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 『1Q84』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 春樹). 그는 매년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일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한편으론 매우 높은 경지에 오른 음악 애호가로도 유명합니다. 젊은 시절 직접 재즈 바를 운영할 정도로 재즈 음악에 전문가적 식견을 갖추었고,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작품 세계엔 언제나 ‘음악’이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 의미 있는 한 줄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2002년에 발표한 장편 『해변의 카프카(海辺のカフカ)』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7번 B 플랫 장조 Op. 97, ‘대공(Archduke)’>이 등장합니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호시노 청년은 우연히 카페에 들렀다가 난생처음 이 곡을 듣게 됩니다. 클래식 음악에 일자무식인 그였지만 – 그는 카페 주인이 불러주는 ‘대공 트리오’라는 곡명을 잘못 알아듣고 “대포 트리오요?”라고 되물을 정도로 클래식엔 문외한이었습니다. – 이 곡이 유난히 마음에 들었는지 카페 주인에게 누가 연주하는 곡인지 물어봅니다. 이 장면 속 호시노 청년과 카페 주인과의 대화 몇 구절을 옮겨보겠습니다.
“음악은 귀에 거슬리지 않으신지요?” “음악이오?” 하고 호시노 청년은 말했다. “아뇨, 참 좋은 음악입니다.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누가 연주하는 겁니까?” “루빈슈타인과 하이페츠, 포이어만의 트리오입니다. 당시에는 ‘백만 달러’ 트리오라고 불렸답니다. 그야말로 거장들의 예술입니다. 1941년에 제작되어 오래된 음반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좋은 것은 언제나 좋지요.”
- 『해변의 카프카』 中 발췌
피아노 트리오 7번, 줄여서 흔히 <대공 트리오>라고도 불리는 이 곡은 베토벤이 자신의 제자이자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작품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서로 교차하며 빚어내는 환상적인 삼중주 선율이 무척 아름답기로 유명한 곡입니다. 또한 <대공>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기품과 당당함,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실내악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곡을 연주하고 녹음한 수많은 연주자들이 존재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특별히 카페 주인이 ‘백만 달러 트리오’라고 지칭한 세 명의 전설적인 연주자들이 등장합니다.
호시노를 사로잡은 ‘백만 달러 트리오’의 진정한 가치
호시노 청년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은 ‘백만 달러 트리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세 명의 연주자 모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전설 중의 전설이었습니다.
구 소련 출신인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1987)는 명실상부 당대 제일의 바이올린 대가였습니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완벽해서 내로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도 그의 연주를 듣고 나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좌절했다고 합니다.
또한 엠마뉴엘 포이어만(Emanuel Feuermann, 1902~1942)은 강인하면서도 풍부한 표현력을 갖춘 첼리스트로, 그가 마흔의 나이로 요절하지 않았다면 현대 첼로 연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라고 평가되죠.
아르투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 1887~1982)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특히 같은 폴란드 출신 작곡가 쇼팽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이들 트리오에 ‘백만 달러’라는 가치가 매겨진 것은 단지 당대의 최고 스타플레이어의 조합이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진정한 가치는 각기 다른 파트를 연주하는 이들 세 명의 연주자가 원 팀(One Team)이 되어 만들어 낸 완벽한 하모니의 창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공 트리오>는 수많은 스타 연주자들이 트리오를 결성해 연주했지만 늘 성공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실제 녹음 현장이나 공연장에서 스타 연주자들의 불협화음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파트 연주는 잘 해낼지 모르지만 각자의 개성과 고집이 강하면 전체 연주는 매력적이지 않은, 오히려 듣기 불편한 음악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적잖이 발생하죠.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서로 연주 스타일과 음악관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는 쉽게 예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대 연주자의 음악관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낼 때 비로소 좋은 연주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 연주자가 함께 호흡하는 다중주곡이나 협주곡은 연주자들 간에 보다 높은 차원의 교감을 필요로 합니다. 제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라 할지라도 결국 상대와 호흡을 맞추지 못한다면 성공적인 연주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삼중주, 사중주 같은 실내악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연주자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실내악곡을 연주할 때만큼은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는 상대 연주자와 서로 배려하고 호흡을 맞춰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에서 좋은 ‘케미’를 이루는 연주자들은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그리고 작은 몸동작으로 교감하며 정성스레 한 곡을 완성해 나갑니다. 객석에 앉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을 느낍니다.
