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왜 직관에 호소할까?
TV나 유튜브에서 나오는 브랜드 CF를 보면, 우리가 일할 때 쓰는 전문적인 단어나 제품의 세부 기능을 나열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굉장히 직관적인 영상과 짧고 강렬한 카피 문구가 중심이 되죠. 우리 주변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야구장, 공항, 대형 공연장 같은 곳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로고만 단순히 보여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레이싱 스포츠 F1을 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드라이버들은 인터뷰 중에 머리나 귀를 만지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노출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합니다. 이런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동작 하나가 브랜드의 가치를 각인시키는 것이죠.
마케팅과 뇌과학
사람의 뇌는 참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단순합니다. 마케팅을 공부해 보신 분들이라면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우리의 뇌가 굉장히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보다도 감성을 자극하고, 다른 사람에게 멋져 보이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강한 매력을 느끼게 만들죠!
신경마케팅(Neuromarketing)의 전문가인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Hans-Georg Häusel) 교수는 『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라는 책에서 인간의 뇌를 크게 세 가지 시스템으로 설명합니다 [1].
- 균형: 안전과 위험 회피
- 지배: 경쟁과 자기주장
- 자극: 새로운 기술 습득과 경험
호이젤은 이 본능적인 시스템을 건드리는 마케팅이 고객의 선택을 이끌어낸다고 주장합니다. 전통적인 마케팅은 소비자가 이성적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좋은 품질, 낮은 가격, 새로운 제품”을 알리는 데 집중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매우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으로 소비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마케팅의 트렌드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나도 나를 몰라요!
스티브 잡스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직접 보기 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호이젤이 말한 인간의 비합리성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인데요, 사실 이런 증거는 심리학 연구에서도 무수히 발견됩니다.
첫 번째 예시는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의 『설득의 심리학』입니다 [2]. 치알디니 교수님은 굉장히 독특하게도 직접 중고차 판매점이나 모금 행사 현장에서 잠복근무를 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설득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그 수많은 일화들 중 인상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쇄를 하려고 줄을 서 있을 때, 그냥 “제가 먼저 써도 될까요?”라고 하면 잘 양보해 주지 않는데, “제가 먼저 써도 될까요? 왜냐하면 먼저 써야 해서요”라고 말하면, 단순히 ‘왜냐하면’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양보율이 크게 올라간다는 사실입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두 번째 예시는 제가 전공한 Human-Computer Interaction(HCI) 분야의 유명한 패러다임, CASA(Computers Are Social Actors)입니다 [3]. 이 이론의 선구자는 클리포드 나스(Clifford Nass) 교수님이시고, 제 박사학위심사 교수님이신 이관민(Kwan Min Lee) 교수님의 지도교수님이기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미디어를 사회적 존재로 대한다는 의미로 해당 패러다임을 발표하셨죠.
이 연구는 기존 심리학에서 밝혀진 인간 간 상호작용의 원리가 컴퓨터와의 관계에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성(性) 고정관념, 호의를 받으면 다시 호의로 되돌려주는 행위(reciprocity), 전문가 꼬리표가 주는 프레이밍(framing) 효과 등이 사람-사람 관계뿐 아니라 사람-컴퓨터 관계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나는 컴퓨터한테 친절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실험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AI의 활용과 HCI의 관계
앞서 언급한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사람들은 스스로도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CASA 패러다임은 기술 발전과 맞물리면서 그 중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최근 AI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수많은 서비스가 AI를 기반으로 제공되면서 연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도메인에서 이런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 AR-HUD 안에서의 AI 에이전트, 키오스크와 모바일 뱅킹 환경에서의 AI 사용 경험 등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이 AI를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죠 [4].
마케팅에서도 변화는 두드러집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광고 영상, AI 인플루언서, AI 광고 배너 등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사람들이 과연 AI 인플루언서를 좋아할까?”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로지나 릴 미켈라 등의 여러 가상 인간의 마케팅 성공으로 그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물론 실제 인간 인플루언서를 보는 것만큼 몰입감은 크지 않았지만요! 최근 HSADzine의 밈 트렌드에서도 소개된 정서불안 김햄찌(쇼츠 단건 최다 조회수 1342만 회)도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런 디지털 기술들이 활용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에 발달하고 있었던 UX 데이터 기반 마케팅이 더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사용자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연령대나 성별별로 어떤 그룹이 특정 페이지에 오래 머무르고 자주 방문하는지 더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있게 된 것이죠.
과거에는 광고를 만드는 사람,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 앱을 개발하는 사람, UX를 설계하는 사람,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이 따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1인 기업가도 혼자서 Make, Zapier 등을 활용해 예약 시스템을 자동화하고, Midjourney나 Canva로 광고 이미지를 제작하고, ChatGPT로 전략을 세우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Notion으로 웹페이지를 만들어 홍보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변화입니다.
물론 여러 업무를 전문적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하는 와중에 수행하는 업계에서는 1인 사업자와는 달리 소수가 이 모든 걸 다 하는 것이 비현실적입니다. 그러나 기술의 장벽이 낮아진 것을 기회로 삼아 직접 다른 분야를 경험해 보고, 최소한 다른 분야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이나 기업의 경쟁력은 크게 달라집니다.
마치며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툴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 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케팅을 하면서 소비자 스스로도 모르는 욕구를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마케팅을 활발히 연구했던 시점의 시선으로 다시 돌아가서 인간의 뇌와 심리를 알아야 하고, 거기에 더해 AI를 대할 때 인간이 보이는 심리적 반응까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마케팅과 뇌과학,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AI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볼 수 있는 데이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마케팅이 탄생합니다. 물론 더 공부할 게 많아져서 힘들기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차피 다가오는 미래이기에 피하기보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늘 해오던 일을 반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뇌과학이든 데이터 분석이든 가능한 지식을 활용해 다각적으로 소비자를 이해해 보고, 전략을 짜는 것에서부터 창의적인 광고를 제작을 하는 것 등 개인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케팅 영역이 다채로워진 점에서 재미있어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문헌
[1] Häusel, H.-G. (2015). Brain View: Why Customers Buy. Haufe Lexware. 〔한국어판: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 『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 해냄출판사〕
[2] Cialdini, R. B. (2006).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 Harper Business. 〔한국어판: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21세기북스〕
[3] Nass, C., Steuer, J., & Tauber, E. R. (1994). Computers are social actors. Proceedings of the SIG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CHI ’94), 72–78. ACM.
[4] Lee, C. H., Lee, J., Kim, D., Kim, I., & Song, H. (2024). Designing self-ordering kiosk for older adults: Familiarity design focusing on representation, manipulation, and organization. Computers in Human Behavior, 156, 108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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