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때보다 정보를 쉽게 접하고 콘텐츠가 넘쳐나는 때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노력도 필요로 합니다. 수많은 정보를 섭렵하는 노력뿐 아니라 그 정보들에서 진실과 가짜를 가려내는 노력. 가짜에 분노하고 진실에 공감하는 노력.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선 자신만의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일방적인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정보가 많아진 만큼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늘어나는 거죠. 수많은 정보가 오히려 우리에게 수많은 과제를 안겨준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진실에 힘이 있지는 않습니다. 때론 외면당하고 소외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콘텐츠’라는 말에는 흥미를 다룬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 같습니다. 클릭하고 몇 초 안에 사람들의 흥미를 잡아두지 못하면 그건 더 이상 유의미한 콘텐츠가 아니니까요. 크리에이터들은 ‘진실’을 더 충격적이거나 감동적으로 혹은 더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진실이 주는 파급력을 더 높이기 위해. 더 빠른 변화의 시작이 되기 위해.
라이언 킹의 진실
우리는 몇 년 전, 사자에게서 진한 감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자. 그 이야기는 실화여서 더 큰 울림을 줬습니다. 우리에 갇힌 어린 새끼 사자를 본 두 남자. 그들은 불쌍한 사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집에 데려와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곧 집에서 키우기엔 너무 크게 자라버리죠. 그들은 정든 사자를 아프리카로 돌려보냅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사자를 잊지 못했죠. 결국 사자를 만나러 아프리카로 떠날 결심을 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을 만류했습니다. 사자는 이제 그들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그러나 사자에 대한 그리움이 확고했던 그들은 주위의 만류에도 아프리카로 향합니다. 그리고 사자를 발견한 순간, 그들은 사자를 반갑게 바라봤습니다. 그때 사자는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을 알아본 사자는 큰 개처럼 달려와 애틋하게 안깁니다. 두 발로 서서 사람처럼 포옹을 하고 얼굴을 핥습니다. 줄곧 두 사람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닙니다. SNS에서 공유됐던 이 영상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줬습니다. 사자도 사람과 ‘그리움’과 ‘감정’을 나눌 줄 안다는 사실이 놀라웠죠.
국제 야생동물 자선 단체인 “Born Free Foundation”은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어린 사자가 태어났습니다. 눈을 떴을 때 어린 새끼 사자 앞에는 그를 보살펴 줄 여자가 있습니다. 사자는 어릴 때부터 그녀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녀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죠. 하지만 이내 사자에겐 ‘일거리’가 생깁니다. 놀러 온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는 일. 관광객들은 어린 사자와 사진을 찍는 것으로 그들의 여행을 기념했습니다. 하지만 곧 집에서 살기에도,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에도 사자는 너무 커버립니다. 그때 키우던 여자는 사자를 야생으로 돌려보내죠.
사자는 넓게 펼쳐진 아프리카의 자연에서 자유를 만끽합니다. 마치 라이언킹의 한 장면 같은 애니메이션은 사자의 평화로운 순간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평화롭던 어느 날, 사자는 자신을 키워준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를 알아본 사자는 유튜브에서 봤던 장면처럼 여자를 향해 행복한 듯 달려갑니다. 감미로운 음악이 울려 퍼지며, 애니메이션은 곧 둘의 감동적인 상봉을 보여줄 듯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집니다. 어디선가 총성이 들리더니 사자가 쓰러집니다. 사자를 보고 있던 여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자를 쏜 사냥꾼에게 돈을 받고, 죽어가는 사자와 기념사진도 찍어줍니다. 태어났을 때처럼 사자는 눈을 끔뻑이며 그녀를 바라보다 눈을 감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팩트입니다. 우리가 몇 년 전 감동했던 사자와 두 남자의 상봉도 팩트였고, 어릴 때부터 관광객 ‘사진 찍기용’으로 키워지다 사냥꾼에게 전시용 사냥감으로 팔리는 현실도 팩트입니다. Born Free Foundation에 따르면 남아프리카의 사자 70%가 사진 찍기용으로 키워지다, 울타리 쳐진 가짜 야생으로 풀린 후 헌팅으로 죽음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자와 사진 찍기 전에 또는 사냥하기 전에 이 ‘비극’을 끝낼 탄원서에 사인하라고 권합니다.
끔찍한 사실입니다. 새끼 사자와 찍은 사진을 귀여워하기 전에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봐야 합니다. 이 단체는 그 진실에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파급력을 높여주는 가장 따뜻한 애니메이션으로 가장 끔찍한 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리품으로 전락한 동물들 뒤에 감춰진 진실을 봐야 합니다.
