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열전 #01. 황보현 CCO-논리가 궁극에 닿는 순간 창의가 열린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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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 하면 떠오르는 광고 캠페인이 있습니다. 정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배경에, 엉뚱한 카피로 호평을 받은 SSG닷컴의 쓱 광고 캠페인인데요. ‘CD(Creative Director)열전’ 첫 번째 주인공은 쉽게 연결되지 않는, 전혀 다른 대상들의 파격적인 결합으로 강한 임팩트를 남긴 쓱 광고 캠페인 제작을 총괄 지휘한 HS애드 황보현 CCO(Chief Creative Officer: 최고 창의력 책임자)입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사람, 황보현 CCO를 만나 아이디어 그리고 창의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나를 키운 8할은 ‘절박함’

황보현 CCO가 제작 총괄한 광고 캠페인들은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습니다. 쓱 이전에도 여러 편의 광고 캠페인으로 주목을 받았는데요. 브랜드 이름만 들어도 금세 광고가 떠올려집니다.


▲대한항공 취항지 캠페인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예로,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이라는 광고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한항공 취항지 캠페인이 있습니다. 흔한 항공사 광고처럼 승무원 등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대한항공을 타고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들죠. 배달의민족 광고 캠페인도 강렬한 인상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 회자됐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여전히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광고 캠페인들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황보현 CCO의 첫 대답은 ‘절박함’이었습니다. 의외였는데요.

“돌이켜보면 남들처럼 ‘뭐가 되겠다’ 혹은 ‘어떻게 살아야지’하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았던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매 순간 절박하고 결핍을 느끼는 적이 많았습니다. 초조와 불안이 창의성의 첫걸음이죠.”


인포메이션보다 임프레션을 주는 광고

황보현 CCO는 좋은 아이디어에 이르는 핵심은 깊은 사색과 엉뚱한 상상이라고 정의합니다.

“페르시아 속담에 ‘문제를 풀고 싶으면 곰팡내 나는 책을 덮고, 네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어요. 지식 그 자체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침잠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요즘 구글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다 있잖아요? 이런 시대에 지식을 암기시키고 4개 문항 중에 맞고 틀린 것을 골라내게 하는 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오히려 세상에 이미 널린 정보를 어떻게 나만의 생각과 시각으로 새롭게 엮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발견했다면 다음 순서는 좋은 광고를 만드는 일입니다. 황보현에게 좋은 광고란 무엇일까요?

“개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는 좋은 광고, 나쁜 광고는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목적한 바를 이뤘는지에 따라 성공한 광고, 실패한 광고로 갈라보는 게 맞겠죠. 그래도 굳이 좋은 광고를 묻는다면, 인포메이션(information, 정보) 전달을 넘어 임프레션(impression,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광고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변하고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크리에이티브의 역할도 변했습니다. 4대 매체 시절에는 사람들이 광고를 회피하지 않게 하는 정도의 소극적 역할이었다면 SNS 시대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광고를 찾아보게 하고, '좋아요'를 누르게 하고, 퍼 나르고, 소문내게 하는 적극적인 역할까지 크리에이티브가 해야 합니다.”


창의가 열리는 순간, 궁리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광고 속에서 ‘임프레션’을 남기려면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창의성인데요. 황보현 CCO가 평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역시 ‘어떻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대답은 심플한 두 글자, ‘궁리’입니다.


“창의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궁리’의 한자 뜻을 깨닫고 놀란 적이 있어요. 다할 '궁(窮)’에 이치 '리(理)’를 쓰더라고요. 논리로 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끝까지 다 가본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막힐 때가 있거든요. ‘아, 이게 내 한계야’, ‘천재는 따로 있구나’ 싶은 그 막다른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궁리를 계속해야죠. 그 궁리의 고통 끝에 불현듯 창의가 나옵니다. 양의 변화가 질의 변화를 촉발하는 거죠.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이고요. 흔히 논리와 창의는 방향성 자체가 다른 거로 생각하는데 저는 단지 사색 양의 차이일 뿐이라고 봅니다. 결국, 논리와 창의 그 사이에 궁리가 있는 거죠.”

