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마그리트 그림에 미친 영향
이 현 종
대표 CD - Chief Creative Director / jjongcd@hsad.co.kr
“화성엔 물이 없지. 왜 그런지 알아? 기압이 너무 약해 액체 상태로 머물러 있기 어렵기 때문이야. 만약에 우주복을 입지 않고 화성에 가면 몸이 불타 사라져버릴 걸. 혈액이 부글부글 끓어 기체로 날아가 버리면서 금세 온몸이 재가 되어버리겠지.”
반쯤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던 K가 잠시 창밖을 보는 순간, 오후 내내 침울했던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금세 굵어지기 시작했다.
차량들이 쏟아져 나올 시간은 아니었지만,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많아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것처럼 보였다.
K의 얘기 때문인지 빗줄기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게 보였다.
지구의 대기와 중력이 만들어 낸 저 귀한 액체들을 보고 있자니 감개무량하기까지 했다. 나는 한참 동안 지구라는 별에 막 도착한 외계별의 손님처럼 창밖을 관람했다. 비와 빛과 어둠이 묘하게 교차하며 밖은 어느새 현실세계라는 본분을 잊고 근미래로 시간이동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온 몸이 공기처럼 가벼워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른한 음악이 들렸는데…… 나는 그것이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일 거라고 확신했다. 음악은 계속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플루트 소리가 가냘프게 들리는 가 싶더니 갑자기 행진곡풍의 음악이 소음처럼 뒤섞였다. 계속 듣다가는 귀에서 피가 터져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찰나, 무언가 나를 엄청난 속도로 내동댕이쳤다. 그런데 아프기는커녕 이상하게도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지면 서 희뿌연 연기로 변해버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내 몸이 사라지다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하지만 눈물을 흘릴 시간도 없이 내 몸은 결국 형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런 게 죽음인가? 어쩌지. 내가 죽어버린 것인가. 가족들도 못 보고 왔는데…. 그런데 왜 의식은 이렇게 멀쩡하지. 이이는 사, 이삼은 육, 태정태세문단세……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도 그대로 떠올랐다. 간간이 전혀 모르는 얼굴도 떠오르긴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왠지 아는 것 같아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느덧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잃어버린 채 의식도 이젠 완전히 가동을 중지한 것 같았다. 간혹 가다 의식이 돌아오긴 했는데, 그때마다 옛날에 읽었던 책이나 영화의 장면들이 뒤섞여 기괴한 이미지로 등장하곤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주 가까이서 육중한 느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쓸모없는 인간들이 아직도 너무 많아.” 분을 못 이기겠다는 듯, 목소리의 손이 날아들더니 나를 거칠게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갑자기 거센 빗소리와 함께 비릿한 공기의 입자들이 밀려들어왔다. 생전 처음 본 자동차들이 빗 사이로 달리는 것도 보였다.“ 이 봐,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린데…. 눈을 반쯤 감은, 늘 졸린듯한, K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K는, K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키득 키득거리는 곳을 쏘아붙이듯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곳엔 K가 아니라 어이없게도 우산이 비를 맞으며 키득대고 있었다. 그럼 나도 K처럼 우산이 되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비는 그쳤지만 K는 계속 키득대기만 했다.“ 자, 나 먼저 올라갈게. 위에는 친구들이 많거든.” K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나도 하늘을 향해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 남자들이 우산을 하나씩 들고 유영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하기도 하고 날기도 하는 우산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 이 글은 알파고가 불러일으켰던 디스토피아적 우울을 모티브로 한 창작 콩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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