 가렸다. 그러나 하인즈도 역시 감다살이다. 이 가려진 패키지를 마케팅으로 활용하면서 심지어는 캐나다에서는 아예 이 로고를 가린 제품을 출시하기까지 했다.
두 개 사례 모두 메시지로 이뤄진 브랜드는 감췄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더 강하게 브랜드를 떠올렸고 이걸 마케팅으로 활용한 두 브랜드는 감출수록 더 보여주는 새로운 엠부시 마케팅의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최근 글로벌 브랜드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브랜드를 가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개념은 기호학이다. 기호학은 흔히 언어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세상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다. 색을 보고 의미를 만들고, 음악을 듣고도 감정을 느끼며, 옷차림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이해한다. 사람은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기호를 통해 해석하는 존재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랫동안 좋은 광고는 좋은 메시지에서 시작된다고 믿어왔다. 좋은 카피를 만들고, 차별화된 슬로건을 제시하며, 제품의 장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이 광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광고의 문장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의미를 기억한다.
기호학자 롤랑바르트는 현대 사회의 이미지와 브랜드는 하나의 '신화(Myth)'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신화란 허구가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문화적 의미다. 어떤 브랜드는 제품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고, 어떤 브랜드는 하나의 가치관을 상징한다. 브랜드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가 된다.
이번 월드컵에서 화제가 된 브랜드들이 보여준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하인즈는 케첩의 맛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미 사람들에게 '케첩의 기준'이라는 문화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AI에게 케첩을 그려달라고 했을 때, 수많은 이미지가 하인즈 병을 닮았던 지난 캠페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브랜드는 제품을 대표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의 개념 자체를 점유한 것이다.
리바이스 역시 마찬가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청바지의 원단이나 봉제 방식이 아니다. 자유와 개성, 청춘과 진정성이라는 오랜 문화적 상징이다. 이번 월드컵 캠페인에서도 사람들은 제품보다 리바이스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상징적 의미를 읽었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광고를 잘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브랜드가 하나의 기호가 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지난 번 이야기했던 오디언스의 변화가 다시 떠오른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거대한 오디언스를 상정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알고리즘 안에서 각기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고, 같은 플랫폼 안에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공통의 오디언스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공통의 경험도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사라진 것은 공통의 오디언스이지, 공통의 기호는 아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상징을 읽는다. 같은 빨간 병을 보며 하인즈를 떠올리고, 같은 데님을 보며 리바이스가 상징하는 문화를 연상한다. 같은 광고를 보지 않아도 같은 의미를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글로벌 브랜드들은 설명을 줄이고 상징을 강화한다. 이는 단순한 브랜딩 전략의 변화가 아니다. 분절된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는 새로운 전략이다.
과거에는 하나의 TV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연결했다. 지금은 하나의 브랜드가 가진 기호가 사람들을 연결한다. 공통의 미디어는 약해졌지만, 공통의 의미는 여전히 사람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브랜드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광고 한 편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인지도 모른다.
이 변화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여전히 광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사용할 의미를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크리에이티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디어 전략 역시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도달했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의미를 읽고 그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가이다. 그래서 오디언스를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연령과 성별, 관심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떤 문화적 기호를 공유하고, 어떤 상징을 자연스럽게 읽으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지난 글에서 공통의 오디언스는 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다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같은 미디어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기호를 읽는다. 그리고 그 기호를 만드는 일이 앞으로 브랜드와 미디어가 함께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박두현의 미디어 플래닝 전략 20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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