황보현 CCO는 이 과정을 명상 혹은 종교적 수행에 비유했는데요. 자기 속으로 침잠해 궁리 끝에 창의를 발견하는 묘미, 황보현 CCO가 광고의 모든 과정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자 광고를 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창의를 가속하는 힘, 삐딱함

또 한가지, 창의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삐딱함인데요. 삐딱함은 아이디어 발상의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황보현 CCO는 창의에 이르는 과정이 생각의 양에 관한 문제였다면 삐딱함은 생각의 방향성을 결정해준다고 말합니다.

“삐딱함이 중요한 이유는 질문할 수 있는 힘, 남들과 다르게 사안을 보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삐딱함은 모든 당연한 것, 주어진 것에 대한 의심입니다. 혁신은 주어진 틀 안에서 이미 있는 정답을 찾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판을 뒤집는, 틀을 깨는 엉뚱한 질문을 할 때 혁신이 시작되죠. 패턴을 잘 읽어서 다음에 나올 패턴을 맞춰내는 게 아니라 그 패턴을 부숴버리는 거죠.”


생소한 연결로 0.1%에 서라!

궁리와 삐딱함과 더불어 창의적인 생각을 위한 조건이 있는데요. ‘생소한 연결’입니다. 그간 황보현 CCO가 기획, 제작한 캠페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낯선 것들의 엉뚱한 조합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황보현 CCO는 창의성의 정도는 연결하려는 소재 간의 거리에 비례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멀리 떨어진 것들을 융합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얘기인데요. 최근에 방영돼 여러 광고제의 상을 휩쓸었던 ‘쓱’ 광고 캠페인이 좋은 예입니다.


“처음에는 두 개의 콘티였어요. 고급스러운 그림에 다소 일반적인 카피가 있는 콘티와, 일상형의 그림에 아주 저렴한 카피가 있는 콘티. 이 광고 캠페인에서 제가 했던 일은 딱 하나였어요. 고급스러운 그림에 병맛 카피를 붙여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임팩트가 훨씬 강해졌죠. 하지만 냉정한 현실을 얘기하면, 정말 엉뚱한 것을 열심히 융합해도 99.9%는 실패합니다. 그래도 그 엉뚱함이 무서운 건 그 나머지인 0.1%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숨어있다는 사실입니다.”

황보현 CCO는 30년간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절박함을 가지고 0.1%에 섰습니다. 안전한 99.9%에 서는 방법도 있었지만, 실패를 무릅쓰고 세상을 바꿔보고 싶어 0.1%의 모험을 시도했는데요.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CCO로서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크리에이티브 팀들이 실패할 수 있도록 돕는 거라고 생각해요. 창의적이고 대담한 실패는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려하고 대신 책임을 져줘야 한다고.”


세상이 변해도 창의성은 영원하다

이제 광고를 업으로 삼은 지 30년을 맞는 황보현 CCO. 처음 시작했던 그때처럼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절박함은 여전합니다. 광고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습니다.


“IoT, 빅데이터, 4차산업혁명 등 모든 것들이 AI(인공지능)로 귀결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AI는 인간의 존재 양식까지 바꿀 정도로 큰 사안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모두는 역사의 어느 시대에도 겪어본 적이 없는 빠르고 거대한 변화에 마주할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AI가 만든 광고가, AI가 쓴 카피가 집행되고 있죠.

하지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아직은 인공지능의 창의성은 빅데이터로 패턴을 읽어 그다음 패턴을 예측하는 정도입니다. 성격이 삐딱한 컴퓨터라거나 질투심을 갖는 컴퓨터 이런 것은 아직 상상하기가 힘들잖아요. 반면, 불완전하고 삐딱하고 절박함을 느끼는 인간의 창의성은 패턴을 잘 살펴본 후에 그 패턴을 부수고 그 위에 새로운 패턴을 창조하는 정도의 disruptive 한 것이죠. 그래서 매체가, 기법이, 상품이, 타깃이 달라지더라도, 광고의 본질이고 우리 인간의 본질인 창조, 창의성은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황보현 CCO는 30년간 종이와 연필 하나 놓고 이 궁리, 저 궁리만 하며 살았다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논리의 궁극을 경험하며 온전히 의식의 근원을 묻고 답한 30년은 삶 자체가 창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변함없이 궁리의 끝, 창의에서 발현된 신선한 광고로 우리의 뇌를 자극해주길 응원하고 기대하겠습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