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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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든 존재에는 지나온 시간이 기록돼 있습니다. 대단한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신은 신발 한 켤레에도 기록된 시간이 있고, 버려진 낡은 책상에도 나름의 기록된 시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온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시간은 발목을 잡고, 어떤 시간은 지혜가 됩니다. 마케팅에도 시간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과거를 잘 쓰는 브랜드와 그렇지 못한 브랜드. 과거의 시간을 잘 쓰면 감동이 되고 위트가 되고 아이디어가 되지만, 과거를 흘러가 버린 시간으로 정의하고 잊어버리는 브랜드도 있으니까요.


비틀의 아름다운 시간

▲ 폭스바겐 The Last Mile 광고(출처: 폭스바겐 USA 공식 유튜브 채널)

비틀의 시간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버지가 사 온 비틀을 보고 반가워하는 어린 아들. 아들은 어느새 점점 자라 아버지에게 운전을 배우는 청년에서 아내를 태우고 달리는 남편, 아이와 함께하는 아빠로 변하며 더 많은 시간을 기록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 아이는 백발노인이 되죠. 그리고 그는 어려서 만난 비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비틀즈의 《애비 로드》 앨범 커버에 실렸던 일을 기념해 ‘렛잇비’를 배경 음악으로 마지막 주행을 시작하는 비틀. 하지만 그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 어릴 때 처음 만난 꼬마 아이부터 비틀과의 시간을 함께한 많은 이들이 마지막 주행을 지켜보기 때문이죠.

미국 유명한 광고인 ‘번박’이 만든 “Think Small"과 “Not a lemon" 피켓을 든 사람, 영화 ‘풋루스’에서 비틀즈 드라이버로 등장했던 배우 케빈 베이컨, 팝아트의 표현으로 비틀을 이용했던 아티스트 앤디 워홀, 로드 트립 게임의 일종으로 비틀을 만나면 옆 사람 팔을 치는 이른바‘펀치 버기’를 마지막으로 받은 미국의 TV 진행자 앤디 코언, 그리고 못내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된 소년. 비틀은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The Last Mile”을 달린 후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하늘에선 그야말로 진짜 비틀인 딱정벌레가 되어 사라지죠. 2019년을 마지막으로 비틀 제작을 중단한 폭스바겐은 ‘길이 끝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됩니다. 더 크게 운전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나치가 통치하던 1930년대에 독일에서 태어난 비틀은 특유의 모양과 컬러로 반체제 문화를 상징하는 히피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랜 시간 고유한 개성을 유지한 자동차 브랜드. 2019년 사라진 비틀은 2020년 새로운 해에 ‘작별 인사’를 남기며 딱정벌레가 되어 떠났습니다. 어느 브랜드가 떠나는 길을 이렇게 따뜻하게 남길 수 있을까요? 사람의 이별보다 더 감동적인 영상입니다.

폭스바겐은 인플루언서들에게 자기만의 비틀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게 하는 캠페인 또한 벌이고 있습니다. 판매중단을 끝으로 신제품만 강조하는 마케팅이 아닌, 따뜻한 기록을 통해 공감과 향수를 같이 하는 폭스바겐. 비틀은 가는 길 끝까지 자신만의 개성 있는 색깔을 지켰습니다.


작은 순간도 놓치지 않는 버거킹

▲ 버거킹: King Stairs 광고(출처: Ads of Brands 유튜브 채널)

영화 ‘조커’로 인해 브롱스의 계단은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과 인플루언서들이 광대 복장과 분장을 하고 브롱스 계단에서 사진 찍는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번졌습니다. 하나의 트렌드로만 지나칠 수 있는 이 작은 순간, 버거킹은 이 순간을 잡았습니다.

경쟁사의 심볼이 ‘광대’인데 기인해 광대에게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여 온 버거킹. 광대로 분해 계단에서 춤을 추는 조커의 장면에서도 그들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냅니다. 연일 찾아대는 조커 팬들로 인해 계단 가까이 사는 주민들은 소음과 인파에 불편을 겪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브롱스 주민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버거킹은 달랐습니다. 브롱스 계단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보상하기로 한 거죠. 그들에게 공짜 와퍼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배달 앱, 우버 잇츠를 통해 ‘KINGSTAIRS'라는 코드만 넣으면 공짜 와퍼가 집으로 배달되는 방식입니다. 1월 7일, 조커의 DVD 발매일에 맞춰 시작된 이 캠페인은 1월 12일까지 지속됐습니다. 버거킹은 ‘광대가 얼마나 성가신 존재인지 알기에 브롱스 주민들이 모두 행복한 얼굴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조커가 춤을 추는 브롱스 계단은 사실 큰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과거 브롱스 계단을 올라가면 그곳부터 빈민가가 시작되는 위험지역이었죠. 조커가 계단을 내려오며 춤을 추는 것도 가난한 브롱스에서 벗어나 부촌으로 이동하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이와 동시에 소외된 계층에서 인기 TV쇼에 출연하게 된 조커의 변화를 의미하는 장면이기도 한데요. 버거킹은 영화의 시그니처가 된 이 상징적 장면을 캐치해, 조커 대신 버거킹의 왕이 이 계단에서 춤을 추게 합니다. 공짜 와퍼를 선물하게 된 것을 자축하면서.