23명 위인의 진실
아인슈타인,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닐 암스트롱, 넬슨 만델라, 스티븐 호킹 그리고 안네 프랑크. 이들의 특징은 세대를 초월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인권을, 누군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누군가는 평화를, 누군가는 박애를. 그들만의 생각과 실천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세상을 시작한 위인입니다. 에너지를 깨끗하고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뉴질랜드 정부 기관인 “Energy Efficiency Conservation Authority"는 우리가 아는 이 유명한 위인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위인은 총 23명입니다. 23명의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은 ‘그들의 어록’으로 남아있는 연설이나 문구를 다시 한번 읊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꿈을 꾸고,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하며, 변화가 돼야 하고,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고...” 23명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함께 연설한 듯,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사람들을 움직였던 연설 그대로입니다. 다만 목적은 재편집됐습니다. 지구의 에너지를 보호하고 기후를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 경각심과 관심, 참여를 끌어 내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기 때문에 세대가 없는 캠페인이라는 의미로 "Gen Less"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영상에는 우리에게는 다소 유명하지 않은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대목은 없습니다. 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수많은 유명 연설과 인터뷰들을 조사했고 그중에서 목적성에 부합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았습니다. 또한 각계각층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 배경과 신념을 다양하게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23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연설과 생각은 지금 봐도 울림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지구의 에너지와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과 관심을 끌어오는 데 있다고 해도, 연설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진정성이 현대에 맞게 재구성된 느낌입니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세대가 변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기에 가능한 영상이 아닌가 합니다.
진실한 이야기는 세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앨범 재킷의 진실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앨범 재킷이 있습니다. 1969년 발매된 비틀즈의 애비로드. 하지만 이 재킷엔 숨겨진 ‘불법’이 있었습니다. 폭스바겐은 그 점을 바로 잡기 위해 다시 이 앨범 재킷을 등장시켰습니다.
비틀즈 멤버가 맨발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사진. 너무 유명해서 패러디해 찍은 사진만도 엄청날 겁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시각엔 바로잡아야 할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왼쪽에 주차된 폭스바겐 비틀입니다. 반은 인도에 반은 차도에 걸쳐 주차된 비틀. 당시에는 인도에 걸쳐서 주차하는 게 불법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불법이라고 합니다. 장애인들이 인도를 지나가는 데 큰 불편을 겪을 뿐 아니라 유모차가 지나가기도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은 인도에 걸쳐서 주차를 못 하게 돼 있습니다. 폭스바겐은 앨범 발매 50주년을 맞아, 주차 보조 기능을 알리기 위해 앨범 재킷 속 비틀을 다시 주차시켰습니다. 이번엔 합법적으로 도로 위에 제대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폭스바겐과 스웨덴의 Nord DDB는 실제로 합법적으로 주차된 재킷으로 만든 'Reparked Edition' 바이닐을 발매했습니다. 음반은 온라인과 스톡홀름의 샵에서 판매했습니다. 9월 26일 한정판으로 발매된 이 음반은 이미 솔드아웃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수익금 전액은 스웨덴 어린이 권리 보호 단체인 Bris에 기증됐습니다.
폭스바겐은 이 재킷을 통해 50년간 그들의 기술이 얼마나 발전됐는지를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운전자를 위해서뿐 아니라 보행자를 위해서도. 누구도 의식하지 못했던 곳에서 그들이 바로 잡아야 할 진실을 찾아냈습니다.
진실에 대한 의무
최근 Airbnb는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였습니다. 토론토의 소아전문 병원과 연계한 ‘병원에서의 스테이.’비록 3시간으로 한정되긴 하지만 소아과 병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의료진은 전문적이고 케어 또한 세심합니다. 하지만 많게는 6명이 같은 병실에 머물면서 프라이버시나 편안함은 조금도 누릴 수 없습니다. 수많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옆 침대의 환자가 치료받을 때 느낄 수 있는 공포, 좁은 침대, 보호자가 머물기엔 힘든 좁은 공간. Airbnb와 연계한 이 영상은 병원 인프라가 얼마나 부족한지 사람들에게 직접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설의 부족함을 느꼈다면 당신은 새로운 병원을 짓기 위한 기부를 할 수 있죠. 실제로 Airbnb 사이트에선 토론토의 이 병원에서 3시간 머무를 수 있는 숙박을 예약받고 있습니다. 다만 장소가 협소하니, 개인 소지품은 갖고 오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Airbnb가 전할 수 있는 진실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이에겐 ‘진실’에 대한 의무가 생깁니다. 진실을 왜곡시키거나 오해를 만들 수 있는 콘텐츠는 그래서 바로 비난받고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습니다. 콘텐츠는 크게 보면 진실을 전하기 위해 혹은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상품에 대한 진실부터 세상과 오래된 편견에 대한 진실까지. 그래서 크리에이터들은 재미뿐 아니라 진실을 더 쉽고 옳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갖습니다. 그게 상품에 국한된 진실일지라도.
그 어떤 진실도 숨겨졌을 땐 힘을 발휘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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