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서 읽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김 운 한 | 선문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hanisugi@empas.com
광고학 박사. LG애드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한국광고학회ㆍ광고PR실학
회ㆍ옥외광고학회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 <인터랙티브 광고론>ㆍ<디지털미
디어 시대의 기업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마케팅 전략’, ‘마케팅 전술’ 등 마케팅에 ‘싸움’이라는 개념을 붙이는 것에 너무도 익숙하다. 과연 전쟁사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고대 전쟁사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었다. 전쟁은 승리가 목적인데, 마케팅 전쟁도 그러한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한다.
1. 마케도니아왕 필리포스의 병법과 콜라보레이션
주공(主攻)과 조공(助攻)의 개념을 도입했다. 기병은 주공으로 망치(타격부대) 역할을, 보병은 조공으로 모루(저지부대, 망치로 때릴 때 받침) 역할을 하게 했다. 망치와 모루 전략
은 모든 군사이론가의 기본상식이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도 이 원리를 이용했다. 인천에 모루를 만들고 낙동강에서부터 적을 위협해 그 안의 적을 섬멸했다.
⇨ 광고와 콘텐츠 또는 마케팅 툴 간의 콜라보레이션을 생각나게 한다. 정면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리스크가 따른다.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광고 등으로 포
(砲)를 쏘고 실제 매장에서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BTL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 손무의 지휘와 진심 마케팅
춘추전국시대 손무(손자)의 전법은 군사학의 기본원리를 담고 있으며, <손자병법>은 오늘날에도 고전으로 널리 읽힌다. 한번은 손무가 지휘자 둘을 시켜 궁녀들에게 병법을 가르치
는데, 궁녀들이 훈련 명령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명령이 불명확할 때에는 장수가 책임을 지지만, 반복해서 설명했는 데도 명령이 지켜지지 않으면 지휘자의 책임
이다”라며 왕이 사랑하는 두 지휘자의 목을 쳤다.
⇨ 우리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어떠한가 생각하게 된다. 다수를 속일 수는 없다고 한다. 어정쩡한 논리나 적당한 수준의 보상, 시간이라는 해결책을 믿기에는 소비
자들은 너무 똑똑하다. 때로는 책임져야할 것 그 이상을 책임진다는 자세가 긍정적인 기업평판을 낳는다. 아끼는 것을 과감히 버릴 때 소비자들은 진심을 알아준다.
3.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대의마케팅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를 원정하기 위해 처음 아시아 땅을 밟았을 때, 그는 자신의 창을 땅에 힘차게 꽂으며 “신들로부터 나는 아시아를 받아들이노라”라고 외쳤다. 아시아 원정
은 단지 아버지 필립보스의 계획을 물려받은 일이었지만 신으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생각했다.
⇨ 업(業)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기업 또는 브랜드 슬로건을 정하는 일이 그렇다. 현대에 들어 소비자의 가치를 찾고 업의 개념을 확대하는 슬로건이 많아졌
다. ‘오렌지 100% 주스’라 말하는 대신 ‘(아이ㆍ웃음ㆍ건강등이) 더 자라나도록’ 한다고 하고, 디자인이나 성능보다 승용차의 본질로부터 탄생함을 강조하는 것이 그렇다.
4. 한초 전쟁과 정서마케팅, Bandwagon
기원전 202년경, 한나라군은 강을 등진 채 포진해 퇴로를 없애고 필사적으로 싸움으로써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초나라 군대와의 싸움을 이겼다. 또 용맹하지만 덕을 갖추지 못
한 초나라 항우는 ‘사면초가’를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이른바 ‘배수진’의 병법은 오늘날 비즈니스에서도 자주 인용되며 시사점을 안겨준다. 오늘날 마케팅 커뮤니케이터
들은 무엇으로 배수진을 쳐야 할까? ’이윤을 잃어도 관계는 절대 잃지 않겠다’는 생각은 어떤가? 사면초가의 예도 유
명하다. 비록 적을 무찌르기 위한 간계였지만,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의미 있는 방법이다. 향수(Nostalgia) 마케팅, 정서마케팅처럼 소비자를 울리는 현대의 마케팅 기법들이 활발한 이유이다. 사회적 붐을 만들고 소비자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멀게는 밴드왜곤(Bandwagon) 효과로도 설명될 듯하다.
5. 카이사르(Caesar)와 수사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시저)는 장군이었지만, 정치가이자 웅변가로서 유명한 말을 많이 남겼다.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
로 입성하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하거나, 그리스의 약한 군대를 공격할 때 “먼저 지휘자 없는 군대와 싸우고 다
음에 군대 없는 지휘자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소아시아 반란군을 진압한 후에 한 말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
노라, 이겼노라)“도 유명하다.
⇨ 카이사르는 상황판단 능력, 추진력, 무엇보다 특출한 리더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리더십에 더해 자신의 주장
을 명확히 전달하고 군중을 선동하는 말들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오늘날의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인 셈인
데, 카피라이터들이 부러워할 만하다. 꿈ㆍ희망ㆍ행복 같은 추상적인 말 일색인 요즘 우리 정치 캠페인이, 캠페이너들이
좀 배웠으면 한다.
6. 고구려의 청야입보 전술과 역설
598년 수나라 문제의 고구려 원정 실패 후 수 양제는 백만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청야
입보(들을 깨끗이 비우고 성으로 들어가 싸운다)’의 전술과 을지문덕의 활약 등으로 수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고구려는
200여 개의 성이 있었는데, 유사시 수성하다 적이 지치면 반격, 격퇴하는 작전을 사용했다. 을지문덕은 문장에도 재
능이 있었다고 한다. 싸움 중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천문을 꿰뚫고 (중략) 싸움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이제 그만두기 바라오”라는 내용의 글을 적장 우문술에게 보냈다.
⇨ ‘청야입보’는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고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지친 적장에게 보낸 ‘격려성’ 편지는
어떤가. 우문술은 전의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을지문덕의 자신에 찬 역설(逆說)의 편지는 적장의 좌절
감을 키워 결국 퇴각에 이르게 했다. (훗날 평양성이 함락됐는데, 후계자 다툼으로 인한 ‘내부의 적’의 영향이 컸다.)
7. 징기스칸의 유인전과 360도 커뮤니케이션
중세 후반 징기스칸이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전방위의 전법 덕분이다. 그 하나는 일직선상의 공격이 아닌, 측면ㆍ후방 등 사방에서 공격해 처음부터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하는 것이었다. 기동성을 이용한 유인전도 뛰어났다. 선두부대를 보내 접전한 후 며칠씩 끌며 적을 몽골 주력 부대로 끌어들였다. 적을 철저히 몰살시키고 이 소식이 인접한 곳에 전파되도록 했다.
⇨ 커뮤니케이션으로 치면 소비자를 향한 360도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무력(물량) 중심의 전술이 아니라(실제로 몽골군은 대개 수적으로 열세였다), 커뮤니케이션(구전)을 통한 심리전으로 적을 공략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전쟁사 101장면>(정토웅 저)·<서양고대사 강의>(김진경 외 저)·<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존 워리 저임,웅 역)을 주로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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