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조어 중에 ‘어쩔티비’라는 게 있다고 한다. ‘어쩌라고, 티비나 봐’의 준말이라는데, 어느 OTT 예능 콘텐츠에 나오면서 널리 퍼진 케이스다. 신조어치고는 오히려 어른 세대에게 널리 퍼지며 (실제로는 잘 모르겠지만) 이젠 한물간 신조어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아무튼 이 신조어에는 신기하게도 ‘티비나 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는 오래되고 고루한 매체인 ‘티비’가 최근에 어떻게 소비되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시로 보인다. 할 말 없게 만드는 “어쩌라고”라는 단어는 과거에 사실 ‘나가라’ 혹은 ‘소외되라’는 의미의 “꺼져”라는 비속어와 쉽게 붙었는데, 이젠 그런 취급을 받는 데에 티비 매체가 대표적인 공감대로 자리잡았다는 것. 티비를 중심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입맛이 씁쓸해진다.
그러면 어떤 매체가 새로운 것이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 유튜브나 OTT는 당연하게도 새로웠지만, 확장성에 있어 초반의 가속도만큼 성장하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어느 시점 이후로 과연 저 매체에 꾸준한 콘텐츠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매체의 본질이 혼자만의 시간을 채우는 것이라고 봤을 때, 이제는 우리가 말하던 매체로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쫓는 트랜드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런 현상이 있다. 스트리밍을 통해 음악을 다 찾아 들을 수 있는 시대임에도LP는 매년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마치 새로운 매체처럼 유명한 가수의 앨범은 LP와 카세트는 반드시 나와야 하는 굿즈로 자리잡았는데, 얼마 전 홍대에서 열렸던 레코드 페어에는 LP를 사기 위한 인파가 몰려, 수 시간을 대기해야 겨우 입장이 가능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쉬는 날, 한 번 찾을까 하다가 새벽 4시부터 줄을 섰다는 어느 네티즌의 게시글에 뜨악함을 느꼈다.
또 누구나 휴대폰 하나면 훌륭한 사진을 만드는 시대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을지로 등지를 다니며 나만의 사진을 만드는 사람도 다시 늘고 있다. 물론 필름 현상은 이제 드물어진 몇 안 되는 현상소를 찾아야 하고, 하루 이틀은 걸려야 현상된 이미지를 겨우 만날 수 있다. 특히 웨딩 사진 쪽은 필름을 통해 찍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필름 품귀 현상에 한 롤에 만원이 훌쩍 넘는 필름 값은 그렇다 치고, 그마저도 금방 품절이 되는 걸 보면 또 뜨악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때는 아무도 찾지 않던 오래된 동네들이 북적인다. 오래된 집은 카페로, 동네 전통 시장에도 못 보던 가게들과 함께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매체 과잉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찾게 되는 매체의 본질적인 부분은 어쩌면 큰 트랜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요즘 티비를 틀면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 “레트로” 콘텐츠들이다. 일부의 채널은 온종일 과거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의 연속 편을 보여주기도 하고, 차트 형태로 과거 콘텐츠, 과거 유명인들을 소환하기도, 아예 옛 형식으로의 예능을 다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시대에 레트로를 소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표현 형식은 과거의 것이지만, 과거의 추억만으로 레트로가 완성된다는 건 한정적이고, 너무 협소하다. 오히려 지금 티비에서 만나야 하는 레트로는 보다 새로움에서 시작하는 표현 형식을 전제해야 하는 건 아닐까. 레코드판을 듣지만, 지금 만들어진 가수의 색다른 음색을 만나는 것처럼, 필름으로 사진을 찍지만 지금 내가 찍은 현실을 다른 색감으로 만나는 것처럼, 또 도시에 숨은 곳들을 찾아가지만, 그것이 그 당시 그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게 아니라 과거에 틀 안에 구성된 새로운 공간을 만나는 것처럼, 그것이 레트로라는 표현 형식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경험일 것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요즘 티비 프로그램의 소개를 보면 유명한 배우들의 이름은 잘 찾아보지 않게 된다. 그보다는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좀 더 시선을 두게 된다. 유명한 배우의 출연과 성공한 작가의 만남은 더 이상 사람들을 자극하지 못한다. 물론 보장하는 팬심이 기본적인 콘텐츠 흥행의 원동력은 되겠으나, 그것은 마치 형식만 남은 레트로처럼 한없이 한정적일 뿐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티비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니 자꾸 그 말이 다시 머릿속에 맴돈다. “어쩔티비”라는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티비 앞에 “꺼지듯” 앉아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보상자라는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 노력하던 그 시절의 레트로, 그것의 표현이 아니라 내용을 다시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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