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8 : 광고와 문화 -유행에 앞서가는 광고vs유행에 편승하는 광고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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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앞서가는 광고 vs. 유행에 편승하는 광고
  이 상 민 I 굿데이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marineboy@hot.co.kr

 
 
광고는 어렵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렇듯 나도 우리 회사에서 광고를 담당하고 있지만 광고만을 전담하지는 않는다. 방송과 관련된 일들을 취재해 기사를 쓰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주 임무이고, 1주일에 한차례 광고면을 막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내게는 광고와 관련된 전문지식이 없다. 왜 스스로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비난한다면 한참은 머리를 굴려봐야 뚜렷한 변명거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렇듯 광고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이 없기에 광고의 흐름을 통시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각도 없고, 따라서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각과 눈높이에서 광고를 느낀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 원인이야 나의 게으름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광고는 어렵다. 제법 10개월 가까이 광고담당을 하고 있지만 광고의 트렌드와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화로서의 도도한 흐름을 통시적으로 읽어낼 능력이 내겐 없다. 이런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것이 ‘프로의식’으로 중무장한 ‘광고쟁이’들이 쏟아낼 비난의 예봉을 조금이나마 무디게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광고는 사회의 창, 광고를 보면 세상도 보인다
광고에는 세상이 녹아 있다. 그런점 때문에 나는 ‘광고쟁이’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30초라는 ‘찰나’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안다.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이면서도 사회의 단면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그래서 광고 일을 하는 사람을 ‘우뇌’가 극단적으로 발달한 영화 속 외계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해 놓고선 혼자 낄낄거린 적도 있다.
물론 광고 제작자나 홍보 담당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지금은 이런 상상은 하지 않는다. 광고 담당 기자로 활동하다 보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광고 제작자들을 만날 기회가 가끔 있는데,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은 천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고뇌하는 노력가들이요, 자그마한 일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신의 일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철저한 프로들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광고인들을 보면서 ‘모르모트(marmotte)’를 종종 떠올린다. 수심과 산소의 잔량을 기계적으로 체크할 수 없었던 1세대 잠수함에서 온몸으로 그 일을 대신했던 모르모트 말이다.
광고는 언제나 유행을 앞서간다.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물론 변화의 초기에 갖게 되는 막연한 느낌이나 현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준다. 한 예로, 사회가 핵가족화·서구화되면서 나타난 성 역할의 변화도 광고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지 않은가.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비교적 봉건적인 편이다. 더군다나 30대 중반을 넘은 나이 탓에 가정에서는 옛날 우리 아버지들 같은 가부장적인 모습이었다. 신세대들의 달라진 생활상이나 가정생활을 접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내게 그것을 엿보게 해주는 것이 광고다. 그래서 아내와 광고를 보다 보면 핀잔을 당하기 일쑤다. 가사를 분담하고, 자주 사랑을 표현하는 광고 속 남편들의 모습은 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곁에서 끊임없이 “요즘 남편은 다들 저렇게 한다”고 주지시키면서 내가 달라지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뿐이랴. “요즘 어떤 카드회사의 광고가 좋더라”며, 기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미명(?)하에 나에게 광고 속 남성상을 슬쩍 주입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최근 아내의 손에 이끌려 본 광고들은 하도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그러면서 겉으론 “남자가 저게 뭐야”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만,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 건 아닌지 혼자 고민에 빠진 적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광고 속 부드러운 남자들의 영향으로 요즘엔 가끔 집에 꽃다발을 사들고 들어가는 ‘파격’으로 아내를 감동시키는 기교있는 남자로 탈바꿈했다. 일은 물론 가정에도 충실한 모습이 보수적인 나에게도 나쁘게 비치지 않았기에 늦은 감이 있지만 변화를 감행한 것이다.
기업 마인드 돋보이는 카드 광고 눈에 띄어
카드시장과 증권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자아를 실현해 가는 선남선녀들이 등장하는 광고도 많아졌다. 개발시대를 살던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젊은이들에게 내재된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를 정확히 꿰뚫은 이런 광고들은 제품 선전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우리들의 삶도 바꾸어 놓았다. 더불어 성공한 남자나 커리어우먼에 대한 기준도 바꾸어 놓았다. 마치 그 제품을 사용하기만 하면 삶의 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 같은 착각까지 심어놓은 것은, 어쩌면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무분별한 카드사용으로 인한 범죄 증가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관련 광고들이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광고의 위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수용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광고만큼 짧은 시간에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논리적인 전개가 생략되기에 극단적인 환상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그러나 파생된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최근 선보인 LG카드의 ‘신용카드 바르게 사용하기’ 캠페인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카드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책임지려 하는 자세가 좋고, 사회에 대한 기업의 의무를 다하려는 기업 마인드가 좋다. 배용준과 이영애라는 톱모델을 내세운 이번 광고는 제도 개선이나 거창한 캠페인보다도 계도효과가 더 클 것이라 확신한다. 이렇듯 나는 광고를 보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회 구석구석에 대한 대리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그 광고가 그 광고’, 월드컵 광고 유감
2002년 6월, 한국의 가장 큰 화두는 월드컵이었다. 광고계의 화두도 당연히 월드컵이었다. 한반도 전체가 온통 월드컵과 한국 축구대표팀 얘기로 떠들썩한데, 발 빠른 광고쟁이들이 그런 호재를 그냥 지나칠리 만무였다. 그래서 최근의 광고 속에는 월드컵 열기가 그대로 녹아 있다.
