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의 진수,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타인의 입장을 정확하게 분석했을 때, 공감이 시작되고 감동이 만들어지죠. 그리고 ‘타인’은 여러 사람들로 영역을 확장합니다. 데모그래픽적으로 간단하게 나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성 소수자, 장애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안에서도 각자가 가진 가치와 개성으로 달라집니다.
누군가를 쉽게 규정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습니다. 누구도 한 단어로 정의되지 않으니까요. 가령 주부와 미혼인 여성 안에도 다양한 취향과 가치, 생활방식이 있습니다. 한가지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입장이 돼보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더 세밀하게 이해해야 하는 작업이 됩니다. '당신의 입장‘은 결코 한 가지가 아니니까요.
오늘 하루, 당신의 시각에서
누군가의 하루입니다. 여느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출근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고, 아이와 수영장에 가고, 쇼핑하러 가고. 누구나 겪는 일상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평범한 하루의 주인공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평범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경계하고, 피하고, 노려보고, 때로는 경멸합니다. 힘든 하루가 계속되죠. 그의 하루는 법정의 문이 열리면서 반전을 이룹니다. 유일하게 그를 존중하는 곳.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기립하고 그가 앉기를 기다리고, 그가 앉자 자리에 착석하는 법정. 그는 법관입니다. 평범한 미국인일 때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지만, 재판을 움직일 수 있는 법관으로 등장할 때 사람들은 존중의 시선을 보입니다. P&G는 이 영상을 통해 '편견에 대해 얘기하자‘고 합니다. 아마도 그 편견은 인종에 국한되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법관’에게만 통용되는 ‘존중’이라면 그 또한 또 하나의 편견이니까요. 소수의 사람이 어떻게 존중받는지를 볼 때 그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듯이.
어쨌든 미국은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이기에 한 인종만 모여서 커뮤니티를 이루는 일은 거의 드뭅니다.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라틴계. 수많은 인종이 모여 미국이 움직입니다. 하지만 현대 미국은 인종차별이 사라진 것 같은 인상을 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 매체가 ‘그런 척’을 했으니까요. 실제야 어떻든, 공개적인 장소에서 인종차별을 얘기하는 걸 꺼리고 인종차별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숨기려고 합니다. 구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인종차별은 수없이 검색되는 검색어 중 하나라고 합니다. P&G는 이 주제를 공론화시키고 건강한 대화로 이끌고 싶어 합니다. 숨기는 데 급급하고, 민낯을 보여주는 데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고 싶어 하는 거죠. 광고를 통해 화두를 열고, 디지털을 통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편견을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들은 늘 과거를 얘기합니다. 인종차별을 다룬 광고는 현재를 얘기합니다. 여러 미디어에서는 마치 차별이 과거의 일인 양 얘기하지만,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곳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숨기지 않고 과감하게 대화를 꺼내는 것, 변화의 시작이 되겠지요.
지금의 당신, 다양한 시각에서
다이어트 코크는 캔에서 라벨을 없앴습니다. 컬러풀한 띠만 세로로 있을 뿐이죠. 올해는 시범적으로 판매됐고, 내년에는 실제로 여러 매장으로 확대돼 판매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라벨이 없으면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이어트 코크는 캔에서 라벨을 없앴을까요? 그들은 라벨 없는 당신, 라벨 없는 우리를 보고자 합니다.
라벨은 결국 누군가를 규정짓는 편견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외모만 보고 보수적인 사람, 너무 늙은 사람, 의심스러운 사람,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미국인이 아닌 사람 등으로 규정짓죠. 다이어트 코크는 누군가를 알기 전에 그 사람에게 붙이는 라벨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합니다. 성 소수자 의사와 치과 연합인 GLADD, 미국 장애인 협회,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변하고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내셔널 어번 리그, 히스패닉 연합 등과 함께하는 캠페인은 다양한 미국인을 존중하고 지지하고자 합니다.
▲라벨을 없앤 다이어트 코크(이미지 출처: AdAge)
처음엔 모든 라벨이 부정적이라는 전제에서 라벨을 제거하고자 시작한 캠페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캠페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라벨이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떤 건 자부심을 주고, 용기를 얻게 하고, 새로운 문화를 습득하게 하고 배우게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흑인 사회에서 자란 소녀는 자연스럽게 흑인 음악을 접하고, 풍부한 언어를 습득하고, 흑인의 화려한 패션에 대해서도 배웠다는 겁니다. 소녀는 흑인 사회에서 자란 걸 자랑스러워합니다. 하지만 타인이 규정지어버린 라벨은 사람을 가두고, 제한적이게 만들고,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모든 라벨을 없애자는 캠페인에서 라벨에 대해 얘기하고 나쁜 건 없애자는 캠페인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캠페인의 목적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성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다이어트 코크는 캔에서 라벨을 완벽하게 지우진 않았습니다. 성분표에 작게, 그리고 캔 바닥에도 작게 라벨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장 진열대에 있을 땐 어떤 글씨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이어트 코크의 과감한 시도는 제품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됐습니다.
