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04 : M세대 리포트 - 삶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필요한 건자기 기획력

삶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필요한 건 자기 기획력

조 예 정 대리 I CR2본부  yjcho@lgad.lg.co.kr

연세대학교 청년문화센터가 서울시에게서 위탁 받아 운영하고 있는 ‘하자센터’의 공식명칭은 ‘서울시립 청소년 직업체험센터’다. 하지만 그 안의 아이들은 그곳을 그냥 ‘하자’라 부른다. 그들의 생각과 활동도 그 이름을 많이 닮아 있다. 형식적인 것들, 권위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자신이 막연히 꿈꾸고 상상해왔던 것들을 직접 해냄으로써 환상과 두려움의 군더더기들을 버리고 알짜배기 경험들을 쌓아 간다. 그곳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전형적인 10대 청소년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결코 체험해 보지 못할 많은 것들을 직접 경험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하자의 학생들 대부분은 현재 정규 학교에 다니고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대안학교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죽돌’이라 불리는 일부 아이들은 학교를 포기하고 아예 하자센터에서, 말 그대로 죽치고 산다. 하자 측은 정규교육을 거부하면서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일이 과연 옳은 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일단 보류해 놓은 상태다. 다만 한 가지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하자에 빠져서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적응할 수 없어 거리로 내몰린 그들을 하자가 받아주고 인생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를 찾아가려는 아이들 하자의 모토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업그레이드 한다’이다. 별로 새롭지 않은 이 말이 대한민국에서 10대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에는 큰 울림을 준다. 제도의 틀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아이들이, 그들의 삶을 스스로, 그것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의지는 사뭇 제도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엄포처럼 들린다. 그러나 하자의 아이들은 전혀 공격적이거나 반항적이 아니다. 다만 그 나이 또래의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마음 속에 답답하게 쌓아두기만 하는 많은 것들을 직접 분출하고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조금은 더 용감한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자립심과 계획력, 실력과 판단력이 모두 포함된 ‘자기 기획력’만 있다면 앞으로도 뭐든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자의 아이들은 또 대학이란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며, 그를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자기 기획력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냥 학력에 따라 대학에 던져지고, 또 다른 차원의 갈등과 고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놀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한 ‘놀자’ 그냥 해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하자’ 하자에서 진행되는 모든 수업이나 프로그램들은 ‘프로젝트’라고 불린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하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이는 놀자 프로젝트와 하자 프로젝트로 나뉜다. 놀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면, 5개 작업장에 개설된 70여 가지의 프로젝트 중 관심 있는 곳에 참여하면 된다. 5개 작업장은 대중음악작업장·영상디자인작업장·웹디자인작업장·시각디자인작업장·시민문화작업장 등. 하자프로젝트는 놀자에 비해 조금 더 사회 전선에 가까운 프로젝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기 기획력과 관리력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소녀들의 페미니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여성운동가의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키워갈 수 있고, 10대 창업프로젝트 중에 ‘명함하자’에 동참하게 되면 디자인을 포함한 명함의 제작 단계부터 최종 판매 단계까지 명함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여행캠프를 떠나서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도 한다. 카이 홀맨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카이 홀맨의 하자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얼마 전 3박 4일로 다녀온 여행캠프가 그것이다. 이러한 캠프에서 하자의 아이들은 직접 스태프가 되어 하자 프로젝트에 처음 참여하는 많은 아이들을 돕는다. 이끌거나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전문가들과 성인 지도자들(판을 돌린다는 의미의 ‘판돌’이라 불리운다. 카이 홀맨 캐릭터가 이곳 디자인 판돌의 작품이다)이 있기는 하지만,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찾아다니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어 갈 수 없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하는 아이들이 왕왕 있다고 한다. 규율과 시간의 틀을 주고, 그 안에서 달성해야 할 과제를 받는 데에 익숙한 아이들은 갑자기 만난 자율 앞에서 당황하는 것이다. 하자의 아이들은 이런 현상을 나름대로 분석했는데, 그 답은 바로 ‘자기 기획력의 부재’, 아이들이 재차 강조하는 것은 ‘자기 기획력’을 키우면 세상은 그만큼 만만해진다는 것이다. “10년 단위로 재단되는 나이의 틀이 나의 인격과 능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자의 아이들은 말한다. 기성세대들의 편의대로 무슨무슨 세대로 10대들을 규정짓는 것이 싫다고. 10대들 중에도 컴맹이 있고 게임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고 문자 메시지에 관심없는 아이들도 있다고. 분명, 그런 아이들이 주류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군다나, 주류가 아니면 소외되는 아이들을 만드는 것은 바로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기성세대니 신세대니 하는 다양한 용어들을 만들어내면서 어떤 식으로든 경계선을 긋는 것은 바로 어른들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기성세대’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은 나이의 차이가 아니라, 뭐든지 이분법적으로 금을 갈라 내편 네편 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의 닫힌 생각에서 비롯되는 가치관의 차이인 것이다. 하자는 지금 영등포구 단 한곳만 있다. 다른 구에, 다른 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하자센터는 너무 멀다. 이 거리감은 비단 물리적인 거리 뿐은 아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하자의 문을 두드리기에는 아직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언급했던 카이 홀맨 프로젝트 같은 기회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하자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자센터도, 그리고 하자 아이들의 마음도, 그 밖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활짝 열려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