월드컵이 시작되고 한국이 4강에 진출하면서 ‘레드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지만 나는 훨씬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할 수 있었다. 월드컵은 다가오고 붐은 일지 않아 정부와 주최측이 노심초사하던 4~5월에 이미 뜨거운 월드컵 열기를 어느 정도 예감했던 것이다. 점쟁이도 아닌 나에게 이런 예지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광고였다. 그러니 광고를 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가.
월드컵 개막 즈음, TV는 물론 신문과 잡지에는 월드컵 관련 광고가 쏟아지고 있었다. 봇물처럼 넘쳐 나는 광고가 장차 용광로처럼 타오를 월드컵 열기를 웅변하고 있었다. 그 정도의 물량이면 없던 붐도 조성될 게 분명했고, 상업성으로 똘똘 무장한 광고업계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만한 물량을 쏟아 부을리 없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섰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예지력이라기보다는 광고계에 대한 맹신이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듯하다.
이제는 히딩크 감독과 축구 국가대표선수는 물론 ‘12번째 선수’인 붉은 악마가 등장하지 않는 광고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발 빠르고 이색적인 광고가 가끔 눈에 띄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광고들이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고 ‘신화’를 이룩한 감독과 선수들을 앞세워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는 비슷비슷한 내용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내용의 그 수많은 광고들을 접하는 소비자들이 과연 광고를 하는 기업이나 제품의 이름이나 기억할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아무런 특색 없는 광고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수용자들은 아예 그것들을 차별화할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광고가 존재하는 토양인 상업성이 완전히 고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청난 돈을 들여 광고를 제작하고 굳이 방송까지 해야 할 최소한의 이유도 없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제품 광고는 없고, 거대한 공익광고만이 존재한다’고 표현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크리에이티브의 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기에, 등장인물의 중복은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같은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제품에 따른 차별화는 있어야 한다. 최고의 빅모델인 ‘태극전사’들을 앞세운 광고가 히트를 치면 너도나도 그들을 끌어다가 비슷한 분위기의 광고를 만들어내는 해묵은 악습이 광고 효과는커녕 서로의 존재가치를 희석하는 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뭐가 하나 잘 되면 앞 다투어 따라 하다 보니 모두가 독특함이 없는 천편일률적인 광고가 되어버리고, 이런 몰개성화는 끝내 광고계의 공멸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오는 악순환만 불러올 것이다.
감성에 호소하는 월드컵 광고가 쏟아지다 보니 예전부터 봐왔으면서도 월드컵을 소재로 하지 않은 광고가 오히려 신선하고 특색있게 보일 정도다. 20년 가까이 자신만의 색깔을 지켜온 어느 식품 광고가 더욱 돋보이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의 광고는 그게 그것이라 도무지 구분이 안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독창적인 광고라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설사 독창적인 광고가 한두편 있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평범한 것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우리네 광고계의 풍토가 그런 독특함을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모방 천국’이란 오명을 벗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은 반드시 뿌리 뽑혀야 할 악성범죄다. 광고인들이 ‘하향 평준화’의 망령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분위기가 하루빨리 조성됐으면 한다.
더불어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광고의 모호성도 개선되었으면 한다. 지나치게 제품의 선전에만 열을 올린 광고도 식상하지만, 광고하려는 제품 자체가 모호한 것도 정상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월드컵과 함께 국가인지도가 높아져 수출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수출되는 제품과 함께 우리 광고도 지구촌 곳곳에서 전파를 탈 것이다.
세계를 품는 큰 행사를 치렀던 만큼 우리의 안목도 이제 세계를 품어야 한다. 광고도 한국인들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세계를 대상으로 한 합리적이면서도 기발한 것으로 발전돼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창의성은 기본이고, ‘만국 공통어’인 유머와 재치를 적절히 녹여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머와 재치의 수용이 우리 것의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번뜩이는 유머와 재치로 포장된 그 안의 내용물에는 우리 고유의 정과 한이 도도히 흐르는 한국적인 광고가 되어야 한다.
오대양 육대주에 낯익은 우리 모델을 앞세 운 우리의 광고가 방영되는 장면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이국 땅 조그마한 마을을 여행하다 멋스러운 우리 광고와 마주친다면 그 반가움은 또 얼마나 크겠는가.
월드컵은 끝났다.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광고들에 대한 기다림으로 나의 가슴은 벌써 두방망이질 친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