알렉사 이전의 시간을 재현해 낸 아마존

▲ 아마존 슈퍼볼 광고(출처: 아마존 공식 유튜브 채널)

아마존이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 아마존은 슈퍼볼 광고로 90초 길이의 알렉사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엘렌쇼로 유명한 엘렌 드제너러스와 배우 포셔 드 로시를 캐스팅해 만든 이야기.

이야기는 간편하게 알렉사에게 모든 것을 명령하는 엘렌의 현대에서 시작합니다. 외출하며 알렉사에게 자동 온도 맞춤 시스템을 꺼달라고 부탁하는 엘렌. 엘렌은 ‘알렉사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화두를 던지죠. 그러자 시간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까지 거슬러 갑니다. 연이어 수많은 과거의 알렉사들이 등장하죠. 집안 온도를 낮춰 달라는 귀족의 명령에 불붙은 장작을 창밖으로 던져버리는 하녀, 알레사. 엘리자베스 시대, 여왕을 웃기지 못해 심기를 건드리는 광대, 알렉사이. 오늘 뉴스가 뭐냐고 묻는 이에게 모든 뉴스가 가짜뉴스라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뉴스 보이, 알렉스. 서부개척시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며 마부가 요구하는 그의 18번 송을 지루하게 연주하는 엘. 함께 일을 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여인에게 긴 이야기를 시작하는 남루한 옷의 알렉세이. 중요한 메모를 부탁하며 하늘로 날려 보내지만 이내 독수리와 용에게 잡아먹히고 마는 비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테이프를 지워달라는 닉슨 대통령의 명령을 건성으로 듣고 지우지 않은 비서 알레샤까지. A.I를 대신했던 수많은 이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이행하는 건 거의 없습니다. 가짜 뉴스를 가리지 못하고 누군가를 즐겁게 하지도 못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내지도 못합니다. 결정적으로 닉슨을 하야하게 만든 테이프를 지우지도 않았죠. 아마존은 개인 기록이 남는 데 불편해하는 사용자들에게 원하면 언제든지 개인 기록을 지울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닉슨의 이야기까지 넣었습니다. 알렉사가 있었으면 닉슨의 요구대로 모든 기록은 지워졌고 역사는 달라졌겠죠.

다시 현대로 돌아와 엘렌의 물음에 답하는 로시. “알렉사 이전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몰라”라며 알렉사 이전의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합니다. 이미 A.I는 우리 세상에 깊숙이 들어와 이제는 모든 삶을 편하고 스마트하게 만들었다는 걸 강조합니다.

영상은 가상이지만, 모든 걸 능숙히 해내는 알렉사와 다르게 스마트하지 못한 캐릭터들을 등장 시켜 웃음을 줍니다. 알렉사 이전의 세상을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게 ‘불편한 시대’로 만들어 버렸죠. 알렉사 이후의 시간과 알렉사 이전의 시간을 재치 있게 표현했습니다.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세계 영화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 갱들의 시간으로 공감을 공유합니다. 우리에겐 그리 친숙하지 않지만, 정치와 경제와 밀접하게 얽힌 미국 갱들의 지나온 역사. ‘아이리쉬 맨’을 통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디테일한 감정 묘사와 전형적인 갱 영화 같지 않은 결말로 진한 여운을 남겨 미국인들의 호평을 받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영화와 함께 공유한 것이죠.

외국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봉준호 감동의 ‘기생충’ 또한 어디서나 겪고 있는 빈부의 차에서 비롯되는 시간들을 담고 있습니다. 지역과 언어는 다르지만 어디서든 경험하는 빈자와 부자가 얽힌 이야기. 함께해온 시대의 이야기가 위트와 반전을 통해 동시대를 사는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건 ‘같은 감정’을 가지기 쉽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 브랜드가 기록해온 시간은 또 다른 ‘공감’의 요소가 됩니다. 뉴트로를 통해 지나온 시간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수많은 브랜드, 그래서 ‘함께한 시간’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시간’이야말로 브랜드가 깊게 생각해야 할 마케팅 가치입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