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반의 목소리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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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오랜 역사는 반의 역사일 수도 있습니다. 권력을 탐하고 영토를 탐하고 재산을 탐했던 수많은 왕들. 지혜를 가르치고 덕망을 쌓고 무리를 이끌었던 수많은 리더들. 그들은 대부분 비상한 두뇌를 가졌거나 사람들을 설득하는 재능을 가졌거나 사람들이 따르게 하는 신망을 갖췄으며, 결정적으로 대부분 남자였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남자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가려지거나 숨겨졌던 또 다른 반이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편견들, 이미지들, 역할들. 목소리는 그 모두를 향하고 있습니다.

근대 유명한 여성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내지 못하고 남편에게 혹은 형제에게 가려졌던 일화가 꽤 많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셀리,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콜레트, 눈이 큰 아이의 그림을 주로 그렸던 화가 마가렛 킨... 모두 영화로 다뤄질 만큼 그들은 뛰어난 아티스트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찾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여성이 중요한 이유는 인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보면 더 쉬워질 수도 있습니다. 많은 브랜드는 2019년,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으로서의 동료 의식을 나눴습니다. 여자와 남자로 편 가르는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반에게도 똑같은 세상을 나누자는 취지에서. 


오늘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하셨습니까?

종종 우리는 여자와 남자를 평가할 때 다른 잣대의 언어를 쓰곤 합니다. 작은 일에 자주 서운해하는 남자를 보면 ‘기집애 같다’는 표현을 쓰는가 하면, 씩씩하고 털털한 여성에겐 ‘선머슴 같다’는 표현도 쓰죠. 이 말엔 성별에 대한 선입견이 들어있습니다. 여자라면, 혹은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이 단어들은 우리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 #BiasCorrect the Workplace(출처: Catalyst 공식 유튜브)

세계 일하는 여성을 위한 비영리 단체인 Catalyst. 그들은 여성들에게 씌워진, 즉 바이어스(bias, 편견)가 되는 단어들을 고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일하는 여성들에게 종종 씌어지는 단어들인 ‘bossy’, ‘emotional’, ‘pushy’, ‘dramatic’, ‘aggressive’ 등을 긍정적인 단어로 고치는 겁니다. 권위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bossy는 그야말로 ‘boss’로, 밀어붙인다는 뜻의 pushy는 설득적이라는 뜻의 ‘persuasive’로, 공격적이라는 뜻의 aggressive는 적극적 혹은 주장이 강하다는 뜻의 ‘assertive'로, 욕설인 bitch는 ‘leader'로, 감정적인 emotional은 열정적인 ’passionate’로, 조용한 quiet은 배려심 있는 ‘thoughtful’으로 바꾸는 겁니다. 앞의 단어는 누군가의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두 번째 단어는 누가 들어도 기분 좋을 말입니다. 


▲ #BiasCorrect Plug-In: Calculated or Strategic(출처: Catalyst 공식 유튜브)

Catalyst는 이 프로젝트를 #BiasCorrect로 이름 붙였습니다. 앱을 다운받으면 채팅 플랫폼에서 대체어를 제안하는 형식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에 그 때 그 때 대체어를 제안하며, 경각심을 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초를 줍니다. 

말은 생각의 표현입니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라고 듣는 사람에게까지 ‘무심코’가 되지는 않습니다. 가벼운 말 한마디에 즐거워질 수 있듯이, 작은 표현 하나에도 우리의 생각과 관계와 미래는 바뀔 수 있습니다. Catalyst는 그 단어의 힘에 집중하여, 변화를 일으키고자 합니다.


AI의 성별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AI는 점점 우리 생활 속으로 더 가까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AI 스피커는 흔한 디바이스가 됐으며,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냉장고, 램프, TV 등 곳곳에서 AI는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의문이 드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AI는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AI의 대표 캐릭터인 시리는 여자 목소리를 냅니다. 시리가 사람의 형체로 구체화된 적은 없지만 우리는 늘 여자 목소리와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알렉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클로버도 여자 목소리입니다. 생활 전반에서 AI는 여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 Meet Q: The First Genderless Voice(출처: Meet Q 공식 유튜브)

성 소수자를 대변하는 덴마크의 가장 큰 인권 페스티벌인 ‘코펜하겐 프라이드’는 이 점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미 세상엔 남녀로 이분화시켜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유독 AI 스피커는 여자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결국 그들은 새로운 AI 목소리를 만들었습니다. 목소리에서 특정 성별을 지운 겁니다. 최초의 성별 없는 목소리(Genderless voice). 목소리의 이름은 Q입니다. 보통 남성다운 목소리로 생각되는 음성은 음역대가 80Hz라고 합니다. 여성은 220Hz에 이른다고 하고요. 그들은 이 음역대를 벗어나는 중간톤의 목소리를 만들었습니다.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음역대에 속하지 않는 다섯 명을 모아 목소리를 녹음했죠. 그리고 그 목소리를 섞은 뒤, 중간 음역대를 만들어낸 겁니다. 이 목소리가 Q입니다. Q는 145Hz의 목소리를 냅니다. 