이처럼 소통과 협력으로 이루어진 하모니는 클래식 음악을 하나도 모르는 트럭 운전사, 호시노 청년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이들 ‘백만 달러 트리오’의 연주는 다시 보기 힘든 그야말로 백만 달러 가치의 하모니를 지닌 원 팀이었습니다.
실패한 드림팀의 교훈
‘백만 달러 트리오’와 반대의 경우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가 바로 카라얀(Herbert von Karahan, 지휘), 리히터(Sviatoslav Richter, 피아노),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바이올린),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첼로)가 함께 녹음한 베토벤 <삼중 협주곡 C 장조 Op. 56>입니다.
연주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백만 달러 트리오’ 이상의 무게감 있는 조합입니다. 구 소련 출신 스타플레이어 3인방에 카라얀이 자신의 분신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클래식계의 드림팀을 완성한 것입니다. 굳이 축구팀에 비유하자면 호나우두, 지단, 피구, 베컴이 한 팀으로 뛰었던 레알 마드리드가 연상될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환상적인 연주자들의 조합으로 이 곡이 연주되는 것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1969년, 이들의 연주가 EMI를 통해 음반으로 출시되자 많은 매체와 평론가들이 앞다투어 최고의 명 연주, 명 음반이라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앨범이 세상에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이 곡에 있어서 최고의 녹음으로 평가받아왔죠.
그런데 2007년, 독설가로 유명한 음악 평론가 노면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 <삼중 협주곡> 녹음 당시의 전말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을’ 최악의 <삼중 협주곡> 앨범으로 꼽은 일대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도대체 이 드림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당시 상황을 옮겨 적어 보겠습니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시작한 녹음은 온갖 잡음이 일었다. 오이스트라흐와 리히터는 카라얀의 템포가 이상하다고 여겼고, 지나치게 매끄럽고 호화로운 베를린 필의 반주가 음악을 조롱거리로 만든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 로스트로포비치만은 지휘자 편에 서서 그를 옹호했다. (중략) 지휘자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리히터는 첼로가 너무 두드러진다고 응수했다. 시간이 없었다. “카라얀은 자신의 스케줄이 바쁘다며 우리를 짜증 나게 했습니다.” 녹음 작업에 참여한 EMI 직원의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의 세션으로 모든 것을 마쳐야 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가 함께 했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오이스트라흐-리히터 vs 로스트로포비치-카라얀으로 편이 갈린 것입니다. 녹음 현장은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무색하게 불통과 비협조로 일관한 끝에 어정쩡하게 마무리됩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녹음으로 말이죠. 자신의 연주가 부끄러웠던 오이스트라흐와 리히터는 카라얀에게 “한 번 더 녹음하자”라고 제안했으나 카라얀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군요. 이제 커버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요."
녹음 당사자들조차 세상에 나오는 걸 부끄러워했던 최악의 음반이 그들의 이름값으로 포장되어 수십 년간 평론가들의 찬양을 받아 왔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물론 레브레히트의 평가와는 별개로 여전히 이 음반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워낙 뛰어난 연주자들이라 분란의 와중에도 평균 이상의 연주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겠지만, 녹음 현장에서 연주자들이 완벽한 음악적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것은 여지없는 사실이죠. 그들이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세상에 두 번 다시없을 불멸의 음반이 탄생했을 지도 모릅니다.
올해 우리 HS애드의 화두는 원 팀입니다. 광고업의 특성상 프로젝트 프로세스의 길목 길목마다 수많은 갈등과 대립의 요소가 산재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치열한 논쟁 속에도 끝내 최선의 접점을 찾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 역시 우리 HS애드가 가장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 해도 원 팀 정신으로 만드는 최상의 하모니가 더 많은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고, 수많은 대한민국 고객들을 감동시키는 백만 달러짜리 연주를 만들어내는 HS애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One Team
Many Possibilities
우리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일 때
서로에게 온기가 되고,
우리의 일에 힘이 되며,
더 많은 가능성이 됩니다.
우리를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우리입니다.
- HS Ad 신년 메시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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