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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쪽 창을 바라보다, 해골을 보다


“고객님 바뀐 주소를 말씀해주세요!” 수화기 저 편에서 여자가 응답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사 온지 얼마 안됐으니 주소가 입에 익을라치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그러니 뇌의 노화를 의심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이사 가신다면서요? 이거 섭섭해서 어쩌죠?” 경비실 아저씨와는 제법 정이 들었었다.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저씨가 고맙기도 하다. “가끔 들르겠습니다. 애들 학교 다니기 좀 편한 데로 가려 구요. 여긴 지하철이 멀어서…”

이사 온 집은 높고 창이 많다. 그 중에도 동쪽 창과 서쪽 창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그 가운데 거실이 위치하고 있어, 신기하게도 일출과 일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마치 무슨 비밀이라도 들춰보는 사제처럼 나는 태양의 출근과 퇴근을 늘 훔쳐보게 된 것이다.

일출은 찬연하고 일몰은 처연하다. 눈이 목격하고 몸이 끄덕인다. 생과 사의 무한반복이 펼쳐지는 곳. 나는 이 곳을 시간의 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간의 중립성과 영원성 앞에 누군들 무릎 꿇지 않겠는가. 이 무자비한 정복자는 모든 어린 아이들의 얼굴에 끝내는 깊은 협곡을 만들고, 희미해져 가는 기억조차 산산조각 내버려 모래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이 자와 거래할 수 있는 자본가는 어디에도 없다. 시간을 이긴다고, 시간을 되돌린다고 외쳐본들 교활한 악마의 유혹일 뿐, 경배하고 복종해야 할 따름이다.

서쪽 창을 바라보던 나의 눈이 문득 소파 위에 놓여 있는 해골을 응시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옷에 프린트되어 있는 해골 그림이다. 내 옷에는 유난히 해골 그림이 많다. 특정 브랜드의 옷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알마니를 입는다는 것은 알마니의 사상에 동조한다는 뜻이다’라는 명제가 진실이라면 나는 그 브랜드의 사상에 동조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고 물론 내가 ‘난 너의 패션에 대한 사상이 마음에 들어’라고 말하며 그 옷들을 사지는 않았다. 그런데 진짜 왜 샀을까? 그냥 끌려서 샀을 것이다. 사다 보니 많아졌고 집안 곳곳에 해골들이 굴러다니고 걸어 다니게 됐다.

해골들이 걸어 다니는 시간의 집…어떤가. 이쯤이면 데미언 허스트도 팀 버튼도 탐낼만한 스토리 아닌가. 아니면 집값 떨어지는 소리인가. 아무래도 좋다. 나는 너이기도 하지만 나나 너나 또한 해골이기도 하거늘… 또 한 해가 간다. 늘 승자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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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S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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