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思. 누구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가, 망자를 위한 음식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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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思. 누구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가, 망자를 위한 음식


최근 한 드라마를 통해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저도 결제까지 해가며 드라마를 정주행했습니다만 요리에 관심이 있다 보니 그들이 먹던 음식에 눈이 가더군요.

남자 주인공인 도깨비는 원래 그들이 좋아한다던 메밀묵이나 시루떡이 아닌 로즈마리를 올려 구운 스테이크만 먹습니다. 반면 맛있는 음식으로 명부의 수명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인간에게 대접받기 좋아하던 저승사자는 스스로 만든 샐러드만을 먹습니다. 귀신도 등장하는데 여자 주인공의 집을 갑자기 찾아와 식스센스급 반전을 선보인 이모의 원혼은 대뜸 배고프니 밥을 차리라고 산 사람을 타박하기도 합니다.


원혼이나 사람이 아닌 신들도 배가 고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들이 제물을 받아먹는 흠향(歆饗)의 문화는 있습니다. 그리고 동양의 귀신들 중에 이승에서 음식을 빌어먹다 죽은 구걸귀(求乞鬼)나 탐욕이 많은 아귀(餓鬼) 같은 것이 있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은 죽은 자들도 허기를 느낀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옛사람들 중에서도 귀신이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귀신들이 배가 고플 리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송대 유학자인 주희(1130~1200)의 어록 모음집인 주자어류에도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더군요.


Q. 제자: 천지 산천에 제사 지낼 때 희생·제물·술·감주를 쓰는 것은 단지 내 마음의 정성을 표시하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로 응감하는 기가 있기 때문입니까?

A. 주희: 만약 와서 흠향하는 존재가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엇을 제사 지낸단 말인가?

현대에 와서는 종교, 핵가족화 등을 이유로 조상신을 대접하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제사 횟수나 가구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집들이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조상들의 혼이 후손들이 올린 술과 과포를 흠향하면서 제사 현장에 존재한다고 믿는데 집의 대문과 현관문을 열어두는 것도 조상의 혼을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조상신 이외에도 잡귀들을 헌식(獻食) 하기 위해 대문 밖에 음식을 내놓기도 하는데 주거형태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최근에는 많이 준 모양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요즘 사람들도 아직까지는 망자들 또한 충분히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비유교권 문화가 망자를 대접하는 방법

食思. 누구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가, 망자를 위한 음식

멕시코에는 11월 1일부터 2일까지 열리는 ‘죽은 자의 날 (Día de Muertos)‘이라는 축제가 있습니다. 이 날은 죽은 자들이 일 년에 한 번 이승의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찾아오는 날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고인을 위해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인 타말과 엔칠라다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올리고 묘지를 찾아 떠들썩하게 밤을 보냅니다.

첫째 날은 ‘어린 영혼을 위한 날’로 초콜릿 해골 사탕이나 특별히 준비한 ‘죽은 자의 빵’ 등을 바치고 둘째 날은 ‘어른 영혼을 위한 날’로 고인이 생전에 즐겨 마시던 술과 담배 등을 바친다고 합니다. 얼마 전 TV에서 고대 멕시코인들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맥이족이라 주장하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유교 이전의 샤머니즘 혹은 토테미즘에서 유래한 우리 민족만의 문화가 그들의 축제 문화와 만나 시끌벅적한 페스티벌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럼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서양은 어떨까요? 기본적으로 성경은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말라 하였고 죽은 자에게 제사 한 음식을 먹지 말라 하고 있습니다. 17세기 예수회가 중국에서 포교활동을 할 때도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이 조상과 공자에 대한 제사의 용인 문제였을 정도로 예부터 기독교 문화에서는 죽은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리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들 관점에서 보면 죽은 이들을 위한 제사가 일종의 우상숭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과 똑같이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는 존재로 그려지며 인간들은 신들에게 음식과 제물을 바쳤습니다. 인간의 제물 외에도 신들은 '암브로시아'(Ambrosia)와 '넥타르'(Nectar)를 먹어 늙지 않고 영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관(神觀)인 신인동태론(신과 인간은 외형과 속성에서 동일하고 신은 영생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에 비쳐보면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神과 우리의 神은 조금 다른 개념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죽은 자를 기리는 문화가 사뭇 다릅니다. 이들도 제사와 비슷한 것이 있지만 우리처럼 음식을 거하게 차리거나 하진 않고 분묘를 찾아 간단히 제를 드리고 근처 식당에서 가족들끼리 망자를 추억하며 식사를 하는 정도입니다. 망자를 위해 음식을 차리는 문화는 없지만 일본의 설화에도 뿔 달린 도깨비인 오니(鬼)나 각종 요괴들이 먹성 좋게 나오는 것을 보면 그들 또한 영적인 존재도 배가 고프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이들을 위한 헛제삿밥

조상님들도 대거 홈커밍 하셨을 설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저희 큰집도 제사를 지냅니다만 최근 몇 년간 종교적인 이유로 제를 드리는 구성원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밥과 탕을 중심으로 차려지는 제사 음식은 변하지 않았더군요.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데 전라도는 병어 혹은 홍어를, 경상도는 상어고기인 돔배기를, 경북에서는 문어를, 안동에서는 식혜를, 제주도에서는 파인애플, 귤 등의 과일이 올라갑니다. 저희는 문어를 올리는데 최근 들어 피자나 치킨 등 흠향하는 조상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집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칙적인 상차림을 고집하기보다는 조상을 모시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기에 치킨이나 피자도 기본 상차림에 더한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사를 지낸 후에는 음복 시 밥을 나물에 비벼 비빔밥 형태로 먹는데 저는 이 제삿밥이 너무나 맛있었습니다. 요즘 관점에서 보면 꽤나 웰빙음식인데 일반 비빔밥과는 다른 점은 고추장이 아닌 간장으로 맛을 낸다는 것 그리고 마늘, 파, 고춧가루 등의 자극적인 양념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추석과 설, 일 년에 두 번은 빠지지 않고 제삿밥을 먹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은 웬만해선 먹을 기회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안동에는 ‘헛제삿밥‘을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종교를 떠나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헛제삿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대로 된 헛제삿밥을 차리려면 고기와 무로 끓인 탕국도 필요하고 굴비나 전도 부쳐야 하나 오늘은 저희 집 기준의 간단한 비빔밥 레시피만 소개할게요.


지금과 같은 제사문화가 얼마나 유지될지 알 수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저는 제사를 지내고자 합니다. 단, 제가 제사상을 차린다면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너무 깐깐하게 따지기 보다 평소 어르신들이 즐겨드셨던 음식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제가 먼 훗날 흠향하는 쪽이라면 제가 평소 좋아하던 이태리식 화덕 피자와 참치 뱃살 좀 넉넉히 올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후손에게 얻어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다보니 저희 부모님이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40 넘게 거의 매일 얼굴 뵈면서 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오늘 저녁, 부모님을 뵈면 가장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주말에 대접해 드려야겠습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