▲맥도날드 내셔널 프렌치프라이 데이 캠페인(이미지 출처: AdAge)
맥도날드 또한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한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광고는 아주 심플합니다. 프렌치프라이를 나눠 먹으려는 두 사람의 손입니다. 두 사람의 손이 합쳐져 맥도날드 로고를 표현하고 있죠. 손의 조합은 성별의 다양함, 문화의 다양함, 연령대의 다양함 등을 담고 있습니다. 손이 프렌치프라이를 집으며 화면에서 사라지자, ‘사랑을 나누자’는 캐치프레이즈가 남는 아주 짧은 영상도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내셔널 프렌치프라이 데이’를 맞아 소셜 미디어, 빌보드 광고를 통해 집행됐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맥도날드답게, 프렌치프라이 제품 광고보다는 그들을 찾는 이들의 다양성을 기념했습니다.
다양성은 이제, 새로운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됐습니다. 현대 마케팅에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멋진 것을 소유하고 싶은 당신의 시각에서
아디다스는 늘 그들의 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늘 대담하고 멋지고 명쾌합니다. 왜 팬들이 아디다스를 소유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근사하게 만들어줍니다.
명령적인 혹은 설득력 있는 화법으로 말하는 아디다스. 하지만 내용은 타깃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듯한 이야기. 2019년 새로운 시즌 축구화를 런칭하면서 만든 캠페인은 여전히 멋집니다. 당신이 아디다스 축구화를 갖고 싶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며, 그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딜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한 태도로.
라이오넬 메시, 폴 포그바, 매수트 외질, 손흥민 등 유명한 축구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상. 그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얘기합니다.
“이 축구화가 갖고 싶은가? 그렇다면 조건이 있다.”
축구 영웅들은 차례로 등장해 자기의 언어로 조건들을 얘기합니다. 네가 아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과거를 버리고 현재에 집중해서 미래를 창조하라. 모든 패배와 손실에서 뭔가를 배우고, 동의하지 않는 걸 동의하고, 논란거리를 만들고, 혼란을 만들고, 광기를 만들고, 자부심을 만들고, 기록과 패배자, 역사와 침묵을 만들라고 합니다. 이 축구화는 오직 ‘창조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기에.
축구영웅과 제품의 교차 편집으로 심플하게 이뤄진 영상. 하지만 드라마틱한 연출과 음악은 메시지를 더욱 선동적으로 만들어주죠. 그리고 이 제품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기에 이 제품을 가지려면, ‘과감하게 뭔가를 만들라(Dare to create)’고 얘기합니다. 이게 그들이 내건 조건입니다.
일방적인 얘기인 듯하나, 아디다스는 알고 있습니다. 아디다스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욕망이 있는지. 그들은 남들과 똑같기를 거부하고 개성을 갖기를, 남들과 달라 보이기를 바랍니다. 아디다스는 자신의 제품이 그런 ‘남다름’을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만을 위한 제품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디다스만의 멋진 이야기입니다.
끝까지 가보는 일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 보는 것을 의미하지
의심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정말의 끝까지”
밀란 쿤데라의 “시인이 된다는 것”의 구절입니다. 시인이 된다는 것 그야말로 다른 입장이 돼 보는 것입니다. 나무의 입장이 되기도, 아이의 입장이 되기도, 천 년 전 사람의 입장이 되기도, 미래의 입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열정을 발견하고 절망을 체감합니다. 그렇게 바뀐 입장에서 생각해내는 것이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케팅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마음과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입장을 바꾸고 끝까지 가보는 것. 누군가의 열정의 끝까지, 누군가의 절망의 끝까지. 그렇게 입장을 많이 바꿀수록 ‘다양성’이 만들어지고 많은 것을 포용하는 브랜딩이 만들어집니다.
지금 세계는 ‘다양성’의 가치로 향하고 있고, 마케터와 크리에이터는 그 다양성의 끝까지 들어가 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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