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0 : 도시와 장소와 미술은 만나야 한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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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장소와 미술은 만나야 한다


구 선 아

BTL프로모션팀 차장 / koosuna@hsad.co.kr





티브이 광고를 보다 보면 멋진 장소들이 자주 등장한다.

광고에 더 멋진 장소를 담기 위해 누군가는 오늘도 발바닥에 땀나게 돌아보고, 누군가는 손가락에 마비가 올 정도로 클릭을 하고, 또 어느 누군가는 티브이 속 광고를 보며 그곳에 가보기를 꿈꾸기도 할 것이다.



어떤 장소가 멋진 장소일까

고대의 시간을 간직한 장소, 천연의 자연풍경이 있는 장소,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있는 장소도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요즘은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도시의 한 곳이나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 등 참 멋진 곳들이 많아졌다.

인공적이기는 해도 사람과 사물, 사람과 건축, 혹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나오는 에너지가 그 장소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특히나 그 중에는 도시와 장소와 미술이 만나, 이벤트성 설치물로 꾸며지는 공간들이 유난히 많다. 이처럼 도시와 장소와 미술이 만난다면, 미술은 미술관이나 극장 등 갇힌 공간이 아닌 우리의 삶이 벌어지고 있는 모든 장소가 예술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에는 액자 속, 키오스크 속의 예술품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공간, 장소에 예술품을 선보이는 경향도 커졌다.



<뜻밖의 미술>

그래서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은‘ 미술관 밖으로 도망친 예술을 만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뜻밖의 미술>이라는 책이다. <뜻밖의 미술>은 2014년 가을 석촌호수에도 설치됐던 네덜란드 예술가 플로렌테인 호프만(Florenti_in Hofman)의 고무오리(Rubber Duck)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책으로, 플로렌테인 호프만이 책 서문을 쓰기도 했다.

고무오리는 2007년 탄생 후 프랑스 생나제르·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일본 오사카·호주 시드니·브라질 상파울로·홍콩 등 14개 도시를 여행한 후 한국에 설치한 것으로, 고무오리라는 오브제를 가지고 다른 장소에 설치된, 즉 장소특정적 설치예술품 사례라 할 수 있다.

<뜻밖의 미술>은 앞서 말한 공간과 장소에 예술품을 설치하는,즉 미술관 밖에서 벌어지는 예술들, 대부분 장소특정적 설치예술품에 대해 아티스트와 이미지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장소특정적 설치예술품’이란 예술품이 설치되는 장소에 따라 혹은 건축물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며, 책에는 한국 작가 3명을 포함해 58개의 아티스트(팀)와 약 86개의 프로젝트 및 작품이 수록돼 있다.



장소 site는 위치 location를 가리킨다. 그것은 지리적 특징은 물론 깊이, 길이, 무게, 높이, 형태, 벽 그리고 온도 같은 모든 특정한 물리적세부사항을 포괄한다. 위치에는 공적이면서 사적인 사회적 역사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런 것들은 종종 장소특정적 작품의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되곤 한다. 어떤 학자들은 ‘위치적 locational’이란 용어와 ‘장소 민감적 site-sensitive’이란 용어를 다른 것들보다 더 선호한다.

크리스천 L. 프록, <뜻밖의 미술> 서론



사실‘ 장소특정적’이라는 개념은 건축에서 더욱 밀접하게 사용하고 있다.

‘장소성(Sense of place)’이라는 용어로도 사용되는데, 건축과 학생들이 설계 과제를 하거나 건축가들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처음 하는 일이 주변 콘텍스트(Context) 분석이다. 이는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의 방향, 대지형태, 지형, 주변 대지와의 관계, 도로와의 관계, 역사적 맥락,주변 콘텐츠 등을 포함한다.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에 가장 적합하게 디자인하고 설계하기 위해 분석하는 것이다. 그 개념과 프로세스는 장소특정적 설치예술품과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나는 우선 해당 장소를 방문한다. 그럴 땐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장소의 역사, 인구 통계, 그곳에 사는 사람들, 건물들…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그 장소를 만들어낸다.

플로렌테인 호프만, <뜻밖의 미술> 서문



장소특정적인 건축물의 사례로는 건축가 이타미 준(Itami Jun)이,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물·바람·돌’을 주제로 주변 지형과 맥락을 고려해 건축물 자체가 예술품처럼 보이게 설계한‘ 물 미술관(Water Museum)’과‘ 바람 미술관(Wind Museum)’,‘ 돌 미술관(Stone Museum)’을 꼽을 수 있다.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이타미 준, <ITAMI JUN - Architecture and Urbanism 1970-2011>



다시 <뜻밖의 미술> 책으로 돌아와 보면, 이 책은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주요 작품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따른 간략한 설명문과 제작연도·재료·크기·무게 등의 캡션 정도가 구성돼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아티스트들의 약력이 소개된다.

약 86개의 다양한 작품과 프로젝트는 장소의 크기도, 형태도, 성향도,작품의 설치 방법도, 작품이 가진 메시지도 모두 다르다. 그 작품들 중에 내가 가장 끌리는 작품을 세 개 정도 꼽아보려 한다. 5,110㎡ 규모의 실내공간에 거대한 흰색 천과 관객들에 의해 움직이는 그네들이 설치돼 있고, 무게·소리·침묵이 공간 가득히 전달되게 하는 관객의‘ 공간적 경험’에 초점을 맞춘 앤 해밀턴(Ann Hamilton)의‘ 실의 이벤트(The event of a thread)’와, 4만 개의 색색의 비닐봉지를 가지고 가톨릭 성당으로 향하는 경사진 외부 계단에 민달팽이 두 마리를 설치해 종교·죽음·삶·자본주의 사회에 느리게 걸어가는 인간을 은유화해 메시지화한 플로렌테인 호프만의‘ 느린 달팽이 Slow Slugs’, 그리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하나의 회화작품처럼 보이는 입체공간을 시각적으로 평면화한 게르다 슈타이너(Gerda Steiner) & 외르그렌츨링거(Jörg Lenzlinger)의‘ 떨어지는 정원(Falling Garden)’ 등이다.

이들은 모두 사용법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주어진 공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소체험적’ 즐거움과 상상이 가득

예상하듯 이미지 위주의 책인지라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만, 그 안에 담긴 생기발랄한 작품들과 거기에서 파생돼 나오는 생각들은 좋은 아이디어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스탕달 신드롬을 일으킬만한 압도적인 예술적 아우라를 가지지는 않지만 예술이 건축과 장소와 함께 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감상적인 행위’가 아닌 직접‘ 경험하는 행위’가 주는, 참여와 행동에서 오는 장소체험적 쾌감을 상상해주길 바란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