禽獸江山
이 현 종
대표 CD - Chief Creative Director / jjongcd@hsad.co.kr
‘그녀가 벗는다.’ 팩트는 팩트인데, 영화의 카피로는 마음 한쪽이 켕긴다.
아무리 예술영화라도 사업은 사업이라 상술의 심보야 어쩌겠냐마는, 굳이 우리나라 영화 포스터에서만 볼 수 있는 카피라니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언더 더 스킨(Under the S kin)>은 쉽지 않은 영화다. 약간의 지적 허영에 의존하지 않고는 끝까지 인내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세계 평단은 작년도 최고의 영화로 <언더 더 스킨>을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전라의 스칼렛 요한슨을 U.S.P로 하자는 데 관계자들이 일치를 봤으니 예술을 사랑하는(?) 그 마음에 박수라도 보내야 마땅할 것 같다. 조나단 글레이저라는 감독도 낯설고 내용은 원작소설보다 더 난해하니 누가 이 영화를 보겠는가. 수입사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아트 무비는 아트 무비로서 소통하면 그만인데 어떻게든 음험한 웃음을 질질 흘리며 유혹하는 것 같아 처지가 딱할 따름이다. 영화는 지구 남자들의 욕정을 다루고 있다. 남자들의 욕정은 그녀의 -그녀는 외계인이다- 에너지원이다. 검은 점액질로 표현된 욕망의 늪속에서 허우적대다 죽음에 이르는 남자들의 껍데기들은 충격적이지만, 인간이라는 종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결국 욕망과 위선으로 뒤덮인 지구는 혹은 인간은 그녀에게 절망적이다. 그리고 그 절망을 담기에 스코틀랜드는 충분히 황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그들은 지구에서 가장 공허한 장소를 찾았던 것 같다.)
야만적 대중을 만드는 건 야만적 구조다
스칼렛 요한슨의 전라노출에 의존한 마케팅은 영화에 대한 예의로서도 부적절했거니와 이해에서도 부족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예의와 이해보다는 섹스라는 미끼를 먼저 선택하게 되는 마케팅의 현실인식이 차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여자의 몸을 탐하라고 거침없이 들이대는 저 얄팍함을 상술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우리 사회의 얼굴이 흉물 수준이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이것은 여가를 즐기는 혹은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지나치게 먹고 살기 바쁘거나 힘든 일상은 여가라고 던져진 그 짧은 시간이 극도로 아쉽다. 여유롭게 즐길 여유가 없다. 그래서 기쁨이라는 단어보다는 쾌락이라는 단어가 앞서는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해야 보상받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일할 줄만 알지 쉴 줄은 모르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놀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 혼자 고상하게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똑같은 부류다. 쉴 줄 모르는 사회는 성찰과 사색을 멀리 한다. 먹을 것만 찾아 헤매는 짐승의 무리와 다를 바 없다. 그런 그들에게 식욕과 성욕은 동일하며 전부이다. 간통법이 없어졌다고 나이트클럽에서 축배를 들고 등산복 주가와 콘돔 주가가 오른다. 간통법 폐지는 침대 위의 일에 공권력이 참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다 큰 어른들의 개인사라는 얘기다. 동물의 왕국이 됐다는 얘기가 아니고, 이 땅이 인간의 왕국이어야 함을 존중한다는 얘기다.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과격하지만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스스로 알아서 적절한 곳에 사용되어져야 하며, 현재보다 더 많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그 교육의 목표에 여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 필요한 안목을 제공하는 항목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만적 대중을 만드는 것은 야만의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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