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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들의 만남


삶의 속도가 그 어떤 시대보다 빠른 시대. 과거에 분명하게 존재했던 경계들은 벽을 허물고 만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소위 ‘명품’으로 불리며 콧대 높던 브랜드들은 온라인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들에 가까이 가는 친근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며, 스트리트 패션과 협업하여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드롭’ 문화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명품’은 ‘있는 사람’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들의 ‘자기표현의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죠.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변화하는 ‘명품 문화’를 주도하며 경계를 없애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스트리트 패션 디자이너였던 그는 최초의 흑인 루이비통 남성복 디자이너가 되어, 루이비통 매출을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명품 가구 브랜드 비트라와 협업, 2035년 미래 주택을 구현했으며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의 거장 장 프루베의 의자를 재해석했습니다. 온라인으로 100개 한정판으로 판매된 그의 의자는 관계자들의 우려와 달리 바로 품절됐으며, 그의 디자인은 시카고 현대미술관에까지 전시되고 있습니다. ‘배타성’을 기본 애티튜드로 삼았던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에 셀럽이 아닌 1,000명의 패션 스쿨 학생들을 초대했고, 유명 모델이 아닌 래퍼, 스케이터, 화가 등 스트리트 패션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런웨이를 걸었습니다. 그의 디자인엔 경계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허물고 다시 세웁니다. 패션 디자이너라고 패션만 디자인하지 않습니다. 가구와 조명뿐 아니라 삶의 태도와 철학까지 디자인하고 있고, 젊은 세대들과 통하고 있습니다.

현대 문화에서 ‘경계’는 새롭게 조화를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재료일 뿐입니다.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을 창조해내는 HBO. 그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내세우고, 여성을 위한 캠페인을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 흑인 여성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는 '인시큐어'의 주인공 아이사 (출처: HBO)

▲ '완벽한 여성'의 조건을 조제 중인 '웨스트월드' 속 로봇 매브 (출처: HBO)

8월 26일, ‘여성 평등의 날’엔 새로운 카툰을 선보였습니다. ‘Becauseofher'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개된 카툰. 풍자와 유머, 불안과 공포를 독특한 그림에 담아내는 프랑스의 일러스트레이터 잔느 디톨란트와 협업한 카툰은, 할머니 책장에서 꺼낸 듯한 오래된 느낌입니다. 디톨란트는 HBO 인기 드라마 속 네 명의 캐릭터를 그렸습니다. ‘웨스트월드’에서 남성을 위한 ‘완벽한 여성’으로 설계된 로봇 매브, ‘걸스 다이어리 인 뉴욕(원제: Girls)’에서 화려한 생활이 아닌 집값과 생활비를 걱정하는 리얼한 뉴요커 한나, 흑인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그린 코미디 ‘인시큐어’의 주인공 아이사와 몰리. 그들은 각자 드라마의 역할에 맞게 목소리를 냅니다.

매브는 ‘완벽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전합니다. ‘멋진 여성’들에겐 섹시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섹시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복종과 남성을 위한 케어, 여성스러움과 가정적인 것 등 세상의 요구는 계속되죠. 모두 남성 중심적입니다. 카툰 속 매브는 그런 ‘완벽한 여성’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조건을 섞어 조제합니다. 마법의 약을 만드는 동화 속 마녀처럼. 하지만 ‘조제’는 생각처럼 수월해 보이지 않습니다. HBO는 ‘여성이 정해진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때야 비로소 평등해진다’라고 메시지를 남깁니다. 

아이사는 흑인 여성들을 바라보는 편견을 얘기합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편견이 쓰인 립스틱. ‘뻔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자유로워질 때 여성은 평등해질 수 있다’고 전하죠. 뉴요커 한나는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이중 잣대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여성 또한 평등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몰리는 ‘여성의 보수가 평등해지지 않는다면 여성은 평등해질 수 없다’고 합니다. 다양한 캐릭터로 다양한 시대 속 드라마에 등장하지만, 현대 여성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는 손색이 없는 메시지. HBO는 여성의 이야기를, 자신들이 제일 잘 하는 드라마 속 캐릭터를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카툰은 포스터, 에코백, 스티커, 노트 형태로 만들어져 여섯 군데의 지역에서 여성들을 만납니다. 이 작업은 여성 창립 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진행됐고요. 

HBO는 TV 속 드라마만 만들지 않습니다. 현실 속 드라마도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에이전시가 에이전시를 광고하는 법

뭔가를 창작한다는 건 힘든 일입니다.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고 좌절과 방황도 필요합니다. 시인 서정주는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라고 자화상을 썼습니다. 대표 친일파로 비난받는 시인이지만, 그가 그린 시인의 자화상은 창작자의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밤낮 아이디어 하나를 붙잡기 위해 ‘몰두’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수많은 에이전시의 크리에이터들도 같습니다.


