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에서 돌아온 지 1주일. 참관기를 쓰려고 하니 사실 좀 막막했습니다. 워낙 CES가 언론의 주목을 받다 보니, CES 관련 정보는 이미 실시간 뉴스와 블로그들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전달한 이후일 텐데. 그렇다고 생생한 현장감으로 승부하자니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영상이 눈에 밟히더군요. 고민 끝에 다들 알고 있을 만한 객관적 정보는 기본으로 깔고, HS애드 참관단 입장에서 느낀 것 위주로 말하는 편이 그나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전지적 참관단 시점’이라고나 할까요.
LG, CES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다
CES 전부터 국내외 언론의 기대가 높았습니다. LG전자가 국내 기업 최초로 CES의 메인 오프닝 키노트를 맡았다는 사실 때문이었죠. CES 오프닝 키노트는 지금껏 MS의 빌게이츠나 인텔의 브라이언 크르자니치 등 첨단 IT 기업의 CEO들만이 섰던 자리였으니 화제가 될 만했습니다.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LG의 키노트를 기다리는 청중들
푸른빛 배경 위로 등장한 LG전자 박일평 CTO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인공지능’이란 주제로 가전부터 로봇, 모빌리티에 이르는 A.I 기술을 통해, 시간과 경험을 디자인해 온 LG전자의 가치를 더욱 확장시키겠다고 선언했지요. 영상과 강연이 연결되는 진행 방식을 통해, 단순히 놀라움을 선사하기보다 실제적인 삶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더욱 확고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인텔의 지난 CES 키노트가 드론이나 증강현실을 띄워가며 “Innovation Live Show”를 거행했다면, LG는 “Show the Innovation Life”를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키노트를 들으면서 ‘왜 2019년에 LG를 메인 키노트에 세웠을까, 유수의 IT 기업들을 제치고 CES의 전통 카테고리인 가전 제조사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건 A.I.를 비롯한 혁신 기술이 개념만으로 놀라움을 줄 수 있는 단계를 지나, 상용화 단계에서 ‘얼마나 실제 생활에 필요한지’ 검증해보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 LG 홈브루(좌)와 LG의 웨어러블 로봇을 시연하는 모습(우)
‘삶에 필요한 기술 혁신’이라는 LG 철학이 집약된 제품은 ‘CES 최고의 TV’로도 선정된 롤러블(Rollable) TV였습니다. 5개의 말리는 스크린 자체도 탄성을 자아낼 만큼 혁신적이었지만, 크기나 화질 경쟁을 벗어나 일상에서 TV를 보지 않을 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의도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더군요.
▲CES 2019의 확실한 히어로, 롤러블 TV
물론 작년 OLED Canyon에 이어 CES의 랜드마크가 되어 버린 OLED Fall은 압도감 그 자체였습니다.
▲다른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빠져들었던 OLED Fall
A.I. is Everywhere!
A.I.가 더 이상 스마트스피커 등 몇몇 혁신 제품에만 적용되는 기술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습니다. 스마트홈, 휴대폰, 스마트시티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제품과 기술이 A.I.가 없으면 설명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구글과 아마존이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의 전용관으로 위세를 과시한 구글이나, 자동차부터 변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탑재 제품 라인업을 선보인 알렉사는 이번 CES에서도 실질적 주인공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헤이 구글' 부스. 전용 부스는 단지 거들 뿐
재미있는 건 구글이나 아마존 부스가 아닌 곳에서도 사람들이 알렉사를 찾고 ‘헤이 구글’을 외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만여 개의 디바이스(구글), 4,500여 개의 브랜드(아마존)와 연합전선을 구축한 이 인공지능 ‘플랫폼’들은 CES 전시장 전체를 가득 채운 공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탑재된 엉뚱한(?) 브랜드 부스에서 구글과 알렉사를 불러대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관에서의 상황이 아마 5년, 10년 뒤의 일상이 될 것이고, 미래의 소비자들 또한 브랜드를 이렇게 인식하겠구나 하고 말이죠. 제가 LG 냉장고를 사던 Sony TV를 사던, 제 아이가 늘 이름을 부르고 대화를 나누는 건 헤이 구글이거나 알렉사라면… 그들에겐 곧 구글 냉장고이거나 알렉사 TV겠지요. 제조사 브랜드 담당자 입장에선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엔 고분고분하던 씽큐였지만, 이젠 말도 안 듣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LG ThinQ는 그 해결책을 ‘생활 솔루션을 먼저 제안’한다는 차별성으로 찾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사용자의 이야기를 알아듣는 것은 탑재된 구글이 한다 치고, 사용자의 행동이나 외부 환경 데이터를 고려해서 생활에 알맞은 솔루션을 먼저 제안하는 것은 가전 기반의 A.I.가 가장 잘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에 걸맞게 LG 부스의 ThinQ 세션은 작년 CES보다 한층 진화된 생활 솔루션을 시연해 주었습니다.
