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7-08 - 광고와 문화 - 전복과 위반의 충동,엽기문화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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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연/동국대국문과교수

영화'여고괴담'의 포스터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보다 문화가 더욱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생각하면, 여름은 수영이나 야영의 계절이라기보다는 공포물의 계절이다. 납량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질 악마와 귀신들의 퍼레이드, 살륙과 광란의 카니발은 올해에도 성황을 이룰 모양이다. 극장가에서는 더위를 말끔히 잊게 해줄 공포의 시간을 이미 약속했다. 올해 여름에 개봉될 공포영화 중 국산영화만 무려 일곱 편이라고 한다. 정통 호러 장르에서부터 호러, 코미디, 멜러를 뒤섞은 퓨전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주요 방송사에서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엽기적 취향의 납량특집극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으스스한 전율은 바야흐로 관람석만큼이나 안전한 자리에서, 리모컨만큼이나 가까운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엽기문화 유행의 세 가지 원인


그러나 신작 공포물의 쇄도는 전혀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공포감과 혐오감을 부르는 ‘기괴한 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진작부터 유행하고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여름 특수(特需)를 위한 문화상품의 재료가 아니라 대중문화 공통의 주요 레퍼토리이다. <여고괴담>에서 <섬>에 이르기까지 영화에서 공포물이 꾸준히 제작된 사실이나, <퇴마록>으로 대표되는 유령담이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연속 출간된 사실 등을 보더라도 기괴한 것에 대한 열광이 대중문화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화'섬'의 포스터

기괴한 것, 조금 풀어 말하면 인간의 이해와 통제를 넘어서 있는 동시에 인간과 인간 문화 자체를 위협하는 그 어떤 것을 표현하려는 경향은 대중문화 생산에서 확실히 두드러진 현상이다. 신비주의, 오컬티즘, 뱀파이어리즘, 엑소시즘, 새도-매저키즘, 악마주의 등은 이제 한국 대중문화 텍스트에서도 중요한 코드가 되어 있다. 더욱이 이러한 ‘엽기적’ 현상은 예술가적 진지성을 인정받고 있는 감독이나 작가의 작품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팜므 파탈’(famme fatale)의 잔혹한 남성 사냥을 다룬 장윤현의 영화 <텔미 썸딩>, 인간을 왜곡시키는 권력의 난폭한 스펙터클을 보여준 백민석의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은 그 두드러진 예다.






영화'퇴마록'의 포스터

그렇다면 엽기문화가 그처럼 유행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엄밀한 분석이 요하는 모든 전제와 절차를 생략하고 말하면, 첫째는 문화산업이 원인이다.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나 특정 공동체의 자산이 아니라 대중적 소비를 목적으로 생산되는 상품이다. 영화의 경우 전형적으로 나타나듯이, 문화 생산과 소비는 어떤 특권적 집단의 통제에서 벗어나 상품 생산과 소비의 일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문화가 상품으로 존재하는 상태는 기괴한 것에 대한 열광처럼 도덕적인 이유에서 금지되거나 억압된 관심이 자유롭게 표출될 여지를 만들어 준다.

둘째는 지구적 문화의 형성이 원인이다. 현재의 문화 생산과 소비는 이른바 지구화라는 과정과 맞물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화 자체도 다국가적인 혹은 초국가적인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어느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생겨난 문화적 코드가 다른 국가나 지역에서 모방을 낳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소설에서 모더니즘, 영화에서 헐리우드 문법 같은 것은 이미 그 장르 자체의 일반적 코드에 속한다. 문화의 지구화는 엽기문화가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토대를 이룬다.