▲ Creative Essence by Mirum Helsinki (출처: Mirum Helsinki vimeo)

핀란드의 디지털 에이전시, Mirum Helsinki는 모든 결과물엔 피와 땀과 눈물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 땀을 기리기 위해 특별한 향수를 만들었죠.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에센스.” 방법은 좀 당황스럽습니다. 쥬니퍼 베리와 바다 소금, 머스크 그리고 특별한 재료가 들어갔죠. 오직 에이전시에서만 얻을 수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땀. 직원들은 땀을 내기 위해 바이크와 사우나, 요가를 해야 했으며 매운 치킨 윙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호기심과 열정과 땀이 섞인 유니크한 블렌드를 얻어 냈다고 합니다.  사실 향수는 입사 지원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에이전시에 입사용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면, 샘플로 향수를 받게 되며 직접 헬싱키 샵에 가서 시향도 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피와 땀, 눈물로 짜낸 아이디어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향수의 향이 궁금할까요? 장난 같은 아이디어지만 그들은 실제로 땀을 냈고, 향수도 만들었습니다.


▲ O Press Certo - Stream and Tough Guy (출처: Stream and Tough Guy vimeo)

포르투갈의 독립 대행사 스트림 앤 터프가이 또한 새로운 방법을 썼습니다. 신생 대행사의 대표는 직접 TV쇼에 출연했습니다. 쇼는 미국의 “The Price is Right"의 포르투갈 버전입니다. 참가자들이 정확한 물건의 가격을 맞추는 게임이죠. 이 쇼의 특징은 게임이 시작되기 전 출연자들에게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나 연인, 가족을 언급할 수 있는 기회가 얻어지죠. 대행사의 대표 리베이로 또한 같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멋지게 이용했습니다. 가족과 연인이 아닌 그들이 클라이언트로 만나고 싶은 기업의 마케팅 매니저나 대표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Santander 은행, 보안 서비스 및 컨설팅 업체인 Securitas, 에어비앤비, 코카콜라. 스페인의 자동차 브랜드 SEAT. 리베이로는 잠재 클라이언트의 마케팅 매니저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읊었습니다. 이 영상은 많은 클라이언트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들은 영상을 편집해, 비즈니스 전문 소셜 네트워크인 링크드인에 리베이로가 언급한 매니저들의 이름을 태그해 올렸습니다. 출연은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TV쇼가 끝난 후, 세 개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하니까요. 게다가 리베이로는 쇼의 경품으로 LCD TV와 침대 시트까지 받았다고 하니, 공짜로 지상파 전파도 쓰고 선물까지 받은 특이한 마케팅 전술입니다.

   

애드 시런과 하인즈의 만남

▲ Ed's Heinz Ad (출처: 하인즈 케첩 공식 유튜브)

영국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 그는 몸에 다양한 문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 문신들은 SNS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특히 가슴에 있는 호랑이 문신은 수많은 문신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죠. 에드 시런은 그들에게 ‘이 문신은 나의 괴상한 문신 중, 첫 번째 문신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며 응수했습니다. 사실 에드 시런에겐 특이한 또 하나의 문신이 있습니다. 왼쪽 팔에 자리한 하인즈 케첩 로고. 그는 하인즈 케첩의 열혈 팬입니다. 팔에 선명하게 로고를 새기는가 하면, 그의 경험에서 착안한 광고 아이디어까지 하인즈에 보냈습니다. 하인즈는 그의 아이디어를 채택했고, 에드 시런과 계약하여 광고 영상도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에드 시런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특별한 하인즈 케첩 한정판을 만들었죠. 오래된 스피커처럼 보이는 박스에 담긴 케첩은 에드 시런의 문신을 연상시킵니다. 발자국과 장미, 퍼즐 조각과 에디 시런의 서명이 그려진 패키지. 매우 화려한 케첩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한정판 케첩 104개는 온라인 콘테스트를 통해 선물로 나눠지고, 몇 개는 슈퍼 팬에게 세 개는 크리스티 경매에 부쳐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수익금은 시런이 선정한 두 개의 자선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 팝스타가 먼저 러브콜을 보내 광고를 찍고, 다시 브랜드가 팝스타 리미티드 버전을 낸 사례는 에드 시런과 하인즈가 처음인 듯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팝스타와 케첩. 어쨌든 그들의 만남은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가장 반대의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어떤 것이든 반대 지점이 있습니다. 밤과 낮이 있고, 여름과 겨울이 있고, 여자와 남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 지점을 새롭게 설정하면 새로운 좌표가 발견됩니다. 땀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쓰지만, 반대로 땀으로 만들어진 향수가 주는 의미. TV 드라마 캐릭터가 TV 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반대 지점인 현실로 들어온 이야기. 반대 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경계가 생기고, 그 경계는 서로 섞일 때 새로운 시너지를 내게 됩니다. 

고상한 루이비통은 스케이트 보더들의 브랜드 슈프림을 만나 높은 매출과 인기를 얻어냈고, 고급 슈트케이스 리무와 또한 슈프림과 협업한 제품으로 16초 만에 품절되는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광고하지 않습니다. 마치 게릴라처럼 SNS에서 짧게 포스팅하는 게 전부이며, 잘 팔린다고 대량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한정된 양만 판매하지만, 그들이 얻는 이미지와 관심은 오히려 더 어마어마하니까요.

새로운 만남은 우리의 문화사입니다. 햇빛의 움직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색을 만나 인상파가 되었고, 멜로디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하며 비트를 타는 음악은 힙합으로 탄생했고, 오래된 작품들은 현대 작가들을 만나 재창조되면서 오히려 더 미래적인 작품으로 변신합니다. 

크리에이터들은 그 만남의 중심에서 늘 새로운 것들을 연결해가고 있습니다. 창조의 역사는 결국, 만남의 역사입니다.

Posted by HS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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