작년에는 창문을 열어 달라는 사용자의 요청을 따르기만 하더니, 올해에는 라스베이거스의 모래바람 때문에 오히려 공기청정기를 돌리는 게 낫겠다는 솔루션을 제시하더라고요. 바야흐로 사용자보다 똑똑한 A.I,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자동차와 로봇
요즘 CES를 부르는 별칭이 생겼답니다. 바로 ‘라스베이거스 모터쇼’이지요. 가전제품 이상으로 자동차 업체들의 CES 참여가 늘어나면서 생긴 말입니다. 어떤 블로거는 심지어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볼 필요가 없다. 이젠 CES에 가라’고까지 얘기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CES 홈페이지 메인 맨 위에 자동차가 있었다(출처: CES 2019 공식 홈페이지)
현장에서 확인한 자동차 관련 기술에 대한 관심은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웠습니다. BMW, 아우디, 도요타 같은 자동차 제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구글, 파나소닉, 알리바바 등 웬만한 메가 브랜드들은 모두 자동차 하나씩 가져다 놓고 앞선 자동차 기술들을 선보이고 있더군요. 전기나 수소 연료 기반의 차량이 등장하면서 자동차 산업도 새로운 부품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사람의 운전이 필요 없어진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아 차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디즈니와의 콜라보로 차 안을 영화관으로 만든 아우디, 허공에 그린 운전자 손짓을 인식하는 BMW, 탈 때마다 건강을 체크해주는 파나소닉 등 자동차의 혁신 기술들이 주는 임팩트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적어도 제 아이들에게 운전을 가르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더군요.
▲CES에 전시된 보쉬와 파나소닉의 컨셉트 카
자동차만큼이나 관심이 뜨거웠던 또 하나의 영역은 바로 로봇이었습니다. 로봇 또한 최근 몇 년간 CES에서 각광받은 아이템이긴 했습니다만, 이젠 완연히 상용화 단계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네이버 로봇팔, 혼다 패스봇, 로벅의 자율주행 캐리어 등 다양한 생활형 로봇들이 관심을 끌었답니다.
▲다양한 로봇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그래도 가장 귀여웠던 전통(?)의 소니 아이(좌), 혼다 패스봇(우)
사실 자동차나 로봇은 LG의 전통적인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LG는 꽤 오래전부터 차세대 먹거리로서 자동차와 로봇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부터는 LG전자 CEO 직속으로 자동차와 로봇 조직을 신설했다고 하니, 이제는 차세대 주력 분야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LG에서는 보안 문제로 인해 일부 비즈니스 파트너에게만 차량 기술을 시연했는데요, 저 또한 참관단 자격으로 잠깐 체험했습니다. 아쉽게도 자세한 이야기는 말할 수 없지만, 이번 CES에 참가한 어느 자동차 브랜드 못지않게 훌륭한 기술이라는 것만 귀띔해 드립니다.
▲오프닝 키노트에서 세계 최초의 로봇 연사로 소개받은 LG 클로이
앞으로의 TV, 앞으로의 냉장고, 앞으로의 자동차는.
흔히 언론에서 CES를 거창한 용어로 수식할 때 ‘미래에 다녀왔다’고들 합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돌아온 날 6살짜리 첫째 딸이 묻더군요. “아빠 뭐 보고 왔어?” “응. 너희들이 컸을 땐 TV가 막 둥글게 말리고, 냉장고가 인사하고, 자동차를 사람이 운전 안 해” 이렇게 말하고는 과연 이게 맞는 설명일까 하는 의구심이 곧바로 들었습니다. 제 아이들이 성장한 20년 후에 TV는 더 이상 TV가 아닐 수도 있고, 자동차는 정말 자동차가 아닐 테니까요.
▲압도적인 사이즈가 시선을 강탈했던 Bell사의 대형 드론
시스코 회장인 존 체임버스가 말했습니다. “이번 CES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업은 기술 기업이 되어야 하며, 모든 제품은 기술 제품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확인했다”고 말이죠. 카테고리나 브랜드에 대한 기존의 개념과 관점들이 사라지고 재정립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소비자를 바라보고 브랜딩을 해야 할지, CES에서 미래를 보고 오니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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