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요조’의 청춘 에세이: 우주 대스타는 우주에 관심이 없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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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에 다녀왔다. ‘치우친 취향’이라는 칠곡 유일의 동네 책방에서 <아무튼, 떡볶이> 북토크를 했다. 발간된 지 제법 지나 이제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거라 생각했던 책의 북토크 제안이 반갑기도 했고 칠곡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불러준 것이 감사하기도 해서 칠곡까지 가는 발걸음이 내내 가벼웠다. 도착한 책방 앞에서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통유리에 ‘축 방문! 우주 대스타 요조’ 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우주 대스타는 그곳에서 8명의 독자분들과 오붓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기차 안은 우주를 생각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차창으로는 어떻게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떼꾼한 내 얼굴을 볼 수 있기도, 지폐계수기 속 지폐처럼 깜깜한 어둠 속으로 차라락 미끄러지는 나무와 산의 실루엣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나는 그 두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며 ‘우주 대스타’, 대스타 앞에 붙은 ‘우주’ 라는 말의 천연덕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무언가가 현실성을 초월할 때 되려 시시하고 만만해지는 일에 대해서. 마치 단골 슈퍼에서 물건을 살 때 천 원짜리를 천만 원이라고 말하는 주인아저씨의 농담처럼 ‘우주’라는 말도 실감되지 않아서 늘 사소하고, 가질 수 없으니 늘 장난이 되는 말 같았다. 그래서 나같은 중간 저자에게도 얼마든지 우주 대스타라는 찬사가 어색하지 않은 것일 테다.

칠곡에 다녀오고 얼마 뒤,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라는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발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다란 로켓이 불꽃과 연기를 지면에 내뿜으며 솟구치는 광경을 뒤늦게 영상으로 찾아보았다. 250명의 연구개발인력, 총 300여 개 업체, 1조9572억 원의 투입 예산이 만들어낸 성과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우주’라는 말이 조금도 시시하지 않은 사람들, 그 말을 조금도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는 단체들, 사실은 조금도 19,572원이 아닌 돈으로 이루어낸 일인 것이다. 

나는 고작 칠곡에 다녀오는 일에 대해서도 그간 진지하게 상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우주만큼 멀다는 것이 대체 얼만큼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보려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다. 이렇게 다른 각자의 초점에 대해 느끼게 될 때마다 나는 카메라 렌즈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빈티지 필름카메라를 좋아하는 애인 덕에 나도 다양한 필름카메라를 찍어볼 수 있었다. 그냥 외관이 근사해서, 혹은 애인이 찍어보라 권해서, 되는대로 이것저것 사진을 찍어보면서 나에게는 40mm 렌즈가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기본 렌즈라고 할 수 있는 35mm부터 28mm도, 50mm도 찍어보았는데 유난히 40mm 렌즈를 사용했을 때 가장 편안했고 사진의 결과물도 좋았다. 살아가는데 굉장히 유용한 정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40mm 적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서 좋았다. 대충 그 정도의 화각에 주로 ‘초점’이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기쁨이 있었다. 

사람마다 ‘초점’이 맞는 거리는 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28mm가, 누군가는 50mm가 잘 맞을 것이고, 28mm 도 부족해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사람, 혹은 더 멀리, 너무너무 멀리, 기어이 우주가 보여야 할 만큼 멀리 볼 수 있는 망원렌즈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중 하나인 NASA에서는 망원경을 아예 우주 궤도에 올려버렸다. 그렇게 지구 상공 559km에서 96분마다 한 번씩 궤도를 돌고 있는 허블 우주 망원경은 대기권의 간섭 없는 선명한 우주의 사진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나 역시 허블 우주 망원경이 촬영한 어떤 사진을 보고 ‘우주’라는 단어에 갖고 있었던 일종의 건들건들함을 바로 거두었던 적이 있다.

▲ 허블 우주 망원경이 촬영한 허블 울트라 딥 필드 2014 (출처: 나사 허블사이트)

허블 울트라 딥 필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하늘을 한 번 오랫동안 촬영해보자는 엉뚱한 생각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아주 긴 노출 시간을 들여 천구의 가장 어두운 곳을 관측함으로써 인류가 볼 수 있는 가장 먼 우주를 보려 한 시도였다. 지구에서 보았을 때 보름달보다도 작은 영역을 10년의 시간 동안 총 200만 초를 노출시켜 촬영한 정사각형 프레임 안은, 마치 보석함의 내부처럼 각양각색의 보석 같은 별과 은하들이 무질서하게 어질러져 있다. 여기에 찍힌 가장 오래된 우주의 빛은 130 억 년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지구에 도달했다고 한다. 아마 지금은 수백억 광년까지 더 멀어져 있을 것이다. 최첨단의 현실적인 도구로 130억 년 전의 과거를 포착했다는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나는 우주가 얼마나 큰지, 그런데 그 큰 공간은 또 얼마나 빽빽한지,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작고 보이지 않는지 실감하는 척했다.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다는 그 사실만큼은 호되게 알 것 같은 느낌으로 이상하고, 무섭고,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슬픈, 꼭 허블 울트라 딥 필드 마냥 무언가가 마구 어질러진 모양의 마음이 되었다. 

점점 우주까지 닿는 ‘초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제프 베조스나 일론 머스크의 행보를 취재하는 뉴스들은 곧 개인 우주여행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그럴수록 인류를 향한 초점을 더 단단히 하는 사람도 있다. 철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팀 딘(Tim Dean)은 ‘우주적 외로움에 대하여’라는 칼럼에서 “이 우주에 우리는 혼자나 다름없다.”고 적었다. 왜냐하면 ‘우리를 도와주러 달려올 존재가 우주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이 기울이는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간의 레이더에 생명의 증거가 잡히고 있지 않을뿐더러, 그들의 희미한 신호를 감지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감지한 순간 그들의 문명은 이미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고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호를 그들이 감지하는 순간 우리의 존재 역시 사라졌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나는 잠시 팀의 초점에 시야를 맞추어 영영 다른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에 실패한 채로 소멸할 인류의 미래를, 그리고 결국 우주를 감각할 존재가 모두 사라진 곳에서 홀로 계속해서 팽창하는 우주의 무의미함을 상상해본다. 
  

사실은 나의 초점 역시 지구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우주로 무언가를 쏘아 올리는 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상상력을 무한히 밀어붙이는 일도 재미있겠지만 역시 난 지구에 더 재미있는 일이 많아 보인다. 시급한 일 역시 더 많고 말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