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의 중국>, 왜 만들었고 왜 열광하나
- 사회통합의 효과적 도구, 문화 콘텐츠의 재발견
손 호 진
북경법인 디지털커뮤니케이션 사업부 부장 / sonhojin@hsadchina.com
수작 다큐
2012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한 <쓰지엔샹더쫑궈(舌尖上的中国)>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혀끝의 중국> 정도가 되겠다. 근래 들어 중국 TV 다큐멘터리들이 굵직굵직한 소재들로 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그 중 <혀끝의 중국>은 다큐멘터리의 구루 역할을 하는 BBC가 극찬했을 정도로 수작 중의 수작으로 꼽힌다. CCTV는‘ 시즌 1’ 방영 2년 뒤인 작년에‘ 시즌 2’를 제작해 방영을 마치고, 올해는 2015년판‘ 시즌 3’ 제작을 진행중이다.
제목에서부터 연상되듯 이 TV 다큐멘터리의 중심 소재는 우리 혀끝에 놓이는 것, 바로‘ 음식’에 관한 것이다. 중국 각 지역 및 소수민족의 서민층들이 즐기는 평범한 먹을거리들과 그 제작과정에 담긴 일상의 기록들이다. 자연이 주는 재료로 만든 소박한 음식. 실제 그것을 먹고 마시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친밀하고도 감칠맛 나게 표현하고 있다. 내용만 주목되는 건 아니다.“ 마치 내 눈 앞에서 음식이 조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는 중
국의 한 네티즌의 댓글처럼, 전편 사전제작 방식과 HD급 영상으로 촬영된 수준급의 영상물이기 때문이다. 음식 조리과정에서 도구들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들, 살아 있는 듯 아주 생생하게 보이는 식재료 본연의 빛깔까지, 음향과 화질 모두 이 다큐멘터리를 빛나게 하고 있다. 제작 규모도 크다. 시즌 1은 13개월 동안 중국 70곳에서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올로케이션’으로 365일 촬영됐으며, 시즌 2 역시 총 300여종의 음식과 그와 관련된 150여 명의 출연자들이 등장했다.
어떻게 13억 마음을 움직였나
<혀끝의 중국>은 공중파로는 드물게 오락프로그램이 아니면서도 시청률 0.5%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다채널 환경에서 시청률 0.5%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또한 온라인 비디오 포털 사이트에서 8억 번이라는 시청 기록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 황제가 취했다는 산해진미(山海珍味)나, 사치스럽고 구하기 힘든 희귀한 식재료들로 만들어진 요리의 향연이 정작 시청자들의 감정적 허기는 채우지 못 한 셈이다.그렇다면 이 평범한 소재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13억 중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과거에도 음식과 그를 둘러싼 문화 배경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수없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세, 아니 대중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그 중요한 이유는 방송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즉 예전 프로그램의 대다수가 대중들이 느끼기에는 현실적이 않았다는 것이다.
<혀끝의 중국>은 겉으로 보이는 위대한 중국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대변하기보다는 오히려 내적으로 중국을 하나로 안으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중국 각 지역의 광활한 자연을 중심으로 하여 마치 여행을 떠나는 듯한 화면들, 그리고 각 민족들의 음식과 그것이 지닌 역사의 소개가 그렇다.“ 그것이 바로 대중 공감의 요소가 됐고, 자연스럽게 인기를 얻게 된 이유”라고 제작자는 말하고 있다. 시즌 1에서 8편, 시즌 2에서 7편 등 총 15편 영상이 모두 이렇게 만들어졌다.
<혀끝의 중국>에 대해 중국의 문화 전문가들은 ‘세대 간 갈등을 줄이고,중국 내 56개 민족 간의 이해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고 평가한다. 오늘날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TV를 시청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중국에서도 드문 일이 됐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우리식 표현으로‘ 본방 사수’를 위해 직장인들은 귀가를 서두르고, 웬만해서는 부모님과 함께 TV를 보지 않는 청소년들까지 거실로 모이게 했다.‘귀가 시계’, 가족을 거실로 모으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과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거실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을까? 아마도 할아버지와 부모 세대들은 과거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에서 재료를 구하고 성심을 다해 만든 예전 음식들 얘기를 꺼냈을지 모른다. 자녀들은 서구적인 미각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다양한 맛과 깊이 있는 음식의 역사들이 있었다는 것에 긍지를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식구(食口)’라는 말의 정의처럼‘ 중국이라는 하나의 식탁’을 공유했을지도 모른다.
방송 콘텐츠로만 해석할 것인가
중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1966년 시작된‘ 중국 문화대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사회주의사상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중국은 계층과 지역, 지식과 보편, 전통과 현재가 분리되는 아픔을 겪는다. 단절이라는 이름으로 마무리된 이 역사적 사건으로 중국의 문화와 관련된 명맥들이 많이 끊어지거나, 또는 태동되지도 못했다.
오늘날 G2로 명명될 만큼 성장한 중국의 정치와 경제 발전을 미래에도 유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과거‘ 문화대혁명’으로 단절된‘ 문화’라는 연결점 복원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으로 팍스차이나(Pax China)의 힘을 세계에 외치기는 했지만, 사실상‘ 문화’ 연결에 대한 실체가 없음을 중국 정부나 매체들도 알고 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마련된 가장 정교한 이벤트가 바로 <혀끝의 중국>과 같은 문화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중국 관영방송인 CCTV가 제작에 공을 들이고, 방송시간 역시 의외로 황금시간대에 배정한 것만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수직적으로는 신구 간의 갈등과 계층 간 문제를 해결하고, 수평적으로는 다민족 문화와 지역 간의 차이를‘ 음식’이라는 거부감 없는 콘텐츠를 통해 합일화시키려 한 것이다.
새로운 판매모델,‘ F2O’ 시장을 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시장이 생기고, 관심이 있는 곳에 물건이 진열된다.
중국 기업들이 오랜만에 찾아온 국민적 관심을 놓칠 리 없다. <혀끝의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많은 식당들이 방송에 소개된 관련 요리를 메뉴로 내놓는가 하면,‘ 혀끝의 OOO’라는 식으로 자신의 식당과 메뉴를 소개하는 패러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유행을 만들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Tmall(天猫)에서는 <혀끝의 중국>이 방송되는 시간에 맞춰 그날 소개된 특산물 또는 요리 재료들을 방송이 끝나자마자 판매하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철저하게 계산된 이 이벤트에 2,000만 명이라는 소비자들이 방문했는데, 그 중 총 729만 건, 구매 전환율 36%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성공 스토리로 인해‘ F2O(Focus to Online)’라는 신생 마케팅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는 <혀끝의 중국>처럼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프로그램의 방영시간에 맞춰 온라인 판촉 프로모션을 기획해 기존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 내는 모델을 말한다. 최근에는 정규 방송들과 온라인 쇼핑몰들이 방송제작 전에 제휴를 통해 새로운 판매방식으로 모델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이야기’
<혀끝의 중국> 시즌 3가 준비되고 있는 지금, 향후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아마도 평범한 대중들이 주인공이 되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일상의 문화 이야기, 그것이 핵심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조심스레 생긴다.
중국 소비자들이 정말로 공유하고 싶어 하는 스토리란 바로‘ 그들의 이야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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