▲ Meet Q: The First Genderless Voice - FULL SPEECH(출처: Meet Q 공식 유튜브)

그들은 이 목소리가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길 바랍니다. AI 스피커뿐 아니라 비디오 게임, 기차 안내방송, 극장 안내 방송... 생활 전반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이 모두 성별 없는 소리를 내기를 바랍니다.

목소리는 단어 못지않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편안한 중저음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더 편안하게 할 것이고, 높은 하이톤 목소리는 경쾌한 기분을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가 정해놓은 목소리 성별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내비게이션은 여자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은 남자가, 버스나 지하철 안내 방송은 여자가, 연설문 낭독은 남자가. 굳이 코펜하겐 프라이드처럼 젠더리스 목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다방면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강요하고 편견으로 대하는 목소리는 줄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의 생각은 ‘목소리’까지 미칩니다.

 

그녀가 한 일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미국의 대표적 케이블 채널인 HBO는 2018년부터 'Because of her'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2018년엔 여성 크리에이터들에게 집중했다면 올해는 더 큰 이야기를 꺼냅니다.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온에어된 영상엔 ‘lady’가 되지 말고, ‘트러블 메이커’가 되라고 합니다. 


▲ Make a Little Trouble | International Women's Day 2019(출처: HBO 공식 유튜브)

영상은 HBO에서 방영된 TV 시리즈 장면에서 발췌했습니다. ‘왕좌의 게임’, ‘부통령이 필요해’, ‘커져 버린 사소한 거짓말’, ‘웨스트 월드’의 장면들이 사용됐습니다. 영화에서 적재적소에 찾아낸 장면에 진중한 내레이션은 보는 사람을 고무시킵니다. 내레이션은 1996년 웰즐리 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된 내용으로 영화 제작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노라 에프런의 목소리입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얼마나 많은 길을 여행하든 나는 당신이 숙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규칙을 깰 수 있는 길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문제를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이 다른 여성들을 대신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쪽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드라마 장면 그대로를 가져온 영상은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만들며, 목소리는 엄숙하며 힘이 있습니다. 


▲HBO가 오프라인에서 개최한 Inspiration room(출처: Adage 홈페이지)

오프라인에선 ‘Inspiration Room'을 열었습니다. 그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실제 여성의 이야기를 전시하자는 취지입니다. 각지에서 보내온 그들의 스토리를 대형 책으로 전시하거나 비디오로 만들기도 했으며, 오래된 노트로도, 편집된 책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들은 실제 HBO의 배우들인 마르가리타 레비예바, 푸나 자가나단, 수지 에스먼 등에 의해 실감나게 살아났습니다. 그들이 보낸 스토리를 배우들이 실감나게 재현해 냅니다. 엄마로서 느낀 기쁨도 있고 좌절도 있으며, 최악의 데이트 에피소드 등 여성들의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이 배어 있습니다. 모든 스토리는 편집되지 않았으며, 보낸 이의 이니셜과 지역만 표기해 ‘익명성’을 지켰습니다. 

HBO의 'because of her' 캠페인은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힘이 센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여성들의 고착화된 이미지를 바꾸고자 합니다.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요즘 가장 핫한 뉴스는 ‘버닝썬 게이트’입니다. 경찰 유착과 VIP로 일컬어지는 고객들의 행태, 일부 연예인들의 몰지각한 대화와 행동들. 그 안에서 가장 놀라운 건 ‘여성의 인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광고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장 많이 만들어낸 분야일 것입니다. 화장품을 쓰고, 예쁜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고, 신제품을 사용하는 여성들. 그 누구도 예쁘지 않은 이는 없습니다. 예쁜 셀레브리티가 들고 있는 화장품은 시장에서 금방 반응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는 곳 또한 광고입니다. 비록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평소보다 이야기들이 풍성해졌지만,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세상의 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는 브랜드들이 많아졌습니다. 

여자가 행복해진다는 건 남자가 불행해진다는 게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함께 좀 더 행복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성 인권에 대한 시선은 남성에 반대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때론 여성을 향하는 시선이 남성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되고 단절되기도 하지만요. 

이제 우리는 더 좋은 방법,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모든 인류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그렇기에 여성의 날을 맞아 선보인 여러 브랜드의 뜻은 충분히 의미를 지닙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