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놓쳤을지도 모를 그 순간
신 숙 자
CD / sjshina@hsad.co.kr
생활 속에 아이디어가 있다고 합니다. 생활 속에서 나와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생활’이란 것은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죠. 그래서‘ 여행자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합니다. 여행은 다른 이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니, 밥 먹고 걷고 말하는 일상 그 모든 것이 눈에 보입니다. 낯설기 때문이죠.
프랑스의 유명 사진작가 윌리 호니스는‘ 아름다움은 길 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길거리를 뛰어가는 아이,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와 엄마, 시장의 사람들…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모든 일상이 아름답다는 거죠. 훌륭한 사진작가일수록 어떤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을 잡는 사진작가일수록‘ 따뜻한 시선’을 가졌다는 평을 듣기도 하고요.‘ 일상’이기에 누구나 쉽게 공감하기 때문이겠지요. 좋은 광고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놓쳤던 일상, 그 일상을 잘 잡아냈을 때 기막힌 광고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상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습니다.
기상 캐스터와 자동차 선루프의 상관관계
일기예보는 항상 정확하지 않습니다. 지난 2월 뉴욕에선 엄청난 폭설을 예보했다가 많은 이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폭설에 대비하느라 북새통이었는데 조금 눈이 오다 만 거죠. 사계절이 뚜렷하고 장마가 있는 우리나라도 기상 캐스터의 예보가 틀리면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새롭게 선루프를 장착한 도요타 Aygo. 도요타는 이 점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미래를 예보하는 기상 캐스터와 Aygo에 장착된 선루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존재를 가깝게 만든 겁니다. 그들은 먼저 밀라노·브뤼셀·마드리드의 유명 캐스터 3명을 찾았습니다. 그들에게 한 달 간 도요타 Aygo를 빌려주는 거죠.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들의 기상예보에 따라 다음 날 선루프의 상태와 의상이 결정되는 겁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예보하면 선루프는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열리지 않습니다.‘ 내일은 햇빛이 쨍쨍하다’고 예보하면 어떤 상황이 와도 선루프는 열린 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더운 날씨를 예보한 날에 입을 의상과, 추운 날씨를 예보한 날에 입을 의상까지 제공했습니다. 차 안엔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38대의 카메라가 설치됐고요.
그들의 예측은 적중한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많았습니다. 추위를예보한 날엔 더위가 찾아오기도 하고, 더위를 예보한 날엔 눈이 오기도 했습니다. 맑은 날을 예보했는데 비가 오기도 했죠. 그들은 자신의 예보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선루프를 연 채 비를 맞으며 운전하고, 더운 날씨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선루프를 닫은 채 운전해야 했죠. 눈 오는 날도 예보가 틀렸다면 어김없이 선루프를 열어야 했고요.
종종 틀리는 기상 캐스터의 예보는 누구나 아는 일상입니다. 더운 날엔 선루프를 열고, 비가 오거나 눈 오는 날엔 선루프를 닫는 것도 일상이고요.
도요타는 지극히 평범한 두 가지 일상을 엮어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도요타의 ‘The weather challenge’는 성공적인 듯합니다.
Aygo에 선루프가 있다는 사실, 쉽게 잊을 수 없을 듯합니다.
TV를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의 차이
TV와 인터넷 서비스 기업인 카날 디지털(Canal Digital). 그들은 TV를 보는 사람과 TV를 보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차이는 두 편의 광고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먼저‘ 광대(Clowns)’편입니다. 광대 가면을 쓴 남자 넷이 은행으로 들어옵니다. 누가 봐도 은행 강도입니다. 영화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죠. 은행업무를 보던 여자 직원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하지만 놀란 이유가 달랐습니다. 그들이 쓴 광대 가면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죠.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 같다며 반가워합니다. 그녀 외엔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눈앞에 닥친 위험을 체감한 거죠. 하지만 그녀는 은행 보안 출입문을 활짝 열어주며 들어오라고 손짓합니다. 마스크를 쓴 네 명의 남자는 그녀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가죠. 그때 카날 디지털은 말합니다.“ TV를 보는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전기톱’편입니다. 어둠이 찾아온 가정집. TV마저 꺼져 적막합니다. 그때 전기톱이 작동되는 소리가 들리죠. 부엌에서 물을 마시며 창문을 내다보던 아저씨는 전기톱을 들고 있는 험상궂은 남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인물입니다. 의아해하는 아저씨의 표정이 보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책을 보던 부인에게 말하죠. 바깥에 톱을 들고 있는 남자가 있는데 자신의 집 자작나무를 베어줄 수 있을 거 같다고. 시간당 얼마 받는지 물어봐야겠다며 코트를 입습니다. 이 늦은 시각에 무슨 말이냐며 부인은 되묻지만, 아저씨는 이미 문을 열고 나가버립니다. 영화에서 늘 등장하는 위험한 장면인데, 아저씨는 정원사라고 생각하는 거죠. 아저씨가 사라진 어둠에선 전기톱 울리는 소리만 들립니다. 역시 카날 디지털은 말합니다.‘ TV를 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놓치면 대화에서 소외되기 쉽습니다. 카날 디지털은 나아가 TV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상투적인 위험도, TV를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거라고, 모바일로도 볼 수 있으니 당장 TV를 보라고 권합니다. TV의 존재감, 위트 있는 해석이었습니다.
알츠하이머의 차이는 단어 개수의 차이
알츠하이머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리는 무서운 병입니다. 이 병의 위험을 알츠하이머 소사이어티는 그 흔한 음악도 그림도 없이 단 몇 개의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더 강합니다. 처음 문장은“ 역에서 남편을 픽업하는 걸 잊어버리는 건 끔찍할 정도로 화나는 일이다”입니다. 음악도 소리도 배제된 채 조용한 화면, 몇 개의 단어들이 지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문장은“ 남편을 잊어버리는 건 끔찍한 일이다”로 의미가 바뀝니다.
두 번째는“ 딸에게 전화하는 걸 잊어버리는 건 끔찍하게 성가신 일이다”입니다. 역시 몇 개의 단어가 지워집니다. 그러자“ 나에게 딸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는 건 끔찍하다”로 변합니다.
세 번째는“ 누구에게 망치를 빌려줬는지 잊어버리는 건 끔찍할 정도로 화나는 일이다”입니다. 하지만 조용히 단어 몇 개가 사라지면“ 내가 누군지잊어버리는 건 끔찍한 일이다”가 됩니다. 50초가량의 시간 동안 그 어떤 소리도 없이 울리는 메시지. 알츠하이머가 어떤 병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소사이어티는 말합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연결되도록 돕겠다고.
놓친 일상이 아이디어가 됩니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종종 예보를 틀리곤 하는 기상 캐스터, TV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서 소외되곤 하는 일상, 뭔가를 잊어버리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세….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해 눈에 띄지 않았던 일들이 아이디어가 되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습니다. 오히려 일상이 아이디어가 되니, 공감은 더 커집니다. 그래서‘ 관심’과‘ 관찰’은 늦출 수 없는 광고장이의 숙제입니다. 특별히 일상을 잘 포착하고 잘 그려내는 사람은 특별한 예술가가 되고 작가가 되는 것처럼, 일상 속에 모든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일상. 모든 것의 시작이고 모든 것의 차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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