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이었던 1999년, 루이스 브뉘엘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란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영화의 제작연도는 1977년이지만 국내까지 오는데 22년이나 걸린 작품입니다. 오래된 작품답지 않게 영화는 꽤 신선하고 재미있는데요. 마티유라는 중년의 남자가 콘치타라는 하녀에게 벌거벗은 사랑을 구걸하는 대강의 내용인데, 남성의 성적 욕망을 매우 우스꽝스럽게 그렸다는 점에서 (홍상수 시대 이전 시점인) 당시만 해도 충격적인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 더 충격적이었던 점은 영화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쓸데없는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었죠.
▲ 출처: 영화 <욕망의 모호한 대상>
지금에야 다시 한 번 보면 일견 상징적 맥락의 하나로 간주할 만한 부분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거슬리는 건 남자 주인공이 종종 들고 있는 ‘포대자루’,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고 영화는 알듯 말듯한 감정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 포대자루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들었죠.
아무것도 아닌 것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tvN 드라마 '도깨비'의 PPL이 과도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는 듯 합니다. 밤 하늘 사이에 유일하게 떠 있는 특정 기업 네온 사인, 치킨집에 맞지 않는 과즙 음료, 유럽풍을 아우르는 오래된 취향에도 인스턴트 커피를 즐기는 주인공 등에 대한 이야기들 입니다.
▲ 출처: tvN 드라마 <도깨비>
이러한 PPL들이 스토리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했던 '욕망의 모호한 대상' 속 포대자루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차이점은 맥거핀이라는 개념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맥거핀’의 뜻은 히치콕에서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한국에서 절판된 “히치콕과의 대화”라는 책에 나오는 개념으로 한 사례를 통해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맥거핀은 서스펜스의 대가로 알려진 히치콕이 극의 전개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뻔한 추리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입니다. 이후 많은 영화에서 일반화된 맥거핀은 서스펜스 장르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극 영화에서도 관객의 섣부른 결말 예측을 벗어나게 만드는 작용을 해왔는데요.
앞서 ‘욕망의 모호한 대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중적인 성격의 여주인공 캐릭터를 보다 예측할 수 없도록 “의미 없을 듯, 의미 있는 사물들”을 배치하며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물한 것이죠.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비록 극의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누군가에게는 극의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인 셈입니다.
콘텐츠 속 미친 존재감, PPL
광고의 자극은 대부분 시각으로 시작해서 시각으로 끝납니다. 때문에 시각의 극대화를 위한 노력은 역사적으로 채색의 시대, 번쩍거림의 시대, 장초수의 시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최근에는 광고에 할애된 시간만으로는 부족해서, 직접 콘텐츠 안으로 들어가 광고로서 존재감을 자랑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PPL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존재감 자체가 극의 전개에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무리수가 되기도 합니다.
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매년 발간되는 “방송통신광고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간접 협찬 광고 예산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케이블TV를 중심으로 매년 성장해왔습니다. 특히 최근 3년간 2배 가량 성장하면서 지상파보다도 꽤 큰 격차를 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성장세라고 하면 PPL은 극의 대부분을 차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PPL은 제한된 제작 예산을 확장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으니 반대만 할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드라마에서 PPL은 진행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그러나 수익에 너무 집중한 채 주객이 전도되어 극의 재미를 줄 수 있는 소재들을 브랜드의 PPL로 채운다면 소소한 재미들이 모두 소거된 아쉬운 작품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측 가능성이 큰 작품은 주인공에 대한 팬덤으로 의존하기 마련이고 이제 겨우 자리 잡기 시작한 작가들의 개성을 소거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죠. 몇몇 기대됐던 작품들이 이런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PPL의 최소 역할은 앞서 설명한 맥거핀이라고 봅니다. 극의 흐름에서 브랜드를 부각하고 기능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영화 속 맥거핀처럼 별개의 장치로서 가급적 은유적인 표현 방식이어야 하는데요. PPL에서 과거 일반 광고의 노출 효과를 기대하는 조바심은 장기적으로 시청자의 반발심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좋은 작품의 탄생과 꾸준한 PPL 시장 성장, 광고 효과 증진은 모두 같은 얘기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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