영화'텔미 썸딩'의 포스터

셋째는 문화 생활 그 자체의 변화가 원인이다. 자본의 지배 아래서, 그리고 지구적 문화의 추세 속에서 문화 생활은 교양과 같은 전통적인 이념에서 벗어나 사람 각자의 특수한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활동이 되었다. 그것은 이제 개인의 자아 함양이라는 교육적 과정에 국한되지 않는, 넓은 의미에서 삶의 향락을 위한 활동이다. 이러한 문화 생활의 변화 속에서 형성된 오락지향적 소비대중 덕택에 기괴한 이미지와 이야기가 번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괴한 것에 대한 열광이 단지 현대 대중문화의 특수한 조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은 일면적인 해석이다. 기괴한 것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긴 해도 그것은 현대 문화산업이 성립하기 이전의 문화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괴한 것에 대한 관심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특유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문화 자체에 내재된 속성이다. 문화는 인간의 특정 행위나 경험에 대한 억압을 통해 성립하는 반면에 그렇게 억압된 행위나 행동에 출구를 열어주려는 충동 또한 가지고 있다. 니체가 말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대립은 인간 문화에 내재하는 바로 그러한 모순을 철학적으로 표명한 사례에 해당한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만 인간 문화는 어쨌든 그것의 타자(他者, 기괴한 것)에 대한 배척와 관용의 양면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문화의 타자에 대한 관심은 이성의 통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 철저한 것으로 보이는 근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8세기서 구문화에서 일어난 이른바 ‘고딕(gothic)’부흥이다.

‘지나친 욕망’에의 진지한 이해 필요

고딕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엽기적 관심에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잠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칸디나비아와 동부 유럽을 본거지로 하는 약탈적, 호전적 성향의 부족을 가리키던 명칭(고드)에서 파생된 말인 고딕은 유럽어에서는 문화의 타자에 대한 범칭과 다를 바가 없다. 18세기 이래 유럽문학과 예술에 나타난 고딕 부흥은 계몽주의가 인간과 인간 사회로부터 축출하고자 했던 야만, 광기, 미신에 매혹된 결과였다. 고딕적인 것의 본질은 이성의 인도에 따라 정열과 공포를 정복한다면 인간의 행복과 성취가 가능하리라는 계몽주의의 낙관점 신념에 대한 반발이다. 그래서 고딕적인 것의 문학적, 예술적 표현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전복과 위반의 충동,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의 환상을 포착하는 데에 주력한다. 문학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고딕적인 것은 아예 ‘고딕 픽션’이라고 불리는 뚜렷한 전통을 근대문학에 남겼다. 이 고딕 픽션의 전통 속에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 사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포의 <어셔가의 몰락>을 위시하여 현대 공포물, 스릴러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엽기적 영화나 소설을 일부 비판자들처럼 단지 예술의 타락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리 적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인식이라는 측면 또는 문화의 자기반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예컨대 장윤현의 <텔미 썸딩>을 보자. 조형사(한석규)가 남자들을 잇달아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내 유기한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를 벌이는 플롯을 중심으로 신체 절단을 비롯한 각종 잔혹한 장면을 펼쳐보이는 영화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한 성적 학대 때문에 정신적 상처를 입은 여자인 채수연(심은하)이 남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광기 어린 복수극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장을 달고 있는 조형사의 모습을 비롯한 주요 이미지와 액션을 살펴보면 여성들에게서 재래의 모성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 현대 남성들의 불안이 거기에 투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목이 잘린 남자 시체와 같은 계산된 이미지들은 남성 무의식에 자리잡은 거세 공포에 직설적으로 호소한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여성의 자아 주장과 여성집단의 사회적 성장에 따라 심리적으로 곤경에 처한 남성 자신을 돌이켜 보게 만든다.

호러사이트 '호러 존'(왼쪽)과 호러웹진 '괴물단지'(오른쪽)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 역시 그리 간단치는 않다. 이 소설에는 아이들을 납치해 자기 집 지하에 감금해놓고 포르노그래피를 찍는 젊은 부부가 등장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어두운 정열과 광포한 권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황량한 디스토피아가 제시된다. 여기서 인간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지 우발적인 물질 합성에 불과한 존재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반휴머니즘적 담론은 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왜곡하는가, 권력으로부터의 탈주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 알레고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엽기적 관심을 노출시킨 한국 영화나 소설 중에서 이러한 인식과 반성의 효과를 낳는 작품은 아직 극소수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스릴러물이나 공포물, 고딕 픽션이나 유령담의 정형화된 문법에 따라 기괴한 것을 즉물적이고 선정적인 양상으로 표출하기에 급급하다.

‘엽기문화’의 유행이 문화의 갱신을 위한 실험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기괴한 것의 판타지를 인간과 문화에 대한 물음과 의미있게 연관시켜야 한다는 것은 그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특수한 분야나 매체를 넘어 직면한 과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떻게 섬뜩한 공포와 전율을 연출할 것인가 하는 고려 이상으로 인간의 지나친 욕망, 정열, 권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요구한다. 문화의 타자를 얼마나 진지하게 인식하고 표현하느냐는 바로 그 문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Posted by HSAD