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궁서체로 된 콘텐츠를 진지하게 읽는 것처럼, 폰트가 콘텐츠의 내용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기업과 브랜드 역시 무료폰트를 개발하고 배포하는 일이 많아졌는데요. 기업은 폰트로 소비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요? 오늘은 대표적인 두 기업이 폰트를 통해 어떻게 마음을 전하며, 이를 통해 어떤 브랜드 철학을 전달하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업 정신을 자음과 모음에 담아내다 <빙그레의 빙그레체> 무료폰트
바나나 우유 전체 판매량 중 약 8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모든 경쟁사를 압도하는 제품이 바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입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가 시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했는데요. 사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1988년 뿐만 아니라 1982년부터 지금까지 시대를 아우르며 꾸준히 사랑받는 제품이었습니다. 아마 남녀노소 누구나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와 얽힌 추억 하나 정도는 꼭 있을 거예요.
빙그레는 2016년 10월 6일부터 한글날을 기념한 자사의 한글 글꼴 ‘빙그레체’를 일반인에게 무료폰트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빙그레체는 ‘건강, 행복, 미소’라는 기업의 이념과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의 글자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폰트입니다. 어린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담은 곡선과 모서리의 라운드 디자인 덕에, 빙그레체는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죠.
빙그레체가 다른 기업 폰트 사이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한글의 창제 원리에 근접해 있는 폰트라는 점입니다. ’빙그레’라는 순 한글 회사명처럼, ‘ㅊ, ㅎ’의 세운 꼭지와 ‘ㅈ, ㅊ’ 등의 3획 형태를 훈민정음을 분석해 글꼴을 구성했다고 하는데요. 초성과 중성, 종성을 분리해 가독성을 높인 점도 자랑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폰트를 통해 ‘배민다움’을 널리 퍼뜨리자 <우아한형제들의 ‘배민체> 무료폰트
▲출처 : 우아한형제들 홈페이지 캡처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젤 이뻐
느끼한 류승용의 손 화살 옆을 채우고 있는 이 텍스트를 한 번쯤 보신 분들 있죠? 한국 최고의 스마트폰 배달 앱 <배달의민족> 제작사 ‘우아한형제들’은 아마 가장 많은 무료폰트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일 겁니다. 김봉진 대표의 두 딸 이름을 붙인 ‘한나는열한살체’와 ‘주아체’를 비롯해 ‘도현체’와 ‘연성 체’ 등 총 4종의 ‘배민체’ 폰트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어요.
한나는열한살체는 60~70년대 간판을 모티브로 개발한 폰트로 이전에 배포했던 ‘한나체’의 자간과 글자 폭 문제를 개선한 버전입니다. 규칙성이 없고 일부러 약간 균형이 틀어진 듯 디자인한 것이 한나는열한살체의 매력이죠. 좀 더 매끈하고 일정하게 수정하고 싶은 폰트 디자이너들의 욕심을 자제하는 것이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해요.
주아체 역시 레트로한 느낌의 폰트로, 붓으로 직접 그린 손 글씨 간판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했다고 하는데요.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마감의 주아 체 폰트를 보고 있자면 귀엽고 정겨운 아이 ‘주아’가 엄마에게 남기는 쪽지를 보는 듯한 흐뭇함이 들기까지 합니다.
▲출처: ‘우아한형제들’ 홈페이지
도현체와 연성체는 제비뽑기로 당첨된 ‘우아한형제들’ 직원의 자녀 이름을 붙인 폰트에요. 도현체 역시 70~80년대의 키치적인 간판을 모티브로 디자인했고, 뒤에 오는 모음에 따라 자음의 디자인이 바뀌는 ‘자동 대체 글립’을 적용했다고 하네요.
※자동 대체 글립이란? 자음 뒤에 어떤 모음이 오느냐에 따라 자음의 형태가 자동으로 바뀌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것
연성체는 ‘제주도 호박엿’ 가판대 문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폰트로 일정하지 않은 손 글씨 특유의 리듬감과 꺾어진 획에서 작은 웃음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우아한형제들’의 배민체는 ‘우아하게 일하자’ 기업문화를 홍보하는 자연스러운 도구인 동시에 수많은 사람의 라이센스 걱정을 덜어주는 훌륭한 무료폰트가 되었습니다. 창작물에서 좀 더 자유롭게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한글문화를 발전시키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무료폰트 배포를 통해 기업의 브랜드가 얻을 수 있는 것들
빙그레와 우아한형제들 외에도 수많은 기업이 자신들만의 기업 폰트를 제작합니다. 이렇게 만들어 배포한 폰트는 기업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 줄까요?
▲출처 : 현대카드 홈페이지 캡처
가장 큰 효과는 대중에게 일관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과 고객의 접점인 사이트와 각종 홍보 채널, 콘텐츠에 같은 폰트를 이용한다면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정체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요. 국내에서 최초로 자체 개발된 전용 폰트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현대라이프 4사의 통합 서체인 ‘유앤아이체’ 입니다.
▲출처 : 배민 문방구 홈페이지
모바일 환경에서 기업 폰트는 더욱 빛이 납니다. ‘배민체’나 ‘빙그레체’처럼 개성이 강한 폰트를 적용한 콘텐츠가 모바일에서 눈에 확 들어오기 쉬우니까요. 특히 라이센스 제한도 없는 데다 아기자기한 성격이 돋보이는 한나는열한살체와 주아체는 기업은 물론 개인 사용자들까지 사랑하는 폰트로 인기몰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업 폰트 자체가 훌륭한 바이럴 도구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키치적인 유머가 매력적인 배민체 4종은 모두 100만 건이 넘을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는데요. 인터넷/모바일 환경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죠.
공공재 역할을 하는 기업 폰트를 통한 브랜드 홍보
잘 만든 폰트는 대중에게도 좋은 공공재가 됩니다. 기업들이 계속 배민체 4종과 빙그레체 같은 좋은 폰트를 내놓게 되면, 모든 국민이 라이센스 걱정 없이 다양한 폰트를 쓸 수 있게 될 거에요. 또한, 빙그레체처럼 한글 원리가 포함된 폰트라면 한글에 대한 기본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교육 자료로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대중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통해 기업의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차별화된 브랜드로 각인 시켜주는 것이야 말로 서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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